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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밥 Jun 30. 2021

등갈비찜 하다가 무슨 일이야?


내가 하는 음식 중 식구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등갈비 요리다. 마트에 파는 양념장을 쓰지 않고

마늘, 양파를 곱게 갈아서 간장, 후추, 매실액, 사과, 대파 듬뿍, 맛술, 그리고 내 정성을 들인 그 맛을 좋아한다.


오늘은 남편 마흔네 번째 생일이다. 엄마가 사위 미역국 끓여 먹이라고 소고기를 사주었고, 내가 등갈비를 사다가 기름은 제거하고 핏물을 빼고, 콜라와 된장을 넣어 고기 잡내를 없애고, 위에 나열한 양념을 넣어 한 솥 끓여 냈다.



언제 해도 레시피 안 보고 자신 있게 하는 요리인데 오늘만큼은 달랐다. 양파와 마늘을 갈아 넣고 물을 조금 부었는데 양 조절이 문제였다. 냄비가 가득 차게 찰랑이는 것이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흘러넘치게 생겼다. 순간 '아, 글쓰기도 이런 것이겠구나'머리를 스친다.

어느 때 보다 생일에 먹는 등갈비인 만큼 훨씬 맛 좋게 하려다가 양념이 과했다. 끓어 넘치면 아까우니까 국자로 떠서 그릇에 옮겨 담았다.


그래 맞아. 이건 글쓰기에서 고쳐쓰기와 같은 거였어. 잘 쓰려고 이 말 저 말 다 갖다 붙여 쓸 때는 몰랐다가 퇴고할 때 전부 덜어내야 하는 일. 뒤이어 내가 왜 이렇게 썼을까 자책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부드럽게 읽히기 위해 다듬는 일.

등갈비찜을 하다가 글 고쳐쓰기를 떠올리다니.

오전에는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를 읽다가 문장 구조 바꿔 쓰기를 해보고 싶어 노트에 옮겨 적기까지 했다.


살림하는 나한테 글이 참 뭐라고 이렇게 까지 진심이 된 걸까? 난 아직 단독 출간한 책도 없고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을 잘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주부에 불과한데 말이다.



양념을 덜어낸 등갈비찜은 오늘도 대성공이다. 뼈와 살이 잘 발라지고 양념도 잘 베었다. 식당에서처럼 짙은 색감을 내진 않았지만 우리 입맛에 맞으면 되었다.



내가 쓰는 글도 그랬으면 좋겠다. 진한 색을 띄지 않아도 적당히 달고, 적당히 짭조름한 맛을 가진 등갈비 한입이 생각나는 것처럼 내 글도 사람들에게 금방 잊히지 않고 천천히, 오래도록 스며드는 글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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