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살면서 사람들에게 참 많은 실망을 하곤 합니다.
선한 가면을 쓰고, 세상을 속이며 이득을 챙기는 사람을 보면,
세상의 모든 욕을 퍼붓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나는 그들을 비난하고 욕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전보다 몇 배 더 사랑하려 노력하죠.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사람은 사랑하는 한,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부족한 건 돈과 명예가 아니라,
누군가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나는 그 사람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가짐이 바뀌기를 바라며
세상이 미워질수록 세상을 더욱더 사랑할 생각입니다.
물론 쉽지 않겠죠.
가끔 억울함에 가슴이 답답해지겠죠.
하지만 나는 사랑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사랑을 만나면 기적을 만날 수 있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요.
- 김종원 <사색이 자본이다> 중에서
저는 세상을 사랑 할 줄 몰랐습니다. 특별한 사람만이 세상을 사랑할 줄 아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삶이 이상하게 쉽지 않았거든요. 쉽게 살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평범하게라도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조차 허락을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감사한 것은 그 평범하지 않은 그 상황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살았다는 점입니다.
많은 눈물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나온는지 눈물은 계속 흘러내렸습니다. '나'라는 사람을 놓고 싶지 않아서 너덜 너덜 거린 몸과 마음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그저 살고 싶었을 뿐입니다. 꿈과 희망을 찾기 보다는 그냥 삶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내성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저는 늘 고민에 고민을 더한 한 사람이었습니다.
2016년 2월 4일. 저는 하온이를 안고서 속회 예배에 참여하는 중이었습니다.
예배를 인도하시는 권사님께서는 사랑장이라고 이야기하는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어주셨습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순간 눈물이 샘이 마구 터졌습니다. 저는 하온이를 앉은채 그 시간 계속 울고 있었지요. 아내는 그 당시 제가 눈물이 많았음을 알기에 그저 휴지를 저에게 준채 옆에서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그런 저를 의아하게 바라봤지요.
당시 썼던 글을 다시금 읽어 봅니다.
그동안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27년간 교회에 다닌다고 했지만 , 그저 교회에 다닐 뿐 이었습니다. 그저 교회에 다닐 뿐. 진정한 예배의 느낌을 못받았던 것 같습니다.
교회를 다닌 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아니 남들이 봤을 때는 신앙인으로 보일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가 첫번째 핵심입니다. 남들은 이것을 보고 저라는 사람을 신앙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두번째 핵심은 뭐냐면 [자기가 보기에] 이것입니다. 자신은 압니다. 남들은 속일 지 몰라도 자신만은 자신을 속일 수 없습니다. 남들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만은 절대 속일 수 없습니다.
제가 27년간 교회에 다녔음에도 신앙인이 아니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남들이 알아주고 보아주는 내가 아닌 내가 아는 나! 즉 나 자신은 내 신앙이 어느정도 인지 안다는 의미입니다.
그동안 친구가 좋아서 교회에 다녔고 , 사람의 칭찬이 좋아서 다녔고 , 사람들의 교제가 있어서 다녔고, 나눔이 있어서 다녔고, 따뜻한 말이 있어서 다녔고, 말씀이 좋아서 다녔고, 사람들이 좋아서 다녔고 등 저는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에 다녔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진정한 신앙의 의미를 단 한마디를 듣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예기치도 못했습니다. 이런 시기에, 이런 곳에서 , 이런 감정의 북돋음을 주시리라고는 .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중 정말 티끌보다 못한 하찮은 저에게 이런 큰 감동을 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저희 교회는 매주 목요일 또는 금요일에 속모임을 합니다. 속장님와 그 속원들이 모여 말씀을 나누는 것이죠! 아내와 둥이들 데리고 부랴부랴 모임 장소에 오랜만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속장님께서 인도해주셨습니다. 둥이중 한명은 무릎위에 않히고 [사랑장]이라고 일컫는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어갔습니다.
