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실패를 경험했다고 해서 내가 내 인생 전체가 '실패자'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내게 결함이 있어서도 내가 남들보다 못나서도 아닙니다.
단지 실패는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나의 접근 방식이 잘못되었구나'를 가르쳐주는 귀중한 계기일 뿐입니다.
그래서 실패 후에는 냉정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지금의 경험이 나에게 준 가르침이 무엇이지?'라고 말입니다.
- 혜민 스님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중에서
저는 도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도전하기 보다는 그 반대의 것을 좋아합니다. 쉽게 할 수 없는 것들을 말이죠. 그런데 막상 해보니 저또한 쉽지 않기에 자주 실패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때 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어? 이거봐라! 역시 쉽지 않군! 그래도 다시 한번 더 도전!' 그리곤 또 다시 도전-실패-도전..... 도전- 성공~~~ 을 하기도 합니다. 그때의 짜릿함은 아주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때는 무엇보다 성공을 토대로 자존감이 1도가 높아집니다.
기억을 더듬어 중학교 때로 돌아가봅니다. 중학교 3학년 당시 인기가수는 <슬픈 언약식>, <마지막 약속> 등의 노래로 가요계를 평정한 김정민 이었습니다. 매력적인 샤우팅으로 노래를 하곤 했습니다. 남들이 쉽게 따라부르기 힘든 곡이었습니다. 저에게 도전 레이더망에 걸렸습니다. 샤우팅을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저는 노래부르기를 즐겨했었고, 좋아하는 노래는 수백번 듣기도 하는 등 열심히 들으며 모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제가 듣기에 김정민 스러워 집니다. 이제 아이들 앞에서 선보일 시간! 친구들 앞에서 김정민의 샤우팅을 온힘을 다해 부르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아주 좋은 반응이었지요. 저의 자존감 상승은 함께 향상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 봅니다. TV를 보는 데 <지금 이대로>라는 곡으로 US 라는 듀엣 그룹(* 당시에는 몰랐는데 이글을 작성하면서 알아보니 여자보컬이 유채영씨 였네요! 잠시 이 세상에는 현재 없지만 멋진 곳에서 노래하고 있는 그녀를 응원해봅니다.)이 노래를 하는데 남자 가수의 빠른 영어랩이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특이하였죠! 다른 친구들은 녹색지대 같은 발라드를 부를 때 저는 영어랩을 들리는 대로 적어서 흉내내기에 바빴습니다. 그로인해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영어랩이 완성 되었습니다. 훗날 대학교 4학년 졸업 여행에 가서 무대에서 노래를 소화했습니다. 앞팀이 지누션의 <말해줘>를 하고 제가 바톤을 이어받았습니다.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납니다.
"앞 친구들이 너무 좋은 노래를 해줬습니다. 남자친구의 랩과 여자친구의 노래가 하나로 엮였기에 더욱 듣기 좋았네요. 저는 이것을 하나로 준비했습니다. 그냥 랩이 아닌 영어랩, 3단 고음의 여자음성! US의 <지금 이대로> 갑니다."
"이젠 헤어져야 해~ 음악이 멈추면~ 난 눈물 대신 웃어 줄거야 ~ 너의 뒷모습까지 사랑할 수 있어 ~ 내 맘속 깊이 간직한 채로
돈유노 유캔비 슬로 와라이빗라라 미나니 모어 (웅얼웅얼) 안을거야~~~ "
노래를 마쳤을 때 당시 열호와 같은 함성을 받으며 무대를 내려왔던 기억이 납니다.
나름의 틈새 도전 전략으로 남들이 하지 않았던 것을 선보였기에 가능한 성공이었습니다.
또 한 장면이 생각이 납니다. 이것도 희귀 경험이라서 기억이 생생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친구가 명동성당과 연계하여 영등포 우체국 앞에서 주말마다 기타하나를 메고 마이크, 엠프를 설치한 뒤 버스킹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버스킹 무대 앞에서 작은 도움의 손길위한 모금함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버스킹이 나름 흔하긴 합니다만 당시 제가 본 친구의 모습은 완전 멋짐 그 자체 였습니다. 제가 친구에게 물어봤습니다.
"무대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준비해야할까? 나도 하고 싶다."
"기타로 칠 수 있는 곳 2~3곡만 연습해와봐!~ 그럼 할 수 있을거야"
당시 저는 코드진행이 쉬운 3곡을 맹 연습했습니다.
신성우의 <서시>, 녹색지대의 <준비없는 이별>, 윤도현의 <너를 보내고>
이제 저도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저에게 무대를 맡기고는 당시 유행했던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하기 위해 PC방으로 갔네요.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가려했지 ~ 너와 내가 있던 그 언덕 풍경속에 ~ 아주 키 작은 그 마음으로 ~ 세상을 꿈꾸고 그리며 말했던 곳~"
일단 3곡을 다 부르고 나니 아이템이 다 떨어졌습니다. 친구는 아직도 오지 않고.
저는 또다시 똑 같은 래퍼토리를 했습니다. 그렇게 1시간이 흘렀네요. 친구는 아직도 깜깜 무소식입니다. 당시 변성기 때라서 고음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고, 목도 피곤했습니다.
