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 된 아기를 솜 빵빵한 우주복에 이불에 돌돌 말아 출근길에 있는 아파트 1층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하던 엄마는 마흔 중반이 되었다. 그리고 갱년기 초기 증상이 시작되었다. 이럴 때 이런 말을 쓴다지?
"세월 참 빠르다."
오늘 아침 배우 김희애가 광고하는 여성 영양제를 주문했다. 갱년기 초기 증상에 대한 검색으로 내가 겪고 있는 얼굴 달아오름 증세만 확인했다. 남편한테도 말했더니 '그거 갱년기 초긴데?'단박에 인정했다. 내가 갱년기라고?
지난주, 감기 몸살이 올 것처럼 그날 하루는 머리가 몹시 아팠다. 밤에 중요한 온라인 모임을 앞두고 과하게 에너지를 썼나 싶었다. 일단 타이레놀을 먹고 진정되길 기다렸는데 소용없었다. 모임 시간 한 시간 남기고 소파에 잠깐 누웠다. 얼굴이 점점 달아오른다. 나 왜 이러지. 열도 안 나고, 어디 아픈 건 아닌 게 확실한데 몸이 안 좋다.
몸의 상태에 예민해졌다. 웬만해선 약도 병원도 잘 가지 않고 버티면 괜찮아졌다. 이제 그렇게 버텼다간 골로 갈 나이가 된 걸 실감한다. 아이가 자라는 것만 아쉬워했는데 내가 나이 들고 있는 걸 실감 안 하고 내 몸 돌보기에 소홀했구나.
요 근래 내가 첫째랑 신경전 벌이는 일이 잦았다. 지켜보는 둘째에게
"엄마 갱년기 오면 언니랑 더 많이 싸울 거 같은데, 그럼 어떡하지? 사춘기랑 갱년기랑 만나면 엄청 위험하다던데?"
"엄마, 걱정 마. 훼라민큐나 화애락을 아빠한테 사달라고 해."
1초도 망설임 없이 솔로몬이 된 둘째의 말이 생각나서 바로 검색 들어갔다.
여성 갱년기 영양제
나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핫딜 상품까지 준비되어 있다. 내가 고른 기준은 핫딜처럼 가격도 좋은 데다가 믿음 가는 연예인이 광고한 제품이면서 건강기능식품을 주로 만드는 회사의 제품이다.
사춘기와 갱년기를 극복하는 일도 그럴 테지? 믿음 주는 것. 사춘기 자녀가 나한테 일부러 대드는 게 아니라 성장호르몬 변화 때문에 자기 통제가 힘들어 그런 것이라고 알아봐 주어야 하는 것 말이다.
내가 통제 불능한 감정을 이용하면 안 될 노릇이지만 나 또한 아이들과 남편이 내가 일부러 짜증내고 화내는 게 아니란 걸 알아봐 주고 믿어주면 좋겠다.
작년에 남편이 사준 콜라겐 함유 석류 젤리를 찬장 구석에서 찾아냈다. 갱년기를 걱정할 나이가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