그동안 저에게는 성경말씀이란 것이 하나의 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왜냐! 크게 내 삶에 의미가 없었으니까. 이말의 의미는 뒤에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오늘 모인 인원은 속장님을 비롯해 어른 7명, 두돌 지난 아이 3명 이렇게 10명이 둥글게 모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고린도 전서 13장을 한 구절씩 읽고 있는데 문득 가슴에 깊숙히 뜨거움이 몰려옵니다. 한 단어가 저에게 심장을 두근 두근 두근 ! 아니 이제야 진정한 그것을 발견하고 , 이제야 진짜 신앙이 저에게 27년만에 다가온 것입니다. 이제야! 아니 이제 비로서 진정한 신앙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사랑] 이라는 한 단어!
아무 생각 없이 읽었던, 그저 문구가 좋았던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이 오늘 저에게 깊이 있게 다가왔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주체없이 하염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사람들이 있었기에 저는 한손으로 제 두눈을 가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흐느꼈습니다. 하염없이.
울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강력히 제 가슴속을 [사랑]이라는 단어 한마디가 제 안에 있는 아픔과 슬픔과 저 구석에 잠자고 있던 내면아이를 싹 다 씻어주는 것이었기에 눈물이 안날래야 안날수가 없었습니다.
이거구나! 이거구나! 이 [사랑]이라는 단어가 바로 이거구나!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모든 것을 견디느나라
- 고린도전서 13장 4절~7절"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슴 깊숙히 제 삶에 다가오니 진정한 믿음을 이제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아내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한없이 울고 이야기 하면서 또 깨달은 것은!
'왜 내가 37년간 살아오면서 왜 나를 이렇게 광야의 길을 걷게 하셨는지 이제야 알았다.
왜 우리 어머니, 우리누나, 우리 아버지를 그렇게 힘들게 세상속에서 힘들게 사시게 했는지 이제야 알았다.
왜 나를 이곳 평택에 보내서 이런 고독과 이런 아픔을 주셨는지 이제야 알았다.
왜 나를 남들 처럼 살지 않고 남과 다른 삶을 살게 하는 마음을 강력히 주셨는지 이제야 알았다.
왜 외할머니께서 새벽기도에 저를 위해 어떤 기도를 해주셨는지를 이제야 알았다.
왜 나에게 이런 아내를 만나게 했고 왜 나에게 이런 아이들을 허락해 주셨는지 이제야 알았다.'
아내와 이야기 하면서 그동안 불평했던 제 인생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얽혀있던 실타래를 오늘에서야 모두 풀 수 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성경]이 제게 다시 다가 왔습니다. 이제는 인생에 의미가 된것입니다. 제 인생에 [성경]은 의미가 된 것입니다.
그동안 속여왔던 남들이 보기에 [신앙인] 이었던 저는 이제는 제가 보기에 [진정한 신앙인]이 된 것입니다. 남들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속일 수 없지요!
그동안 속여왔던 저를 내려놓을 수 있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사일기에 [신앙]을 맨 앞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다짐을 해봅니다.
'모든 일에 앞서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겠다고.'
그러자 [성경]을 너무 읽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가 생겼습니다. 그동안 읽지 않았던 [성경]이 이제는 제게 삶의 의미로 다가왔기에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제 의지대로 우선순위를 둘 것입니다.
오늘 이 귀한 깨달음 글로써 모든 것을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그 느낌 저는 압니다. 나 자신은 알기에 더욱 감사합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운전을 하는 도중 아내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역시 수많은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당시 '진짜 사랑'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것을 보니 아직도 제 가슴은 따뜻한 것 같습니다.
제가 살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저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지요.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저를 사랑하게 되니 주변이 더욱 사랑스러워집니다. 주변을 사랑하니 세상을 더욱 사랑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김종원 작가님의 한 문장이 오늘 이른 새벽 제 가슴을 더욱 환하게 비춰주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한,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욱 사랑하는 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