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의지해야 하는 아이의 마음을 아십니까?
아이는 혼자서 해낼 수 없을 때 도움을 구합니다.
가끔은 무언가 혼자 해내려고 노력합니다.
다만 보람 없이 실패하지요.
이럴 때 다른 이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아이는 안달합니다.
어른들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그 손을 빌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환자가 매정한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에
그 변덕을 그저 참듯이 말입니다.
-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중에서
무서운 말이네요.
어른으로서 가슴 깊이 새겨야하는 깊이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역시 마찬가지 였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제가 신뢰하지 않는 어른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그 사실 하나는 저를 더욱 어둠 속에 갇혀 있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은 그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듣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조언이라 할지라도 그저 듣고 반응하는 척할 뿐입니다.
아이들에게 신뢰를 받는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저는 이 신뢰라는 말을 달리 표현하면 존경에 연관지어 말하곤 합니다.
'신뢰를 받아라 = 존경을 받아라'
"선생님, 아이가 제 말을 도무지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어떤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음... 조금 어려운 방법이긴 한데 이것만큼 좋은 것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아이에게 존경을 받으세요. 그러면 아이가 잘 따를 것입니다."
"아... 그것말고 좀더 좋은 방법은 없나요?...."
"아이가 존경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세요. 책속의 인물도 좋고, 사람도 좋고... 무엇보다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라는 만큼 본보기로서 내 아이에게 존경을 받는다면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네....."
우리 대부분은 어떤 메뉴얼을 원합니다. 무언가를 할 때 양식부터 찾지요. 그리고 누가 만들어 놓은 그 양식의 틀안에 우리의 사고를 갇혀놓곤 합니다. 더이상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말이지요.
양식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더하고 빼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나만의 메뉴얼이 탄생이 됩니다.
아이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존경 메뉴얼을 작동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여기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내가 성공을 했다면 오직 천사와 같은 어머니의 덕이다.
- 링컨
하나님께서는 링컨에게 위대한 사람이 될 만한 조건은 한 가지도 주시지 않으셨다. 다만 그에게 가난과 훌륭한 신앙의 어머니만을 주셨을 뿐이다
- 링컨의 전기 작가
전광 목사님의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을 통해 만난 그의 모습에서 가장 중요한 부모로서의 핵심 요소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존경이란 키워드입니다.
좀더 따라가보겠습니다.
어머니가 나의 마음에 그려 주신 그림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 이야기였는데 평생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 링컨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
- 링컨의 어머니 낸시 행크스
여기서 만약 링컨이 어머니 낸시를 존경하지 않았다면 과연 이말을 실천하려고 그렇게 평생동안 애를 썼을지 의문이 듭니다. 신뢰를 하지 않으면서도 그녀를 의지하고 있었다면 그녀의 죽음과 동시에 그녀가 했던 모든 말들을 말끔히 잊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링컨은 어머니를 존경했기에 그녀 말을 신뢰하였고, 마지막 유언을 지키기 위해 삶 속에서 실천하기에 이릅니다.
사랑하는 에이브야! 이 성경책은 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내가 여러 번 읽어 많이 낡았지만 우리 집안의 값진 보물이란다. 나는 너에게 100에이커의 땅을 물려주는 것보다 이 한 권의 성경책을 물려주는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에이브야! 너는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다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부탁이다. 약속할 수 있겠니?"
- 링컨의 어머니 낸시 행크스의 마지막 유언 중
링컨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 까요?
'엄마 제가 꼭 그 말씀 지키면서 살께요!'라고 굳은 다짐을 하면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이런 유언을 하기 까지 얼마나 서로간의 래포가 형성되어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갔을지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내가 아직 어려 글을 읽지 못할 때부터, 어머니께서는 날마다 성경을 읽어 주셨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으셨네. 통나무집에서 읽어 주시던 성경 말씀과 기도 소리가 지금도 내 마음을 울리고 있네. 나의 오늘, 나의 희망, 나의 모든 것은 천사와 같은 나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네.
- 링컨의 친구 빌리 허던에게 한 고백 중에서
자녀가 자신의 부모를 존경한다고 말은 하지만 가슴으로 느껴서 진정한 존경을 받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저는 링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떤 부모, 교사가 되야겠다는 이상적인 모습을 그렸습니다.
존경받는 자가 되자!
다른 어떤 미사어구도 그 '존경'하나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존경이란 키워드에는 무수히 연관되는 것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뽑으라면 '진정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그를 몸소 삶에서 실천하며 보여줄 때 비로소 존경이란 말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100문 1답으로 만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신앙생활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고요? => 자녀에게 먼저 존경받으세요.
책을 읽으라고 해도 게임만 한다고요? => 자녀에게 먼저 존경받으세요.
공부하라고 해도 하지않는다고요? => 자녀에게 먼저 존경받으세요.
학교폭력을 수시로 한다고요? => 자녀에게 먼저 존경받으세요.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고 부모님의 말은 잘 듣지 않는다고요? => 자녀에게 먼저 존경받으세요.
자녀가 성적으로 문란한 삶을 살고 있다고요? => 자녀에게 먼저 존경받으세요.
자기 밖에 모르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고요? => 자녀에게 먼저 존경받으세요.
부모에게 욕하고 때리고 그렇고 그런 인생을 살고 있다고요? => 자녀에게 먼저 존경받으세요.
자녀가 꿈이 없다고요? => 자녀에게 먼저 존경받으세요.
사회에서 멋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가 되길 원한다고요? => 자녀에게 먼저 존경받으세요.
존경만 받으면 부모님께서 하시는 말씀 하나하나가 가슴에 의미로 남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의미가 아닌 잔소리 / 상처 로만 남게 되겠지요.
의미를 남길 것이냐, 잔소리 / 상처 를 남길 것이냐는 바로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존경] 꼭 받으셔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자신을 매일 돌아보고 더 나은 길로, 가치있는 길로 걸어가면 됩니다. 자신을 아는 것이야 말로 진정성 있는 삶을 사는 것이고, 그 진정성은 결국 아이에게 전이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선한 진정성으로 아이에게 신뢰받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신뢰받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