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인스타 라방 알림이 떠서 들어갔더니
옆동네 작은 서점에서 낭독을 하고 있었다.
종종 작가와의 만남을 하는 터라 오늘도 뭐가 있는 줄 알고 잠시 지켜봤다.
그런데 댓글에 서점 주인이 메시지를 남겼다.
"마이크 구입 기념으로 테스트 방송 중입니다."
테스트 방송이란 말에 그럼 나갈까 생각했는데 소리가 너무 작고 말소리가 분명하지 않게 들려서 좀 더 듣다가 댓글에 그대로 남겼다.
'작게 들리고 분명하지 않습니다.'
'낭독자분의 소리가 원래 작은 걸지도 모르겠네요.'라고.
그런데 댓글을 쓰고 난 뒤 후회가 됐다.
'괜히 솔직하게 말했나? 테스트 방송이라기에 최대한 내 의견을 말한 건데 혹시 기분 나빴으면 어떡하나 걱정과 후회가 핵폭탄급이었다.
내가 말해 놓고 내가 불편한 상황이 되었는데 다음 낭독자가 나타났다. 이번엔 소설을 읽어주겠다고 한다. 게다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님의 오랜만에 나온 신작을 들고 왔다. 낭독자가 책에 대한 평가도 해주었다. 두 시간 만에 다 읽었고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가르치려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9년 만에 나온 신작을 두 시간 만에 후루룩 읽은 분이다. 그래. 그건 읽는 사람 마음이니 그렇다고 하자. 제일 첫 장 한 페이지만 읽어주고 읽을만한 소설이니 꼭 읽어보라는 말이 나한테는 진심으로 그 책을 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가르치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데서부터 내 입장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비평부터 내놓는 것이 불편해졌다. 방금 핵폭탄급 걱정과 후회를 겪고도 반성의 기미가 없었던지 결국 댓글에 한마디 남기고 말았다.
'두 시간 만에 후루룩 읽고 책을 평가할 수 있으시다니 정말 대단한 분이신가 봅니다.'라고.
그 작가의 책을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팬심이 지나쳐 <두 시간 만에, 가르치려는> 이란 말에 괜히 예민하게 구는 걸까.
겨우 테스트 방송일 뿐이었는데 과한 몰입에 빠진 나란 사람... 가시를 심어 교묘하게 내 감정을 실은 댓글을 서점 주인은 낭독자에게 읽어주었다.
내 의도를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테스트 방송이지만 떨려서 잡소리를 한 거라고 낭독자가 말을 했다. 미안하면서도 불편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낭독자는 끝까지 카메라 앞에 나타나지 않고 옆에서 대신 말을 전하고 아무 응대 없이 카메라는 껐다.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평소 서점 인스타와 친밀한 소통을 이어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왜 마이크 테스트 중이라는데 굳이 솔직하게 말을 했을까. 라방에 참여했던 인원은 총 7명 정도였는데 나 말고도 테스트에 응답한 사람은 한두 명뿐이었다. 그냥 '잘 들려요'라고 하길래 디테일하게 말해줘야겠다 생각했는데 내가 오지라퍼가 된 기분이다.
처음부터 테스트 방송 중이라는 댓글을 봤을 때 나왔어야 했다. 그랬다면 불편한 말을 들을 일도 없었고 아무리 짧은 시간이었다고 하지만 무례한 방송의 불편함을 받지 않았어도 됐다.
이런 거 혹시 나만 불편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