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은 좋은 것입니다 _ 괴테

by 김진수 밀알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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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좋은 것입니다.
나 자신과 평화롭게 살아가며
무언가 해야 할 것을 확실히 갖고 있다면
- 괴테 / 슈타인 부인 앞으로 보낸 편지

영감은 오직 고독 속에서만 얻을 수 있다.
- 괴테

결혼 한지 7년차 입니다. 그동안 이사는 6번했습니다. 남들은 이런 우리들을 이상하게 쳐다봅니다.(솔직히 관심도 없지만요^^;;)
"왜케 힘들게 살어? 남들처럼 편하게 살아야지. 어서 정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물론 저희 내외 역시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만 이사를 감행할 때마다 무언가 끌어오르는 표현못할 열정이 샘솟는 것이 항상 있었다는 것.
작은 성장 가능성이 1%라고 있었기에 우리 내외는 무서움도 모른채 그저 7년동안 6번 이사를 했습니다. 누가 떠미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죠.
그러면서 만난 친구가 있다면 바로 이 친구입니다.

고 독

파주에서 평택으로 내려왔을 때는 진짜 이 고독과 함께 했던 나날이었습니다.
당시 6개월 육아휴직 기간이었고 몸도 제대로 못가누는 쌍둥이를 데리고 이사를 감행했습니다. 6개월간 육아를 하면서 친구도 만난적도 없고 개인적으로 바름을 쐬러 나간 적도 없이 그저 육아 모드 였습니다. 그때 당시는 참으로 힘든 하루 하루 였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만 지금 돌이켜 보니 저를 급격히 성장시켜준 시간은 그 고독한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육아서를 집요하게 탐독했고, 아이들의 하루 종일 관찰 할 수 있었으며, 한명은 저와 껌딱지 처럼 착 달라 붙어서 상호간 래포가 아주 잘 형성이 되었습니다.
저희 내외는 전혀 몰랐던 각자의 내면아이를 그때 조금씩 조금씩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자아가 튀어나오는데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섬뜩하게 저희를 맞딱뜨렸습니다.
'이래서 최희수 씨는 <내면여행>에서 결혼은 두 사람이 아닌 내면아이를 포함한 네명의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하였구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육아는 참으로 고독한 작업이었지만 그와 더불어 지금 저를 단련 시켜준 이 친구를 제대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독 서

저에게 고독은 어느덧 이렇게 다가 왔습니다.
고 = Go / 독 = 읽다
가서 무조건 읽고 또 읽었습니다. 하나하나 책 속의 글귀들을 베끼고 또 베꼈습니다.
책을 쓰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살기위해서 읽고, 베끼는 작업을 무한 반복 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었던 지극히 자발적인 것들이었기에 그 순간만큼은 행복한 무아지경에 빠졌습니다.
아이를 안고 재울 때도 한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육아서를 읽어 나갈 수록 참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더욱 고독한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등한시 하는 것을 해야했기에...
더 불편한 길을 걸어야 했기에...
그것은 다름아닌 어른들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하찮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에게는 정말 중요한 하나의 의미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늘 하는 것들을 더욱 집중해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 놀아주기 / 놀아주는 동안 딴짓하지 않기
- 경청하기
- 눈빛 마주하기
- 읽어 주기 / 같은 것을 계속 또 읽어달라고 해도 무조건 읽어 주기
- 실수하는 경험 부여하기 / 쉽게 가기 위해 부모가 먼저 해주지 않기 / 기다려주기
- 함께 노래 부르기 / 춤추기 / 뛰기 / 매달리기
- 자신의 감정 충실히 표현하기 / '뗏지' 하는 것처럼 남탓으로 돌리지 않기
- 상처되는 말 보다는 긍정의 언어로 표현하기
-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 하듯 절대적 본보기를 보여주기
- 행복한 모습 보여주기
- 아이가 탐험하면서 성장하듯 함께 성장하기
- 눈높이만 낮추는 것이 아닌 마주보기
- 부모의 관점으로 하나하나 판단하고 재는 것이 아닌 아이의 사소한 일도 큰 일처럼 여기고 모든 일에서 올바른 관점과 방법으로 아이를 대하기
- '아이를 교육하는 데 사소한 일은 없다'라는 마음으로 함께 하기
- '아이에게 '보잘것 없는 일'은 없다.' 관점으로 다가가기
- 충분히 관찰하기
- 아이성장에 앞서 부모가 먼저 성장하기
-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아닌 '즐겁게 공부하기' / 부모의 내면 공부하기
- 부모가 원하는 잠재력이 아닌 아이의 내면에 있는 진정한 잠재력 끌어내기

