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혹시 '한 사람의 인생의 합보다 훌륭한 지식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남들은 한 번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는데, 정작 자기 안에 숨은 엄청난 재능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아까운 재능을 세상에 꽃피우지 못하고, 세상을 향한 분노만 키우며 사는 사람을 볼 때 마다 나는 가슴 아팠다.
그들이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는 이유는 한 사람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그대를 기대하게 된다.
나는 아주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고 있다.
"아직 자신의 재능을 꺼내지 못한 사람은 굉장히 매혹적이다."
당신이 매혹적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 김종원 <생각 공부의 힘> 중에서
평범!
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모나지도 않고 튀지도 않고. 저위, 저밑에 있으면 남의 눈에 튀기 때문에 다소 불편해집니다. 그래서 더욱 중앙을 고집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스스로 발표한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발표하는 것이 왜이렇게 떨렸는지 지금 생각해도 당시의 떨림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눈에 있는 듯 없는 듯 지극히 평범하게 잘 지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우연하게 마주한 공부에 대한 즐거움,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성적을 잘 맞는 것에 대한 좋은 점을 알게 되면서 교과서와 친해집니다. 주변 친구들과 잘 놀기도 하는 지극히 평범한 친구입니다. 친구들로부터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잘 지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어느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밤이었습니다. 저는 공부를 하다가 졸려서 기지개를 펴기 위해 두 팔을 쭉 폈습니다. 그런데 순간 필름이 끊겼습니다. 기절을 한 것입니다. 무의식 속에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눈앞이 깜깜해지더니 몸이 점점 뜨거워집니다. 무언가 떨림이 있더니 갑자기 세상에 빛이 홍해처럼 갈라졌습니다.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80개의 눈동자들이 모두 저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몸이 뜨거웠습니다. 멍한 상태로 자리에 앉아 친구에게 무슨 일 있었는지 물어봤습니다.
"원호야! 무슨 일 있었니?"
"너 잠시 기절하더니 몸을 떨었어. 그리고 눈을 핏기있는 새빨간 눈을 하고 있었지. 그리고는 30초정도 엄청 몸을 떨더라고."
"거품도 물었나?"
"아니 그건 아니었고, 떠는 너의 모습을 보고 성주가 두 팔로 몸을 잡아줬어. 그리고는 너가 다시 정신이 들어온거야."
인생무상!
저는 어쩌면 당시 기절하면서 몸이 뒤로 젖혀졌더라면 큰 사고를 당하거나 심지어는 뇌진탕 등으로 세상에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몸을 뒤로 젖힌채 기지개를 쭉 폈는데도 뒤로 넘어지기 보다는 옆으로 넘어졌으니 감사할 따름이지요.
1주일 동안 무념 무상의 상태에 빠졌습니다. 인생이 참 허무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을 당시 처음 인지 하게되었거든요. 만약 당시 죽었다면 저는 너무 허무했을 것입니다. 그동안의 달려온 모든 것이 의미없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니. 부모님, 친구들, 다양한 관계들, 공부한 것들, 체험한 것들 등 모든 것들이 저라는 사람이 없어진다는 전제하에 무의미해 보였습니다. 이어폰에서는 고인 신해철의 [날아라 병아리] 노래를 무한 반복으로 듣고 있었습니다.
눈물이 마를 무렵
희미하게 알수 있었지
나역시 세상에 머무르는 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한 말을 알수는 없었지만
어린 나에게 죽음을 가르쳐 주었네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 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너의 조그만 무덤가엔
올해도 꽃은 피는지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 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언젠가 다음 세상에도
내 친구로 태어나줘
앞으로 어떤 가치있는 삶을 살아야 되는지 고민하게 만큼 인생에 있어서 큰 사건이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없어지는 무가치의 삶이 아닌 하루를 살더라도 의미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당시 제가 얻은 사건에 대한 메세지입니다.
그래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제가 좋아하고, 즐겨하는 것을 만나면 엄청난 몰입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말처럼 밥먹는 시간도 잊은채 푹 빠져 삽니다.
기억을 더듬어 지금까지 저를 푹 빠지게 했던 것을 찾아가봅니다.
