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자식 집보다 병원을 더 많이 출입하는 시기가 왔다. 가까이 살면 매일 왕래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최근건강검진에서 갑상선 혹 크기 문제로 친정 아빠는 서울대병원으로 정밀검사를 받았다. 혹시 암은 아닌지 식구들이 입밖에 꺼내지 않았지만 심증을 갖고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물혹에 불과했고 음성이라 추적 관찰만 잘하면 된다는 소견이다.
친정엄마는 어느 날 어지럽다고 했는데 허약체질이시라 집안일 좀 쉬고 스트레스 안 받게 지내면 괜찮을 줄 알았더니 이석증 진단을 받았다.
당신이 손수 음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이라 도움이 되고 싶어 누룽지백숙을 해다 드렸다. 한 끼라도 덜 움직이시라고 말이다. 그러곤 내가 작은 사고가 나고 물리치료받느라 신경을 못썼다.
마음은 있었는데 외면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집에서 셋째고 단 한 번도 친정과 멀리 떨어져 살아보지 않았다. 자질구레한 일들 처리는 언제나 내 몫이었고 큰일은 언니들과 상의해 결정해 버리던 부모님을 한땐 야속해서 미워한 적도 있다.
서로 감정 표현이 서툴고 시간이 지나면 서운한 것들을 묻고 지내버린 터라 이제 되돌이켜 생각하기도 싫다.
엄마의 이석증은 나도 걸려본 경험이 있어서 신경이 쓰였다. 어지러움의 정도가 상상초월이다.
놀이터 뺑뺑이를 백바퀴즘 돌고 멈출 줄 모르는 상태라고 할까.
작은 몸으로 늘 종종거리며 조금이라도 싼 가격을 찾아 마트에서 장 보던 엄마였는데 뭘 해 먹고 지내실지 알면서 모른척한 게 몹시 미안하다.
아직 차도가 없다며 병원에 다시 간다길래 차로 모셔왔다. 의사는 비타민D 수액을 추가 처방했고 엄마는 지금 수액실에 누워 있다.
복용약을 대신 지어오는데 병원 앞에 둘 다 머리가 새하얗게 쇤 어르신 부부를 봤다. 휠체어에 할머니가 앉았고 뒤에 할아버지가 섰다. 평생 자기 외모를 가꾼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 검게 탔고 주름이 깊고 웃지 않는 얼굴이었다. 진료 결과 때문이거나 더운 날씨 때문이거나이겠지. 뭐든 고단함이 느껴졌다. 동네 의원이 아니어서 접수, 수납을 기계로 일부 처리해야 하고 검사를 한다면 복잡한 병원 동선을 이리저리 다녔을 것이다. 직원들은 몇백 명 되는 환자들을 앵무새처럼 반복된 말을 수없이 하느라 지쳐갈지도 모른다.
엄마는 의사가 진료베드에 이리저리 눕혀보고 처방하더니 검사료만 삼만오천 원에 수액비가 삼만칠천 원, 기타 진료비까지 구만원을 냈다.
미리 돈을 안 챙겨가서 민망했다. 집에 갈 때 차 안에 둔 비상금을 꺼내야겠다.
자식이 가까운데 살면 이런 게 좋다. 갑자기 병원 갈 때 운전기사가 돼 줄 수 있고 즉시 병원비 보태게 용돈도 드릴 수 있다.
나는 전업주부라서 엄마가 웬만하면 나한테 돈 받길 꺼려하지만 안 받진 않는다.
병원보다 자식들 집에 놀러 다니며 여유 있게 늙어가는 부모님이 아니어서 매우 애석하다.
내가 못 이뤄준 것 같아 미안함마저 드는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