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것은 물방울의 힘이 강해서가 아니라 '꾸준함'이라는 말이 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아주'엄격한'훈련이 필요하다.
물방울은 처음부터 바위를 뚫을 생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설마 뚫리겠어'라고 생각했을지도... 하지만 한 자리에서 계속 아래로 떨어지는 물방울에 바위는 오랫동안 단단히 지키던 한 자리를 결국 내주고 만다. 처음엔 사방으로 튀기만 하던 물방울이 단단한 바위 일부를 조금씩 파이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내주는 수밖에...
책 읽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책 읽는 행위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래서 어쩌라고'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책이든 다른 무언가의 활동이든 내가 절박해서 시작한 일이 아니면 어떤 교훈도 얻을 수 없는 것 같다.
나의 독서에는 절박함이 있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셋째 임신으로 혼란스럽다가 받아들임 후에 불가피한 사정으로 아기를 지워야 했었다. 그 일로 나는 고장 난 멜로디 카드 같았다.
늘 우울하고 화가 많고 감정 기복이 심하고 남편이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도 뾰족하게 반응하고, 전부 내가 무능해서 무시받는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어떤 일도 해낼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아기를 지우고 더 지쳐있을 때 나만 바라보던 두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아이들한테 내가 어떤 엄마이고, 이 아이들한테 만큼은 내가 가장 큰 우주라는 것을 망각했다. 인생개조. 나한테 그게 필요했다.
남편은 무력하게 지내는 내게 종종 동기부여 유튜브를 보여줬다. 성공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식의 동기부여, 자극을 주는 영상이었다. 틀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당장 '내가 힘들어 죽겠는데 지금 성공에 대한 동기부여를 갖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이람'하고 관심을 껐다.
그리고 현재 전 국민의 멘토가 된 김미경 님의 유튜브를 추천해줬다. 당시 <언니의 독설>이란 코너로 여성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을 콕 집어냈다. 때로는 혼내기도 하고, 위로도 하고 웃고 울리는 그야말로 언니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당시 내 상황은 어느 누구와도 소통하기 싫을 만큼 자발적 거리두기를 몸소 실천하는 중이었다. 사회와 거리를 멀리 하면 할수록 사는 게 힘들어졌다. 마음은 더 갈기갈기 찢겨 나가 사랑이라는 온정을 베풀 힘이 없었다. 사소한 일로도 아이들을 쥐 잡듯 잡았다. 엄마 품이 세상 제일 재밌는 놀이터가 되어야 하는데 놀이터 상태가 어떤지 눈치를 봐야 했다. 한 마디로 김미경 님의 유튜브를 통해 세상을 좁게 보면 안 되는구나,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이렇게 살면 금방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와 두려움에 삶의 의지를 다지게 됐다.
다시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내 곁에 오래 두고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게 먼저 떠올랐다. 앞서 살아온 나의 모습은 주눅 들어있고, 무기력했지만 앞으로 살아갈 나의 모습마저 그럴 순 없는 노릇이었다. 뒤로 갈수록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는 지루하고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독서가 나한테는 '약속의 땅'이 되었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로 새끼손가락을 꽉 걸었다.
하찮은 일에 소중한 내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 법을 연습하고,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며 나도 불평을 줄이는 연습 또한 하게 된다. 집안에서 내가 가장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추켜 세워, 매번 하는 음식에도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맛있는 거 아니냐며 자화자찬을 늘어놓는다. 당장 내가 할 수 없는 일에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못한다고 말하고, 하고 싶은 일에는 하나씩 들이대 보면서 세상 참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맛있는 밥도 좋은데 책 밥 먹고 정신이 건강해지는 일만큼 또 좋은 게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