또 다시 불렀습니다. 아뿔싸!~ 일명 삑사리가 난 것입니다. 당시 지나가던 연인이 모금함에 돈을 넣으려다가 제 삑사리를 듣고 그냥 가는 모습이 포착되었습니다. 아~~~
그 뒤로도 바람때문에 악보가 날라가 노래 부르다가 잠시 멈추기도 하고, 또 다시 삑사리가 나는 등 등에는 어느순간 땀줄기가 흘러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혼자서 무대를 감당하느라 겪었던 경험들이 저에게 대학 시절 콘서트를 준비할 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에너지로 더욱 즐겁게 대학시절 음악과 함께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을 비롯한 수많은 저만의 실패력은 미래의 약이 되었습니다.
외고 낙방, 연세대 낙방, 각종 아르바이트 경험(신문배달, 찹살떡 팔기, 장난감 날개 끼우기, 나훈아 리사사이클 홍보, 장난감 노점상, 과일가게에서 일하기, 식당 홀서빙, 전화번호부 광고 섭외하기 등), 연애의 좌절, 주식/펀드 중독, 바닷가에 죽을 뻔한 경험, 스키장에서 낭떠러지에 떨어질 뻔한 경험, 스키장에서의 심한 충돌, 놀이터 엉덩방아(3m에서 자유낙하), 초등학교 때 담배꽁초 줏어서 피우다 기절한 때, 초등시절의 도벽, 거짓말, 게임 중독(초등~중1), 중학교 1학년 여성 성적 농담하다가 도덕 선생님께 걸려서 자퇴 권고 당한 경험, 어머니께 심한 욕설을 했던 점, 무리한 대출, 이기려고 기를 썼던 모든 순간, 오락실 앞잡이 노릇, 산소 벌통 건들기, 1:3 싸움 도망, 컨닝의 대가, 군인시절 중요한 보고를 하지 않아서 사단에서 다이렉트로 전화온 때 등 모든 것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귀한 경험들입니다.
제가 저에게 감사한 점은 실패를 하더라도 실패로 인정하지 않고 잠시 실수라고 여겼다는 점입니다. 그로 인해 아주 엎드러졌기 보다는 다시 훅훅 털고 새로운 도전 또는 재도전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한 내공이 많이 쌓였습니다.
지금도 실패를 걱정하기 보다는 도전하는데 의미를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실패력이 결국 성공으로 가는 지금길 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김종원 작가님께서는 <사색이 자본이다>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라.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내 안에 담아라. 실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실패할 때마다 더 큰 자신이 되어 다시 일어서게 될 것이다. 다만 아무리 아파도, 반드시 깨어 있으라. 생각을 멈추지 마라.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네요.
잭 캔필드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1>에는 수많은 실패력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을 합니다. 이들의 삶을 통해 저는 더욱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 베토벤은 바이올린을 다루는 데 매우 서툴렀으며, 자신의 연주 기술을 개선하기보다는 스스로 작곡을 해서 연주하기를 더 좋아했다. 베토벤을 지도하던 음악 선생은 그가 연주하는 것을 듣고는 훌륭한 작곡가가 될 소질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 엔리코 카루소의 부모는 그에게 엔지니어가 되라고 강요했다. 또 그의 담임 선생님은 그가 목소리가 안 좋기 때문에 노래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하지만 엔리코 카루소는 얼마 안 가서 전설적인 성악가의 위치에 올라섰다.
▶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은 의사가 되기를 포기했을 때 아버지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넌 사냥이나 다니고, 개와 쥐들을 쫓아다니는 일에나 쓸모가 있는 녀석이다." 다윈은 훗날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버지뿐 아니라 나를 가르친 모든 교사들로부터 지능이 보통 수준 이하인 평범한 소년으로 평가받았다."
▶ 월트 디즈니는 아이디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문사 편집장에게 해고를 당했다. 또한 월트 디즈니는 디즈니랜드를 세우기 전에 여러 차례 파산을 경험했다.
▶ 토마스 에디슨의 선생들은 그가 너무 지능이 모자라서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다섯 살 때까지 말을 하지 못했으며, 여덟 살이 될 때까지 글을 읽지 못했다. 그의 교사는 그를 "정신 발달이 늦고, 남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며, 어리석은 몽상 속에서 언제까지나 헤매다닌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마침내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으며, 쮜리히 과학 기술 전문학교에 입학을 시도했으나 거부당했다.
▶ 루이 파스퇴르는 대학에서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으며, 특히 화학 과목에서 22명 중에서 15등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는 세계 최고의 화학자이며 세균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 아이작 뉴톤은 초등학교 시절에 성적이 매우 형편없는 학생이었다.
▶ 조각가 로댕의 아버지는 언제나 "나는 바보천치 아들을 두었다"고 말하곤 했다. 학교에서는 가장 열등한 아이로 지목된 로댕은 미술학교에 입학하는 데 세번이나 실패했다. 로댕의 삼촌은 로댕을 교육시키는 일이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다섯 번이나 실패하고 파산한 끝에 마침내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 야구왕 베이브 루스는 가장 위대한 운동 선수이자 홈런 최다 기록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반면에 그가 삼진 아웃을 가장 많이 당한 세계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윈스턴 처칠은 6학년 때 낙제를 했다. 그는 평생에 걸친 좌절과 패배를 경험한 끝에 예순두 살이 되어서 비로소 영국 수상에 선출되었다. 그는 예순 다섯살 이상이 되어서야 세상에 가장 중요한 공헌들을 하기 시작했다.
저는 오늘도 링컨의 말을 가슴에 품고 실패에 맞서 한발작 나아갑니다.
"길이 약간 미끄럽긴 해도 낭떠러지는 아니야"
결국에는 승리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미리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