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부터 아이들은 입이 근질거리고 냉장고 문을 열기 바쁘다. 분명 아침이랑 달라진 것 없는데 수십 번씩 열면서 뭐 먹을 거 없나 기웃거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뭘 먹을지 궁리하는 아이들.
첫째는 학원을 다녀오니 오후 다섯 시. 더구나 오늘 점심엔 단호박 치즈구이, 식빵 한 장을 먹었으니 배고플만하다.
요플레를 하나 꺼내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었다.
어제저녁 끓인 닭볶음탕을 상하지 않게 넣어 놨는데 올려 둘 곳이 없어서 요플레 위에 냄비채 올려놨다.
"어? 냄비가 요플레 위에 올려있네? 이거 어떻게 꺼내지 엄마."
이럴 때 별것 아닌데 내 마음은 두 사람이 된다.
'야, 냄비 먼저 꺼내면 되잖아. 생각 좀 해봐.'라고 단정 지어 비난하듯 불친절한 말의 마녀와
'꺼내기 곤란하겠구나.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렴.'하고 친절하게 말하는 천사 같은 엄마다.
지난주에 광년이가 된 뒤로 불필요한 말로 아이에게 상처 주는 말 습관을 고치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서 <비폭력대화>라는 책을 읽으며 그동안 내 행동, 태도, 언행을 짚어 보니 나는 기본적으로 먹이고 입히는 일 외에는 아이와 좋은 관계를 갖는 연결에 다가간 적이 없다는 걸 알았다. 일방적 지시에 따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애들은 참 착해.'라고 착각했다.
요플레를 먹으려는 아이에게 "냄비를 두 손으로 꺼내봐. 그럼 할 수 있겠지?"
그러더니 아이가 한마디 얹었다.
"난 엄마가 우리 군것질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냄비 올려둔 줄 알았지 모야."
오 마이 갓. 애들한테 나는 그런 사람으로까지 보였었구나.
"미안해 얘들아, 엄마가 그동안 마녀 같았다. 그렇지? 앞으론 상처 받지 않게 말조심할게.(잘 될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