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밥 Jul 14. 2020

너나 나나, 나나 너나

부부의 세계

순간의 화가 누그러지는데 필요한 시간이 오래 걸릴 때가 있다. 내성적인 사람은 순간적인 순발력이 부족한 편이어서 상대방에게 무례한 말을 들었을 경우 당시의 분위기를 전환시키는걸 어려워 한다고 한다. 나 같은 경우가 그렇다. 주로 말의 억양과 선택된 단어에서 오는 예민함인데 매순간 그런 건 아니고 불편한 감정을 해소 하지 못한 채 그냥 지나가버릴 경우 그런 편이다. 출렁이는 마음을 쏟아 내지 못하면 계속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그럴 때 나만의 방법은 혼자 있는 일이다. 혼자 영화를 보거나 차를 몰고 최소20분 거리 외곽이라도 나가서 커피를 마신다. 그런 여유를 갖기 힘들다면 블로그를 통해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을 막 써내기도 한다.     

문제의 원인으로 싸움이 일어나는 대상은 늘 남편이다. 문제는 항상 사소하고 시시한데서 오는 법.

남편과 차를 타고 오다가 차에 표시되는 기름 확인되는 칸이 원인이었다. 조수석에 타있던 남편은 3만원치 가득 넣었는데 아직도 칸이 줄지 않았다고 하고, 운전하는 나는 거의 반 칸이나 줄었다고 말한다. 딱 봐도 줄지 않았는데 무슨 반 칸이나 줄었냐고 남편이 대꾸했다. 가득 넣었지만 표시 선은 벗어났음을 재차 확인하며 나도 대꾸했다.

여기까지만 주거니 받거니 1:1매치로 끝냈어야 했다.

운전하는 사람이 본 게 정확하지 안 그래? 하고 한마디가 더 많았던 내말에 끝까지 토 달아 얘기 하냐고 남편은 화를 냈다.

순간의 정적. 심쿵 할일도 아닌데 나대는 심장.

"당신말도 틀리진 않은데 내가 운전하며 확인하니 반 칸에 가까워져서 본대로 말 한 것인데  잘 안보여서 몰랐다고 말하고 넘어가면 안 되는 거야?"

"그래, 당신 말이 다 맞고 난 틀렸어. 이렇게 말해주면 당신 기분이 좋아?" 나의 마지막 멘트를 끝으로 정적이 흘렀다. 잠깐 숨을 고르는데 속으로 깊은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둘 다 못났다 증말.

하아.... 그분이 오시려는지 종잡을 수 없는 날이었다. 내가 생각을 지배하지 못한 못난 순간이었다.


남편과 헤어져 집에 가는 길, 그냥 들어가기엔 아직도 나대는 심장을 위로해주고 싶어 커피 한잔을 사왔다. 커피가 아니었다면 맥주 한 캔이라도 비웠어야 속이 뻥 뚫릴 것만 같았다.      

커피를 들고 차에 올라타서 집에 가는 동안 오래된 경차의 액셀러레이터는 내 마음을 잘 아는지 부우앙~ 소리를 내며 서둘러 가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다. 뒤에 따라오던 BMW차 한대가 나를 앞질러서 갔다. 빨리 가고 싶으면 가라지. 난 최대한 천천히 집에 들어가고 싶으니까.          

밀려있는 빨래를 개서 다 치우기도 전에 영어공부방 에 갔던 큰딸이 들어왔다. 종일 티비만 보던 둘째에게 잔소리폭격이 날아갈 것이 예상되어 사들고 온 커피를 홀짝이며 눌렀다. 잘한 것 같다. 청소기 한판 돌리고 남겨진 옷들을 정리하며 기모가 들어간 옷도 정리했다. 기분전환을 위해 나를 달래기 위한 커피와 옷 정리가 오늘의 기분을 달래기에 적절 했다. 덕분에 애꿎게 아이한테 화살이 날아갈 뻔했다.

저녁 시간이 되어 아이들과 한 시간 산책을 하고 돌아온 남편과 마주 앉아서 자연스럽게 막걸리를 한잔씩 따라 마시며 대화를 텄다.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더 이상의 마찰은 내면 안 되기에 잘 참고 견디고 있는 나를 셀프 칭찬해주었다. 남편도 내심 미안했는지 그저께 만든 오이김치를 한 입 먹더니 “굿!” 한 마디로 미안함을 대신한다. 결혼10년차가 넘으면 정으로 살기 시작 하는 때인지 오늘도 싸우면서 정이 쌓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