'어른의 의미'가 아닌 '아이의 의미'를 더욱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의미'를 따라잡기 위해 더욱 관찰하고, 경청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래와 같은 글을 써가면서 기록을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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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현상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아이를 잘 키우는 방법적인 면이 잘 제시된 저서들이 시중에 깔려 있는데 육아서를 보는 부모를 찾기가 주변에 쉽지 않았습니다. 주로 TV에서 이야기하는, 주변 부모들이 이야기하는 등의 정보에 의존해서 아이를 키우는 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들과 대화를 하려고 해도 무언가 강한 고정관념의 벽이 있어서 대화가 꾸준히 이어나가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저서에서 공통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 것들과는 반대로 아이를 대하는 모습 등을 하는 분들의 대부분은 이런 변명으로 얼룩져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아이와 내 아이가 어디 같나요?
그들은 날 때부터 환경이 달랐기에 그렇게 키울 수 있었던 거에요. 그들도 제 상황이 되어봐요. 아이를 그렇게 키울 수 있는지. 변명하는 소리로 들릴 수 있지만 정말이지 제가 미칠 것 같아요.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보았습니다. 그들의 삶을! 책속에 나온 인물들은 포장되어진 것이 아닌 그 어떤 환경에서도 잘 자랐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한분 한분 만나면서 더욱 확고해졌어요. 그들처럼 고독해야겠다고. 수많은 육아 저서를 쓰신 분들은 고독의 대가들이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과 다르게 키우는 것이 아닌 남들과 달라야 만이 성공할 수 있는 육아이기에...
남들 처럼 남의 손에 무분별하게 맡겨지는 위탁 육아가 아닌 진정한 숨결이 느껴지고 부딪혀져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육아이기에...
우리는 점점 고독한 상황들을 즐기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고독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것이 오히려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을 주거든요. 이른 새벽에 일어나 혼자만의 고독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논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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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다

지금 비록 가진 게 없더라도 괜찮다.
지금 그늘에 있고,
아무도 나를 알아봐 주지 않는 것 같아도 괜찮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처절하고 비참하게 느껴지고,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외로워도 괜찮다.
그늘에 있다고 느껴질수록 이것은 절호의 기회다.
바로 그때가 당신의 내부를 단단하게 다질 수 있는 기회다.
뜨겁게 침묵하고 내부를 단단하게 쌓은 후
때가 되면 정금처럼 찬란하게 빛을 발할 것이다.

누가 나에게 뭐라 해도 상관없다.
내 자신이 나에게 가능하다고 한다면,
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가능한 것이다.

- 조성희 <뜨겁게 나를 응원한다> 중에서

이때 이 글을 필사하면서도 느꼈습니다. 나 자신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이런 상황은 지극히 아름답다고.

고독의 대가들은 모두 사색의 대가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종원 작가님은 <사색이 자본이다>에서 고독을 이렇게 풀어 설명합니다. 저에게 물음표를 느낌표로 준 저서 이기에 자주 인용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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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이고, 고독이란 혼자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이다.
고독은 내가 부르는 것이고, 외로움은 끌려가는 것이다.

저는 이 문구를 보자 마자 아이를 안고 있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난 외로운 것이 아닌 고독한 것이었구나!'를 알게 되었죠. 그래서 더욱 고독을 울부짖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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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철학자 칸트 역시 사색가가 되기 위해서는 고독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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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사는 내내 고독했다.
그는 노르웨이에 있는 자신의 오두막에서 몇 달씩 혼자서 고독을 즐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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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와 모차르트는 다른 사람이라면 산만하다고 느낄 환경에 있으면서도 고독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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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과일은 익었으나, 그대는 그대의 과알에 어울릴 만큼 익지 못했구나!
그러므로 그대는 다시 고독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앞으로 더 무르익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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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일 때,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느낄 수 있다.
초라한 자는 자신의 초라함을, 위대한 정신은 자신의 위대함을 온전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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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시간을 가지며 강력한 내공을 가진 자신을 발견할 수도, 민망할 정도로 빈약한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강력한 내공을 가진 자신을 발견하는 게 가장 좋은 일이겠지만, 당신이 후자일지라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오히려 후자이기 때문에 더욱 자신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

이들은 모두 괴테가 말하는 고독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역시 그들처럼 고독을 더욱 즐기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고독은 좋은 것입니다.
나 자신과 평화롭게 살아가며
무언가 해야 할 것을 확실히 갖고 있다면
- 괴테

저는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고, 무언가 해야 할 것을 확실히 갖고 있기에 지금 이 고독이 정말 좋습니다.
잘 아물게 하여 멋진 열매로 탄생될 것이기에 기대가 됩니다.

오늘도 뜨겁게 이 고독을 더욱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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