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가린다고 했던거 이제 뻥이에요

by 책사랑꾼 책밥


아마 일곱 살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동네 남자아이 또래 친구 중 찬우라는 아이가 있었다. 내가 어릴 땐 유치원이 흔하게 있지 않아서 교회에서 운영하는 선교원이란 곳이 있었는데 거기 선교원에서 찬우란 아이를 만났다. 교회답게 연말엔 크리스마스를 맞아 동방박사 연극이나 캐럴 노래 연습을 했다. 나도 아이들 사이에서 같이 연습을 했는데 말수가 적고 수줍음을 많이 탔던 때라 화장실이 급한 걸 차마 선생님한테 알리지 못하고 참았던 모양이다. 그렇다. 예감했겠지만 옷에 실수를 하고 말았다. 모두가 모른 척해줬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하필 찬우란 아이가 나를 놀려댔다. 그 앞에서 하지 말라고 강하게 외치지도 못하고 마냥 당하고만 있었는데 누군가 우리 집에 달려가 일러바쳤다. 내가 어떤 녀석한테 놀림받고 있다고 말이다. 사실 그때 엄마가 어떻게 대처해주었는지 그 기억도 희미하긴 한테 속수무책으로 울고만 있는 나를 달래주는 것보다 '창피하게 왜 울어!'라고 먼저 말했던 것 같다. 얼른 집으로 돌려보내던가, 그럴 수 있다고 괜찮다고 안아주었더라면 지금 내 기억이 선명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리고 기억나는 건, 찬우 녀석의 태도였다. 자긴 놀리지 않았다고 잡아뗐는데 쭉 지켜보고 있던 친구와 친구의 엄마가 내 엄마한테 자세히 얘길 해준 덕분에 그 녀석에게 사과를 받을 수 있었다. 사과는 받았으니 다행이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서 불편하게 자리 잡은 이 사건에서 내가 사람과 관계 맺기 불편해진 원인이 있어 보인다. 바로 엄마의 말 한마디 때문일 거다. '왜 말도 못 하고 울고 그래!' 이 한마디. 엄마도 친구한테 놀림받고 있는 나를 언 아주고 싶었겠지 창피해서 나무라고 싶었던 건 아닐 거다. 다만 표현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꼭 이 날의 기억 때문만은 아닐 테지만 사람과의 관계 맺기가 서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낚시 미끼 던지듯 방어막을 수시로 쳐댔다. 잘 웃어보이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 톡톡 쏘는 말투가 그렇다. 그러나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아이 둘 키우면서 산전수전 공중전 중 산전쯤 돌파 하고 나니 내가 방어막을 치면 칠수록 안 그래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 만나기 쉽지 않은데 더 외롭기만 하다.


온라인 모임이 대세를 이룬 만큼 독서모임부터 글쓰기 모임, 작가 강연 등 모든 활동이 온라인에서 이뤄지다 보니 세상 밖 사람들과의 관계를 온라인에서 맺고 있다. 그리고 그들과 짧게는 한 달, 길게는 6개월 이상 한 달에 한 번 꼴로 화면으로 만나 안부를 묻고 모호하긴 해도 나한텐 지인이나 다름없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 내밀한 부분까지 알려고 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서로가 공통 관심사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 관계가 깊어지면 얼마나 깊어질까마는, 드디어 그들을 내가 만나러 간다.


내가 남들한테 어떻게 보일까 하는 마음은 이제 내려놓으련다. 어릴 때 친구 녀석한테 놀림받고 충분히 위로받지 못했다는 그 기억 하나로 여태 소극적으로 살아왔으면 됐다. 깊은 관계가 꼭 필요한가 뭐. 내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충분히 많고 안 좋았던 기억 말고 좋은 사람들과 앞으로 쌓을 좋은 얘깃거리들이 더 많을 테니 이제 걱정 하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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