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위백규 선생님이 생각하는 우물 독서법

by 김진수 밀알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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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지으려는 사람은 먼저 독서의 방법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우물을 파는 사람은 먼저 석 자의 흙을 파서 축축한 기운을 만나게 되면 여기서 더 파서 아홉 자 깊이에 이르게 되고 그 탁한 물을 퍼내고 나서 또 더 파서 아홉자 깊이 까지 파내려 간다.
아홉 자의 깊이까지 판 후에야 맑고 맛이 있는 물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이 물을 끌어올려 천천히 음미해보면, 그 자연의 맛이 그저 물이라 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정도 깊이의 물이라야 물 이상의 가치가 있고, 그것을 마시는 사람들은 오장육부와 피부가 좋아지게 되고, 음식을 맛있게 할 수 있고, 고기도 익히고, 옷도 빨고, 땅에 물을 주어 어디든지 쓰이지 못할 데가 없게 된다.
하지만 우물을 판다고 해놓고서는 겨우 석 자 깊이 정도만 파고 나서 얻게 된 젖은 흙을 가져다가 부엌 아궁이이 모서리에나 바르면서 우물을 판 보람으로 삼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 존재 위백규 선생 <존재집> 인용
김병완 <오직 읽기만 하는 바보> 중에서

위백규 선생님의 글속에서 독서도 그렇고, 글쓰기도 그렇고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우직함과 몰입이 중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문득 사자성어인 독서삼독(讀書三讀)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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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책을 읽고,
그 다음으로 필자를 읽으며,
최종적으로 자기를 성찰하는 일을 일컫는다.

간단히 말하면 텍스트 읽기, 저자 읽기, 자기 자신 읽기 라고 볼 수가 있네요.
우물을 석 자 파서 생긴 물, 여섯자 파서 생긴 물, 더 나아가 아홉자 까지 파서 생긴 물의 맑기는 전혀 다른 빛깔을 나타낼 것입니다. 그 단계까지 가는 것이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가치가 있는 행위겠지요.
독서와 글쓰기도 마찬가지!
어느 정도 독서 습관이 잡혀 텍스트 읽기의 맛을 느끼고, 더 깊이 몰입하여 어느 순간부터는 책을 쓴 저저와 이야기 하듯 저자의 생각에 끊임없는 물음표와 느낌표를 던지면서 읽는 저자 읽기의 맛을 느끼며, 더 깊이 가다보면 자기 자신과의 끊임없는 내면의 이야기를 통해 스티븐 잡스가 중요하게 여긴 Inner voice 즉,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되는 맛을 느끼게 됩니다.
이지성, 정회일 작가님의 <독서천재가 된 홍대리>에 나온 항아리 비유가 위백규 선생님의 우물의 비유와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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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항아리에 물을 채운다고 생각해보세요. 처음 한 두 방울 정도로는 눈에 띄지도 않겠죠. 바닥과 중간은 조금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항아리를 채우지 못했다는 점에선 마찬자기일 거예요. 그러나 반만 채우고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않고 한 방울 한 방물 마지막까지 부어넣는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제 경우에는 이 항아리 비유를 읽고 이런 결심을 해보았습니다.
"그래! 나도 매일 한방물씩 항아리에 물을 채워보자. 처음에는 티도 나지 않겠지만 1년, 2년... 5년... 지나다보면 문득 깨닫게 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책의 힘은 잘 모르겠지만 위인들이 책을 읽으라고 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래 한번 해보고 아니면 나와 독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다른 것 하면 되지 뭐!"
2011년 10월 처음에 가졌던 마음 덕분에 지금까지 책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100일 동안 33권 읽기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어느 순간부터는 정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노트에 좋은 문구를 배껴쓰게 되었고,
정리해 놓은 것들을 또 다시 정리를 하고 싶어 뉴턴처럼 키워드로 분류를 하게 되었으며,
분류해 놓은 글들을 토대로 블로그에 생각을 정리해보는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 생각들이 하나 둘 씩 모여 책이란 것을 쓰고 싶다는 (무모한^^;;) 도전을 하게 되었고, 결국 결과물 까지 이뤄내는 (스스로 생각해도) 깜짝 놀라운 일을 해냈습니다.
지금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이렇게 책을 읽고, 생각을 끌어내는 글을 쓰는 이 행위에 저에게 있어서 만큼은 무척 귀하고 가치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기억도 꺼내어보고, 함께 하고 있는 교실이야기, 미래의 꿈이야기 등 모든 것들이 글감이 소재가 되니 기록에 기록이 더해집니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또 다른 책으로 되고 독서, 글쓰기, 책쓰기, 나눔의 선순환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이뤄지니 결국 그 에너지는 아내에게도 전이가 되어 함께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 갑니다.

매일 이뤄지는 행위가 결국 인생을 바꿔가는데, 독서가 제대로 출발신호를 준 격이라 여깁니다.
아직은 일정한 주제를 생각하지 않고 손에 잡히는, 읽고 싶은 책들 위주로 마구잡이 읽고 있는데 앞으로 피터드러커 처럼 1~3년 주기로 주제를 정하여 연구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깁니다. 독서는 배움의 길로도 인도를 하네요. 아주 좋은 친구임이 분명합니다.
위백규 선생님의 우물 독서법, 독서삼독, 항아리의 비유 등을 통해 독서의 간절함을 깨닫고, 독서 임계점을 하나씩 이뤄가고 싶습니다.

<위대한 독서의 힘>의 저자 강건 작가님 처럼 임계점을 만나면 어느 순간 책과 떼려야 뗄수 없는 관계를 맞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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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임계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정확히 몇 권을 읽어야 임계점이 온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성공자 독서를 실천하면 누구나 변할 수 있다. 사람마다 임계점을 맞는 순간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누구나 변하고 성장할 수 있다. 나의 경우는 100권에서 처음 임계점을 맞았다.
- 강건 <위대한 독서의 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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