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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밥 Dec 08. 2020

가족끼리 이러지 맙시다.

가족도 싸우면 정이 들까


오후 2시쯤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쯤 워킹머신 작동에 문제가 있어서 고객센터와 실랑이중이었다. 문제가 있는지 기사를 보내서 봐주겠다는 상담원과의 통화를 마치고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제품에 이상이 있으면 AS를 받으면 되는 것인데 이런 일에 나는 관대한 편이 아니다. 숨을 고르는 동안 엄마 전화를 수신 보류한 게 생각났다. 아직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는데 전화를 걸까 말까 고민하다가 억지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전화하셨어요?”

“응. 어디냐?”

“집이지.”

짧고 낮은 음성이 전화기를 타고 엄마에게 전해지는 중이다. 풀리지 않은 기분이 고스란히 말투에 묻어있는 걸 느끼면서.

엄마는 그냥 전화해봤다고 하며 신서방은 출근했는지, 서울에 검진 간다고 했던 손녀의 일이 궁금해서 걸었다고 했다.     


딸은 초등학교 입학 전 외사시 수술을 했고 매년 정기검진을 받다가 1년 반 만에 눈동자 위치가 불안해 보여서 다시 병원을 찾았었다. 각도가 조금 벌어져 있어서 담당교수의 진료를 받고 결정하는 게 좋겠다는 소견을 받았다고 전하면서 여전히 나는 짧고 딱딱하고 어딘가 불편해하는 음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엄마도 곧 알아차렸고  

“너 근데 왜 말이 떽떽거리듯이 그래? 기분 나쁜 일 있어?” 엄마도 조금 날카로워진다.

하아... 또 시작인 건가. 분명 나는 알고 있다. 엄마가 묻는 안부에 부드럽지 못하고 겨우 대답하는 내 말투가 어떤지. 그런데 엄마가 떽떽거리듯 말하는 게 왜 그러느냐 묻는 지적이 또 삐딱하게 들린다. 2초간 침묵 후에

“뭘 다 아시면서 재차 물으셔요. 사시 수술한 것 때문에 갔지 왜 갔겠어요.”

엄마와는 늘 이런 식으로 싸움이 시작된다. 차분하고 평온하게 잘 지내다가도 이 날처럼 내가 날카롭게 응대하면 불꽃이 파바박. 엄마한테 쌓인 감정이 많은 건지, 내 성격이 못난 건지. 둘 다일 수도 있지만 후자일 거라고는 또 바로 인정하기 싫다.     


다시는 통화하지 않을 것처럼 서로 전화를 끊고 온 몸의 신경이 들썩였다. 하필 이 타이밍에 연락한 엄마, 내 기분 하나 조절 못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엄마를 화나게 한 것 때문이다. 나의 다정하지 않은 말투가 거슬렸겠지만 한 번쯤은 넘어가도 좋을 텐데 말투를 지적하고야 마는 엄마를 보는 것도 참기 힘들다.   

  

어릴 때는 말수도 없고 시키는 일을 군말 없이 하던 나였다.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게 있어도 떼써본 적 없이 조용히 자랐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고서는 사소한 감정 하나가 큰 싸움을 일으키는 일이 많다. 속에 있는 말을 내뱉지 못하고 있다가 엉뚱한 일에 터져 나오는 걸 막을 방법 없을까. 매번 반복되는 싸움이 지겨울만한데 엄마는 진짜 나를 아끼는가 보다. 내가 엇나가는 걸 가만두고 보질 못하는 걸 보니. 자주 통화하고 만나면 눈에 보이는 게 너무 많으니 나눠야 할 얘기도 많아지고 그럼 지적할게 생길 것이고 나는 듣기 싫어서 날카로워질걸 예상해서 특별히 가족이 전부 모이는 것 아니면 엄마랑 거리를 두고 산다.  육아방식으로 친정엄마와 갈등을 겪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나 같은 경우로 자주 싸워서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딸이 또 있을까.     


싸우면서 정든다는 건 부모 자식 간에도 통하는 말일지 계속 의문이 든다. 싸울수록 멀어지고 싶기만 하는 나여서. 나도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내 엄마한테 그러면 안된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가슴이 선뜻 앞서지 않는다. 어젠 내 기분이 정리 안된 상태에서 전화 걸은 게 잘못이었다고 미안하다고 할까 문자를 보낼까... 이럴 거면 차라리 바쁘다고 핑계를 대던지, 기분이 별로 안 좋으니 나중에 통화하자고 하던지 했어야 했다.    

  

부모에게서 감정을 케어 받지 못했다고 믿은 것은 왜곡된 신념일지도 모른다. 똑같이 사랑을 주고 키웠다는데 나만 유별나게 엄마한테 상처 주는 말을 할리가 없지. 그럼 엄마한테 쌓인 감정이 많은 것보다 내 성격이 못난 걸 인정하는 게 빠르겠다. 사소한 감정싸움으로 부모와 연을 끊고 살 일은 아니니까. 부모가 되어 사는 내가 내 부모를 아직도 신뢰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어른으로 산다. 내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못난 부모의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데.     

싸울 만큼 싸운 것 같은데 아직도 어렵다. 엄마와 나 사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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