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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밥 Aug 18. 2023

한 번도 하지 않은 성장 이야기

저는 언니가 둘, 남동생이 하나인 사 남매입니다. 70년대 후반에 태어났고 3대가 한집에 살았고 일 년 제사만 10번인 집이었어요. 말귀 알아듣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엄마와 할머니를 도와 부엌일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숟가락 놓기, 물통 가져오기, 밥상 닦기였고 기술이 늘면 감자 깎기, 파 다듬기, 마늘 빻기를 해요. 좀 더 커서  물건 다루는데 조심성이 길러지면 설거지를 합니다. 처음 밥을 지은 나이가 열두 살이었습니다.


힘들게 살았냐고요? 아니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힘듦의 정의를 뭘로 내리느냐 차이겠지만 우리 집에선 여자라면 응당 집안일을 하는 것이었어요. 방에서 책을 보다가도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면 할머니가 방문을 열며 말합니다.

"지금 밥 준비하는데 뭐 하냐. 나와서 돕지 않고."

그러면 거역하지 않고 순순히 나와서 마늘을 빻고 양파 껍질을 까면서 조리 보조일을 해야 합니다.

지금은 젊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경험을 시킨다는 의미로 설거지도 한번 시켜보고 김밥, 쿠키 등 놀이처럼 함께 하지만 단 한 번도 내가 하는 일이 놀이라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어요. 노동이었어요. 나도 놀고 싶고 책 보고 싶고 TV 보고 싶었어요. 내가 가진 욕구를 채우기 위해 움직이기보다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집안일을 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 꿈은 현모양처였습니다.

현모양처 : 어진 어머니이면서 착한 아내


네이버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명확하게 보이는 의미가 아니군요. 어질고 착하다의 외적인 기준이 있나 싶습니다. 아무튼 어른들을 도와 집안일 돕기에 정성이었던 나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그리 싫은 것도 아니었어요. 계속 일을 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는지 몰라도 유독 칭찬받을 수 있었던 게 집안일 돕는 거였으니까요. 그땐 몰랐습니다. 내가 어른이 돼서도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집안일이겠구나 막연한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돋보이는 재능은 없었습니다. 좋아하는 건 있었지만 그 일을 발전시킬 수 있었더라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가끔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나, 백일장 대회에서 상을 탔었어요. 대상은 아니었고 장려상쯤 되었던 것 같아요. 잊고 있다가 엄마 집에서 상장을 발견했습니다.

가족들에게 얘기했어요.

"이것 봐. 나 이런 사람이었어." 다들 처음 보듯 신기해했습니다. 집안일을 정성으로 돕던 아이가 글쓰기 상을 받았던 일에 대해, 그날의 기쁨에 대해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슬펐습니다. 상장 하나지만 어쩌면 글 쓰는 재주를 갖고 태어났을 거라고 지금 믿습니다. 흘려보낸 시간이 아깝고 아쉽습니다. 내 욕구 충족은 뒤로 하고 가족에게, 남들에게 더 맞춰야 했고 나를 좋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차라리 혼자를 자처한 외톨이 삶을 살았습니다. 친구가 필요했지만 마음을 열지 않았고 가족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손 내밀지 못했습니다.


언니가 있으면 커서 친구처럼 지낸다는 말은 우리한텐 빗겨나갔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고 의논하고 언니들한테 있어서 나는 막내 여동생이니까 언니들한테 보살핌 받고 싶은 적이 많았어요.


오래전이지만 둘째 언니가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우리가 학대받은 건 아니지만 집안 분위기상 엄마 집안일을 돕지 않으면 안 되었어서 너무 지겨우니까 언니들은 눈치가 있어서 일찍 집안일에 손을 놓은 거 같다고 말이에요. 실제로 언니 둘은 대학과 직장 관계로 서울로 올라가 자취를 했고 저만 사 남매 중 유일하게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고 자기주장 세지 않은 저의 성격이 언니들은 알아서 잘 크는 동생으로 보였고 케어하지 않아도 잘하는 것 같아서 외면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이죠. 그러나 언니로서 동생을 돌봐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도 있다고 말해줬어요. 외롭게 만든 것에 대한 미안함이라고요. 제가 고등학생 때 언니들은 집을 떠났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외로웠습니다. 부모님이 부부싸움이라도 한 날에는 의지할 사람이 없어서 더욱 그랬어요.


가끔 생각해 봅니다. 나는 행복했을까. 우리 부모님은 자식 넷을 키우며 어땠을까. 어디서 행복을 받았을까. 지금 중년의 나이가 된 자식들에게서 어떤 대접을 받고 싶을까, 나는 부모님을 어떻게 바라보면 편안할까. 이런 생각들요.


간단한 일을 도우며 크던 어린 나이의 저는 처음엔 시켜서 시작했지만 눈치를 살피며 호감을 얻으려고 엄마 옆에 착 붙어 집안일을 도우며 컸던 것 같아요. 좁은 부엌에 어린애가 일을 도우면 얼마나 도왔겠어요. 그저 작은 손으로 숟가락을 밥상에 놓는 모습을 보고 한번 웃는 일이 엄마한텐 찰나의 휴식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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