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애가 된다는 말은 사실일까.
할머니는 올해 103세다. 101세에 폐렴도 이겨내고 102세에 고관절 수술도 거뜬히 받을 만큼 강철 체력을 가졌다. 혼자 누워서 허공에 대고 뭐라 알 수 없는 말을 가끔 내뱉기는 해도 대한치매협회에서 제작된 공부책에 글씨도 따라 쓰거나 색칠도 하고 주간보호센터를 주말도 나갈 만큼 세상과 소통하길 그 연세에 비하면 누구보다 활발히 움직인다. 할머니와 같은 나이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진 모르지만.
그랬던 할머니가 올해 들어선 부쩍 기억력이 없다. 설날에 증손주들 주겠다고 은행봉투에 담아 온 현금이 그 증거다. 옷장에도 넣었다가 서랍 속 옷 사이에도 끼워두기도 하고 텔레비전 뒤에도 숨겨 놓고는 누가 훔쳐갔는지 돈이 없어졌다고 찾았다고 했다. 아들인 나의 아빠한테 말하면 이상한 소리 한다고 한 소리 들을까 봐 며느리인 나의 엄마를 불러 두세 번이나 봉투를 찾았다. 그리고 엊그제 또 돈봉투가 없어졌다며 엄마가 가져간 거 아닌지 의심을 했다고 한다. 엄마는 그 말이 기분 나빴고 참는 것도 한두 번이지 무슨 죄가 많아서 자신이 이런 꼴을 당해야 하냐며 할머니한테 야단을 쳤더란다.
엄마도 할머니의 이상 행동을 모르지 않지만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데 이유가 있다. 스물세 살에 결혼해 아이 넷을 낳았다. 그것도 아들 타령하는 시어른들 등살에 결국 넷이나 낳은 거였다. 호랑이 같은 시할머니와 시부모님, 우유부단한 남편, 아이는 넷. 2025년에는 감히 존재할 수 없는 가족의 형태다. 허리 펴고 누울 시간도 없고 내 자식 예뻐서 물고 빨고 주무를 시간도 없던 엄마는 자신을 돌볼 여유도 모르고 칠십이 됐다. 어른을 모셔야 한다니까 따랐을 뿐 본인 의지대로 할 수 있던 건 없다고 봐야 옳다. 그저 먹고사는 일에만 몰두해 살았는데 큰 경제적 여유마저 도와주지 않는다. 그나마 외할머니가 남겨준 서울 외곽의 아파트 한 채가 엄마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다. 그리고 답답한 속을 터놓을 상대인 딸 셋.
치매나 다른 질병에 걸렸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 할머니를 바라보는 우리 손녀들은 매일 보지 않아선지 엄마가 푸념하기 시작하면 또 시작인가 싶어서 귀를 막고 싶다. 이 레퍼토리를 언제까지 들어야 하며 엄마 편을 들지 않으면 서운해할걸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다. 어떤 말이 엄마를 달래는데 가장 어울릴지 찾기 바쁘다. 그냥 들어주기만 해도 해소가 되는 거라면 자식이 아니라 상담 센터를 찾아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릴 때 엄마는 자주 이런 말을 했다. '너도 커봐라. 내 마음 알 거다.' 어떤 마음이길래 말해주지도 않은 엄마 마음을 내가 알 수 있다는 걸까?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가 왠지 나한테 저주를 내리는 것 같아 끔찍했다. 어린 내가 봐도 엄마가 살아가는 모습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 나이 마흔 후반에 들었다. 인생 2회 차를 사는 건지 아닌지 모르게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불안한 사십대다. 엄마처럼 시부모님을 모시지도 않고 호랑이 같은 시할머니도 없고 아빠처럼 우유부단한 남편도 아니며 나를 돌 볼 수 있는 시간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편이라 따지고 보면 행복한 사람이다. 그런데 부쩍 불안하고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 건 엄마가 전화 와서 지금 뭐 하냐, 시간 있냐고 물을 때다. 이건 필시 감정이 극에 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표현이고 할머니나 아빠 둘 중 한 사람과 마찰이 일어나서 푸념하고 싶다는 신호다. 자식은 부모의 감정쓰레기통이 아닌데 좋은 이야기보다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기 바쁜 모습에서 나는 매우 나쁜 딸이 돼버린다.
'제발 그만하세요. 엄마도 어른이고 내 부모예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속으로 삼키며 산다. 우리가 아니면 어디 가서 얘기할 데도 없을 엄마가 한편으로 안쓰러워서다. 매번 참으면 나 역시 곪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꺼낸 말은 '엄마 자신을 괴롭히는 일을 멈추세요. 우리도 사람인지라 계속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어쩌면 우리의 단호한 행동에 엄마도 서운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였다.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려고 천천히 깊게 말하는 동안 엄마는 의외로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리곤 한마디 했다.
'그래. 알아. 머리로는 하지 말아야지 하는데 나도 내가 통제가 안 되더라. 그래도 네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커보면 알 거라는 엄마 마음을 나는 알아차린 걸까. 어떤 말로 엄마를 진정시켜 줄지 몰랐던 내가 용기 내 건넨 말을 엄마가 받아들였다는 생각에 마음이 기뻤다. 나이가 들면 애가 된다는 말은 자기 얘길 들어줄 사람을 필요로 하는 일인 거겠구나 생각한다. 한참 자식을 키울 땐 자신의 모습을 찾을 시간이 부족했고 다 키워 독립시키고 여유를 가지려고 보니 뒷받침해주지 않는 경제사정이 야속했을 것이다. 그나마 작게라도 들어오는 월세와 가끔 자식들이 주는 용돈에 의지해 알뜰히 살림해 사는 엄마다. 그러니 할머니의 이상행동에 너른 마음으로 품어줄 여력이 없는 건 평생 엄마 자신을 위해 살아본 시간도 없는데 언제까지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가족이 이해해주지 않으면 누가 그럴 수 있을까. 가장 가까운 사이인 자식 말고는 푸념할 데가 없다. 엄마보다는 내가 좀 더 마음을 돌보며 살 수 있는 시간이 많은 건 사실이니 적절히 밀고 당기며 들어주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도 언젠가 딸들에게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휴 내가 못 살아. 언제까지 밥 차려주는 걸 해야 되냐.'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