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화가 누그러지는데 필요한 시간이 오래 걸릴 때가 있다. 내성적인 사람은 순간적인 순발력이 부족한 편이어서 상대방에게 무례한 말을 들었을 경우 당시의 분위기를 전환시키는걸 어려워 한다고 한다. 나 같은 경우가 그렇다. 주로 말의 억양과 선택된 단어에서 오는 예민함인데 매순간 그런 건 아니고 불편한 감정을 해소 하지 못한 채 그냥 지나가버릴 경우 그런 편이다. 출렁이는 마음을 쏟아 내지 못하면 계속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그럴 때 나만의 방법은 혼자 있는 일이다. 혼자 영화를 보거나 차를 몰고 최소20분 거리 외곽이라도 나가서 커피를 마신다. 그런 여유를 갖기 힘들다면 블로그를 통해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을 막 써내기도 한다.
문제의 원인으로 싸움이 일어나는 대상은 늘 남편이다. 문제는 항상 사소하고 시시한데서 오는 법.
남편과 차를 타고 오다가 차에 표시되는 기름 확인되는 칸이 원인이었다. 조수석에 타있던 남편은 3만원치 가득 넣었는데 아직도 칸이 줄지 않았다고 하고, 운전하는 나는 거의 반 칸이나 줄었다고 말한다. 딱 봐도 줄지 않았는데 무슨 반 칸이나 줄었냐고 남편이 대꾸했다. 가득 넣었지만 표시 선은 벗어났음을 재차 확인하며 나도 대꾸했다.
여기까지만 주거니 받거니 1:1매치로 끝냈어야 했다.
운전하는 사람이 본 게 정확하지 안 그래? 하고 한마디가 더 많았던 내말에 끝까지 토 달아 얘기 하냐고 남편은 화를 냈다.
순간의 정적. 심쿵 할일도 아닌데 나대는 심장.
"당신말도 틀리진 않은데 내가 운전하며 확인하니 반 칸에 가까워져서 본대로 말 한 것인데 잘 안보여서 몰랐다고 말하고 넘어가면 안 되는 거야?"
"그래, 당신 말이 다 맞고 난 틀렸어. 이렇게 말해주면 당신 기분이 좋아?" 나의 마지막 멘트를 끝으로 정적이 흘렀다. 잠깐 숨을 고르는데 속으로 깊은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둘 다 못났다 증말.
하아.... 그분이 오시려는지 종잡을 수 없는 날이었다. 내가 생각을 지배하지 못한 못난 순간이었다.
남편과 헤어져 집에 가는 길, 그냥 들어가기엔 아직도 나대는 심장을 위로해주고 싶어 커피 한잔을 사왔다. 커피가 아니었다면 맥주 한 캔이라도 비웠어야 속이 뻥 뚫릴 것만 같았다.
커피를 들고 차에 올라타서 집에 가는 동안 오래된 경차의 액셀러레이터는 내 마음을 잘 아는지 부우앙~ 소리를 내며 서둘러 가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다. 뒤에 따라오던 BMW차 한대가 나를 앞질러서 갔다. 빨리 가고 싶으면 가라지. 난 최대한 천천히 집에 들어가고 싶으니까.
밀려있는 빨래를 개서 다 치우기도 전에 영어공부방 에 갔던 큰딸이 들어왔다. 종일 티비만 보던 둘째에게 잔소리폭격이 날아갈 것이 예상되어 사들고 온 커피를 홀짝이며 눌렀다. 잘한 것 같다. 청소기 한판 돌리고 남겨진 옷들을 정리하며 기모가 들어간 옷도 정리했다. 기분전환을 위해 나를 달래기 위한 커피와 옷 정리가 오늘의 기분을 달래기에 적절 했다. 덕분에 애꿎게 아이한테 화살이 날아갈 뻔했다.
저녁 시간이 되어 아이들과 한 시간 산책을 하고 돌아온 남편과 마주 앉아서 자연스럽게 막걸리를 한잔씩 따라 마시며 대화를 텄다.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더 이상의 마찰은 내면 안 되기에 잘 참고 견디고 있는 나를 셀프 칭찬해주었다. 남편도 내심 미안했는지 그저께 만든 오이김치를 한 입 먹더니 “굿!” 한 마디로 미안함을 대신한다. 결혼10년차가 넘으면 정으로 살기 시작 하는 때인지 오늘도 싸우면서 정이 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