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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밥 Jun 07. 2022

전업주부가 사는 법

생활에 아주 작은 변화만으로도 저녁 다섯 시 무렵이면 하루를 잘 보냈다는 뿌듯함이 쌓인다.

가스레인지 위에 설거지 후 쌓아둔 냄비는 물기를 닦아 싱크대 안으로 넣고, 커피머신 옆 대충 놓였던 보이차 티백이랑 각종 영양제를 추슬러 오래된 건 버리고 쓸모 있는 바구니에 차곡차곡 정리를 했다. 전자레인지와 에어프라이어 위에 뽀얗게 쌓인 먼지를 닦아 서랍에 숨어 있던 이케아 면포를 한 장씩 덮어 나름대로 멋을 냈다.


그동안 귀찮은 집안일이라고 미뤄둔 일이었다. 누가 대신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대신해줄 수 없는, 순수 나의 일이었다. 언제 날 잡아서 치우자고 미루니 내가 해야 될 모든 일이 모조리 미뤄졌다. 책 읽는 일도, 일상을 기록하는 일마저도.


한 달에 한 번 독서모임을 할 때 사람들한테 묻는다.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대게는 '뭐 특별한 게 없었어요. 그냥 매일 똑같아요.' 한다.

매일 똑같은 생활. 큰 시련 없는 시간을 쌓은 거라면 다행이지만 매일 냄비 물기를 닦아 정리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는 매일 변함없는 생활이라도 매일 다른 일이라고 생각된다. 매일 다른 쓰레기가 쌓이고, 다른 음식을 해먹 었을 테니 냄비 사이즈도 달랐을 것이고, 빨래의 양도 매일 다르다. 그리고 그 일을 하는 내 기분마저 달랐을 거다. 그러니 우린 매일 똑같지 않은 하루를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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