1. 노래 - 학창 시절
중, 고등학교 시절 노래를 들으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노래는 저에게 있어서 많은 위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희망을 선물해줬고, 공감, 사랑, 아픔, 이별 등 모든 희노애락이 전해졌습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MP3가 없는 테이프 세대였기에 일명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습니다. 공테이프를 사서 좋아하는 노래만 따로 담아 저만의 앨범들을 만들어 갔습니다.
용돈을 모아 무조건 5,000원 짜리 테이프를 사서 들었습니다. 집에 장난감은 없었지만 테이프는 점점 쌓여만 갔습니다. 좋은 노래가 있으면 그 한곡만 거의 무한 반복입니다.
생애 최초로 밤을 지새운 날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룰라의 2집 '날개잃은 천사'가 나왔지요. 저는 그 노래가 너무 좋아서 그날 2집을 수십번 전체 무한 반복으로 들으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중 저에게 강하게 울림을 준 군대를 가는 신정환 테마인 <친구를 보내며>에 흠뻑 빠져서 몇시간째 그 노래만 계속 반복시켰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좋아하면 열과 성의를 다해서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밤을 새고 가니 그 다음 날 일과는 .... ^^;;)
대학생이 되어서 기타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는 정기적으로 콘서트를 하는데 무대에 올라가는 것도 좋았지만 평소에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기에 너무 좋았습니다. 쉬는 타임에는 동아리 방에 올라가 기타를 치며 힘껏 노래를 부릅니다. 목청이 터져라 부릅니다. 아주 3쾌인 유쾌, 상쾌, 통쾌를 만끽할 수 있는 순간입니다.
대학 2학년 이 되면서 콘서트를 주관하는 음악부장이 되었고, 그때 엄청난 노래를 들었습니다. 좋은 곡조를 뽑기 위해 화음도 만들고, 듣고 코드, 음을 따는 등 기존에 해보지 못한 수많은 음악적 활동을 했습니다. 그 시절 음악적 감성이 제 인생을 돌이켜보면 가장 폭발하는 시기였습니다. 중간에 너무 힘이 들어 술을 먹고 울어보기도 했을 정도로 직책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지만 동기생들과 최고의 순간을 함께 한 좋은 추억입니다. 오후 6시 30분 부터 새벽 녁까지 무조건 음악활동을 했습니다. 엄청난 시간을 투자했지요. 당시의 삶은 정말 즐거웠고, 저에게 많은 것들을 선물로 안겨줬습니다. 집요하게 파고드니 음악을 그냥 듣고 부르는 사람에서 무언가 저만의 음악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으니까요. 나름의 몰입을 경험하게 되었던 즐거운 추억입니다.
2. 업무 - 군인 시절
4개월간의 사관 후보생 시절을 시작으로, 4개월 장교 훈련, 8개월 소대장, 24개월 인사장교 총 40개월(3년 4개월)을 군생활을 했습니다.
소대장 시절까지는 몰랐습니다. 군대가 엄청난 문서화된 조직이라는 것을.
인사장교라는 참모역할을 하면서 엄청난 업무를 최초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잠잘 때까지 업무에 치였다고 할 정로도 입에서 단내가 나는 것을 모른체 2년간 혹독한 훈련을 했습니다. 심지어는 자존감이 완전 바닥쳤을 정도로 심신이 완전히 넉다운이 된 시절입니다. 지휘관의 압박(?)을 이겨내면서 업무에 완전히 몰입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하는 성향이라서 작은 것 하나하나 세심하게 관리했습니다. 만사가 인사라고 잡다한 것들은 모두 인사장교에게 넘어왔습니다. 복지는 물론, 안전, 인성, 경리 등 학교에서 말하면 인성분야와 행정실의 일부 분야를 모두 혼자 도맡아 처리했습니다. 제가 제일 싫어했던 것은 부대관리주! 남들은 훈련이 끝나고 쉬는데 저는 쉬지도 못했습니다. 각종 프로그램을 짜고, 협조받고, 진행하고, ... 상급부대에 부대관리주 결과 보고서를 위해 수십장 작성하는 등.... 보고서에 '보'자도 처다보기 싫을 정도로 이골이 났습니다. (훗날 이 트라우마는 전역후 교직에 있는 연구 보고서 등에 등을 돌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당시 업무에 어쩔수 없이 몰입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3. 경제공부 - 주식
전역후 이제 스스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당시 2006년 후반 ~ 2007년 중순까지 증시가 완전히 활황이었습니다. 증시에 '증'자도 관심었던 저는 주변 친구들이 일명 대박을 경험하면서 저역시 주식에 뛰어들었습니다. 요기에 또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지요. 돈을 들여가며 배우고 또 배우며 분석하고 또 분석했습니다. 하나하나 기법을 익힐 때마다 놀라운 발견이라도 한듯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수업이 제대로 되었을 리가 없겠지요. 수업보다는 온통 이것에 푹 빠져있었으니... 지극히 반성이 되는 시절입니다.
