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어디에 있는지...
밖에 볼일을 보고 집으로 가려다가 엄마랑 연락한 지 오래되어 전화를 걸었다. 엄마네 집 방향으로 가려다가 신호가 길게 가기에 핸들을 돌려 끊으려던 참이었다.
"응, 엄마다. 어쩐 일이냐?"
"엄마, 어디셔?"
엄마는 병원 약 처방받으러 가는 길인데 혼자 버스를 타고 나왔다고 한다. 얼마 전 딸아이 병원 다녀왔던 일로 통화를 하다가 말투 때문에 싸움이 있은 후 내가 전화를 걸은 것이 이번이 세 번째다. 나는 아직 어색한데 전화를 받은 엄마 목소리에 반가움이 묻어있음을 느꼈다.
엄마 사는 동네 단골 카페에서 바닐라라테 한잔 사드리고 돌아오려고 했다. 마침 약을 타러 나왔다기에 병원 앞에 주차를 하고 기다렸다. 병원 두 군데를 돌고 점심으로 초밥을 푸짐하게 사서 우리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는 차 안의 공기가 무거울까봐 걱정되었다. 싸우지 않았을 때에도 나는 엄마랑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편이 아니다. 재잘대는 성격도 아닐뿐더러 말투도 상냥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만 언성이 높아지면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많아서 웬만하면 말을 삼가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침묵을 지키려고 만난 게 아니니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지. 엄마는 몇 달 전 나눴던 얘기를 반복하기도 했고 최근 집을 옮긴 남동생 근황을 일러주었다.
최근 싸움에서 들었던 ‘제발 좋은 책 읽는 만큼 좋은 엄마, 착한 딸 되어다오’라고 차갑게 보낸 엄마의 카톡이 내 머릿속에 아직 남아 있다. 책 읽는 애가 그 정도 밖에 안 되냐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 말의 가시가 목에 걸린 채 만나서인지 편하지만은 않다. 나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이런 기억을 선명하게 붙드는 걸까.
다른 모녀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는 잘 나누지 않는다. 형식적인 가족 안부가 전부다. 웃긴 얘기 하나 하자면, 큰언니 친구가 너는 동생들 얘기 왜 안하냐고 물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어, 우린 각자 알아서 잘 사는 콘셉트이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우린 언제나 이런 식이다.
우리 집으로 같이 와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도 명분 없는 대화만 간간이 이어졌다. 커피가 바닥이 보일 때쯤 남편이 퇴근했다. 이번엔 대화주제가 바뀐다. 남편이 산에 갈까 말까 중얼거린 말을 듣고 엄마도 한마디 거들었다. 엄마도 산에 가는걸 좋아했는데 지금은 무릎이 아파서 못 간다고 말이다. 그 틈에 20대 초반 엄마랑 단둘이 산에 간 일이 기억나서 물었다.
"엄마 나랑 그 산에 간적 있잖아."
"어? 같이 갔었다고?"
"엄마 기억 안나?"
아... 기억 안 나는 표정이다. 나랑 보낸 시간의 기억이 없는 엄마가 솔직히 야속하다. 나의 스토리를 엄마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기억하는 걸까. 서운하려는 마음은 여기서 멈춰야겠다. 엄마 얼굴을 보니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는 눈치다. 엄마도 내 표정을 살피는 것처럼 보인다.
싸움 이후로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고, 병원 투어부터 점심까지 잔잔하게 흘러간 시간을 지켜내야 겠다는 생각뿐이다. 엉뚱하게 산에 같이 갔던 이야기를 꺼내지만 않았더라도 야속함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엄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오는 길, 웃픈 감정이 들었다. 어떻게 해석해야 멘 탈이 흔들리지 않을까? 아직도 어린 내면은 사랑받길 원하고 있다. 엄마는 엄마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나를 키웠을 텐데 어디서부터 나는 어긋나기 시작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