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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밥 Dec 25. 2020

쿨한 내가 될 수 있을까

       


코로나 확진자수가 1000명을 넘었고 서울은 500명가까이 된다. 매일 평택에서 강남으로 출근하는 남편이 이제 식당가기 겁난다고 도시락을 싸달라고 한다. 안 그래도 매일 5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차려주는데 거기에 도시락까지 싸라니. 대체 하루에 밥주걱 질을 몇 번이나 해야 되나. 심란하고 불편하고 솔직히 귀찮다.

전날 예약해둔 밥과 집에 있는 반찬 두 가지, 기능 검수를 마친 보온도시락에 밥을 꾹꾹 눌러 담고 계란후라이까지 얹어서 노란 보냉가방에 넣어 식탁에 올려두었다. 밥 먹으러 나온 신랑의 첫마디는 “노란색 너무 튀는 거 아냐?”

해주면 해주는 대로 받아들이는 법이 없다. 일단 이 상황에선 크게 반응하면 안 된다. 

“가방이 그거 하나야. 어쩔 수 없어.”


남편 밥 먹는 동안 옆에서 말동무 노릇도 해줘야 한다. 새벽밥 먹고 출근하는데 나 피곤하다고 방에 들어가 있기엔 부부사이의 예의는 아닌 것 같아서다. 안철수가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는 뉴스얘기부터 이번정부는 부동산 정책 때문에 망한 것 같다는 얘기들이 오갔다. 

대충 식탁을 정리하고 곧 일어날 아이들이 먹을 밥을 새로 안쳤다. 그리고 내방으로 들어와 불을 켠채로 누웠다. 잠이 덜깬 상태로 블로그에 이웃들이 새로운 글을 올렸나 둘러보는중에 남편에게 전화가 온다.. 

“어. 무슨 일이야?”

“도시락 챙겨줘야지. 그냥 가게 하면 어떡하나. 문 앞에 딱 놔둬야 내가 가져갈 거 아냐.”

“...... 그래. 미안하다.”

“오늘 도시락은 당신이 먹고 내일부터는 잘 좀 챙겨줘.”


이 남자. 이기적인 줄은 알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도시락을 들고 손에 쥐어주지 않은 내 탓을 하는 이 남자의 말 한마디가 순간 기분을 망쳐버렸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그게 왜 내 탓이냐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참아야지. 그래, 참자. 참자. 지금 이 상황이 편하지만은 않은데 잊어버릴것인지, 기분이 좀 가라앉으면 남편한테 서운했었노라 말을 할 것인지 고민했다. 

5분간 심장이 약하게 두근거렸다. 소심하고 피해의식이 있는 나란 사람은 내 탓이 되는 말에 자주 흔들린다. 엄마와도 종종 마찰이 생기는데 내가 화가 나는 포인트는 늘 비슷하다. 내가 볼땐 작은 실수인데 크게 잘못한 일처럼 지적하는 말에서 화가 난다. 남편과 엄마는 그점이 비슷하고 나랑 부딪히는 지점이다. 내가 용기내어 실수였다고 말하면 받아들여주는게 아니라 그러니까 앞으로 더 잘하라는 채찍이 너무 아프다. 


통화를 끝내고 깊은 내면에서 부딪히는 말들을 곱씹어 봤다.

“도대체 왜 그래”

“네가 했어야지”

“아직도 몰라?”

“생각좀 해라.”

“그럼 그렇지.”

이런 말들이 계속 맴돌면서 크게 화를 내며 말하지 않은 남편의 말에 채찍질 당하는 나를 상상하고 있다. 남편은 ‘아차, 내가 놓고 왔어. 새벽에 출근하는게 아직도 적응이 안되네. 나 대신 챙겨주면 고맙겠어. 부탁할께.’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부모님에게 순응하며 자란 나는 하기 싫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법이 없었다. 아니 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어릴 적만 해도 남아선호사상이 짙은 때였고 유독 우리 집은 더욱 심했던 터라 유치원도 남동생만 졸업했고 갖고 싶은 장난감도 남동생만 가질 수 있었다. 집안은 유교사상의 뿌리가 깊었고 아침저녁으로 어른들께 문안인사를 드릴 때 절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남자와 여자는 밥도 다른 상에서 먹었다. 이런 집안에서 온순한 성격으로 포장되어 있는 내가 눈에 띄는 일은 전무했다. 시키는 일을 잘 못따라하면 기다려주고 차근차근 가르치기보다 “으이그, 이리 줘봐. 그럼 그렇지.” 생각이 짧아서 잘하는 일이 별로 없는 아이로 치부된 일이 많았다. 한두 번 그런 대접을 받다보면 분명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싫어지는 법. ‘그래, 나는 그냥 가만히 있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야.’ 이렇게 마음먹어지니 모든 일에 주저하게 돼 버렸다. 남이 지적하는 일 뿐 아니라 내가 실수한 일에도 너그러워지지 않기도 한다. 걸핏하면 엄마랑 싸울 때마다 듣는 ‘너 그거 열등감이야.’소리가 내 귀와 마음은 심하게 거부하지만 엄마여서 딸한테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함인지도 모른다. 그 솔직함을 피한방울 안 섞인 남편까지 덧대고 있을게 아이러니 할 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지적당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는 게 아직도 버겁다. 그야말로 쿨하지 못한 나여서 다른 사람이 되어 살고 싶다. 남편은 큰 의미 없이 더 잘챙겨주길 바란다고 부탁하는 말일수도 있는데 괜히 내가 촉을 세워 듣는 사람이란 생각도 든다. 끊임없이 인정해주길 바라는 마음의 소리가 열등과 부딪히는 굉음이 들리지 않으면 좋겠다. 그런다면 센스 있는 아내로, 엄마로, 딸로, 나 자신으로서의 당당함이 돋보일거같다. 그리고 중요한건 화를 참아야 할 때 참고 쌓이지 않고 건강하게 풀 수 있는 대안도 마련해야 겠다는 생각도 든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아침엔 불편하게 들린 남편의 목소리는 아무렇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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