2008년 1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경제 공황이 왔습니다.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증시를 보고 망연자실했지만 저는 그 겨울 방학을 온통 주식 공부에 올인했습니다. 아침 8시 기상해서 미국 증시 분석, 오후 3시까지 증시 현황 파악, 오후 6시까지 하루 증시, 외국인, 기관 관심 종목 분석, 밤 12시 까지 동영상 공부 등 이짓을 한달 내내 했습니다. 이런 마음이었죠. '절대 지지 않으리라.'
이때 2가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 돈을 따라가니 돈을 읽더라.
둘, 시장에 겸손하라. 이기려 들지 말아라.
라는 교훈이었습니다.
이것을 몇년동안 하니 조금은 알것 같습니다. '시장'이라는 거대함을 말이죠. 이제는 다른 관점으로 보는 눈을 갖게 된 것에 그동안의 수수료를 위안으로 삼습니다.
4. 영상제작
전역 후 2007년 우연하게 방송 업무를 담당하면서 영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가스였지요. 혼자 동영상 강좌를 보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엄청난 매력을 느꼈습니다. 어느날은 영상이 둥둥 떠다닐 정도였으니까요. 2007년 후반기에는 4시 40분에 칼퇴근을 해서 새벽 2시까지 영상이라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결국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저만의 영상 스킬을 하나씩 늘려 갔습니다. 몇날 며칠을 고민하며 만든 첫 영상은 발령 동기들과 함께 했던 태국 여행기 입니다. 그뒤로 100여편이 넘는 영상을 제작했고, 지금도 아이들과 교육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귀한 몰입의 결과 좋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5. 독서
2011년 10월에 이지성, 정회일 작가님의 <독서천재가 된 홍대리>를 만나고 제 인생이 또다른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100일동안 33권 읽기 도전에 27권을 읽었지만 그 때 만난 독서의 즐거움은 6년이 흐른 지금 조금씩 폭발함이 느껴집니다. 꾸준하게 책을 놓지 않고 읽었습니다. 매년 평균 80권 정도 읽었습니다. 점점 속도다 조금씩 더욱 붙는 것이 느껴집니다. 독서는 저에게 수많은 선물을 안겨 줬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다음으로 에너지를 전이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6. 글쓰기 / 책쓰기
2016년 1월 말부터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글쓰기라는 것을 기피했을 정도로 정말 싫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적는 것부터 요약, 보고서 등 모든 것들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독서를 하면서 저도 모르게 스스로 적고 있습니다. 스스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할 것들을 적고 있고, 누군가의 중요한 메세지를 받아 쓰고 있습니다. 필사를 하고 있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자신의 독서와 경험 등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2016년 6월 책쓰기에 도전을 하게 되었고, 나름의 공동 저자의 결과물도 냈습니다. 8월에는 개인 저서에 도전도 해보는 등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매력에 푹 빠집니다. 앞으로 더욱 세상과 소통하는
이제는 스스로 글쓰는 책쓰는 선생님이라는 마인드로 살아갈 정도로 '독서 - 글쓰기'의 삶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끈기의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아직 못꺼낸 재능을 그 끈기가 발견하게 해준다는 것을.
그래서 그런지 김종원 작가님의 말씀 한구절이 가슴 깊이 다가옵니다.
아직 자신의 재능을 꺼내지 못한 나는 굉장히 매혹적이다.
오늘도 뜨겁게 응원 가득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