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하나 풀어 보세요.
"조직 안에서 사람들이 맡는 여러 업무 중에 제일로 힘든 업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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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내가 맡은 업무"
- 혜민스님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중에서
남자들은 서로 만나면 자연스럽게 군대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몇 사단에 있었어요?"
"저는 22사단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리곤 잠시 뜸을 들이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추가적인 부연 설명을 하곤 합니다.
"내륙 GOP와 해안 영역을 모두 맡은 곳이었죠. 그쪽은 어디서 근무하셨나요?"
"아 그렇군요. 저는 강원도 인제 수색 대대에서 근무했습니다. 정말 힘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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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이야기의 특징 중 하나는 남의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게 되면서 결론은 각자의 부대가 제일 힘들다는 것!
굳이 말하자면 전방에 위치한 부대만 힘든 것이 아닌 예배 사단 모두 힘들다는 것!
운전병, 부관, 보병, 포병, 헌병, 정훈, 행정병 등 그 어떤 보직 모두 힘들다는 것!
자신이 맡은 업무가 제일 힘들었다고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래서 군대 이야기를 하다 싸움도 번지기도 합니다. 상대방을 무시하는 행위나 말투로 인한 싸움입니다.
"야~ 거기가 뭐가 힘들어! 너가 전방에 왔으면 완전 죽었겠다."
자존심이 뭐라고. 이런 말 한마디에 친구고 뭐고 없습니다. 다른 건 못참아도 군대 욕하는 건 못참는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순간입니다. 대부분 이런 상황에서는 또 다른 과격한 언어를 담아 받아칩니다.
자신이 겪은 것은 누구나 힘이 듭니다. 직접 해봤으니 그 상황과 그때의 심신을 스스로가 알겠지요.
하지만 남이 겪은 것은 보거나 듣거나 수준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에 정확한 심정을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링컨 대통령은 16대 대통령 취임 연설로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마음으로 살기를 당부하기 위해 성경에 손을 올려놓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닐까요?
(남에게) 비판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 마태복음 7: 1
학교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요즘 성과 상여금 기준안 만들기가 한창입니다.
기준안을 만들때마다 서로 얼굴이 붉그락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서로 자신의 업무가 힘들었다며 높은 점수를 받기를 희망하지만 그래도 모든 선생님들에게 똑같이 성과를 부여할 수 없기에 차등을 두는 기준안을 마련합니다.
- 학년 곤란도
- 생활 지도 곤란도
- 업무 곤란도
- 수업 시수
- 실적
- 상담 횟수
- 민원의 유,무
등 다양한 기준을 마련합니다. 반드시 차등을 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객관화 된 자료는 그럭 저럭 잘 넘어 가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업무, 생활지도, 학년 곤란도 등에서 나타납니다. 곤란도라 함은 직접 자신이 겪지 않는 한 잘 모르는 부분인 지극히 주관적인 분야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쉬워보일 지언정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쉽지 않지요.
그래서 쉽게 '저학년은 올해 아무일 없이 쉽잖아' 라고 판단하며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이때 너도 나도 자신의 업무가 뭐 때문에 올라가야 한다는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업무 곤란도는 해마다 학교장의 추진하는 업무 쪽으로 몰리게 됩니다. 거의 대부분이 수긍합니다. 하지만 작년의 기준안에 포함되어 점수 높았던 것을 아래로 내릴 때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내가 올해도 얼마나 고생했는데 점수를 없앨 수 있어요? 저는 절대로 용납못해요."
올라가는 것은 이해하지만, 내려가는 것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일명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안타깝다'는 마음입니다.
저는 주로 이런 회의에 가면 제 이야기를 주장하기 보다는 주로 듣는편입니다.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자신의 업무가 제일 힘들다는 것
1학년 부터 6학년 까지 모두 힘이 든 것이 사실입니다. 고학년을 맡았다고 해서 학습지도, 생활지도가 제일 힘들다는 것은 말이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기 나름일 뿐입니다. 학생들과 래포가 형성되면 오히려 고학년이 더 쉬울 수도 있습니다. 알아서 착착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놓으면 모두 다 잘 하기에. 1,2학년 경우에는 선생님의 손이 많이 가서 힘들고, 그렇다고 3,4학년을 무시하냐? 거기도 다 나름대로 이유가 많습니다.
세상에서 자기 자신, 자기 자녀 하나도 변화시키는 것이 힘이 드는데 사람을 다루는 교사 오죽하겠나요? 1학년 부터 6학년 모두 다 곤란합니다!
그래서 일선 학교에서는 차등 지급이 아닌 균등 지급으로 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차등지급을 하라고 하니 위와 같은 현상들이 벌어 질 때도 간혹 있습니다. 어떤 강성한 선생님이 한분 이라도 계시면 이것 가지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비적인 회의를 계속 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위와 같은 모습들을 저 한편에서 공자가 보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공자의 총평을 들어보겠습니다. 아마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능력이 없을 걱정하라.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제대로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여기에 부연설명할 것이 전혀 없네요.
최근에 감명깊에 읽은 김종원 작가님의 <내 아이 미래를 위한 부모 인문학 수업>에서 도덕적인 사람과 정의로운 사람에 대한 식견을 보고 무릎을 탁치게 되었습니다.
도덕의 잣대는 나 자신이고 정의의 는 상대이기 때문이다. 도덕은 나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고, 정의는 상대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의는 그저 정의를 외치는 걸로 충분하다. 그걸로 자신이 도덕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착각도 든다.
도덕적인 사람은 자기에게 집중한다. 하지만 정의만 추구하는 사람은 나보다는 타인의 잘못에 관심이 많다. 나를 돌아보기보다는 타인의 약점을 들추며 상처를 양쪽으로 더 크게 벌린다.
어떤 회의를 할때 이런 마음가짐으로 임한다면 회의 시간이 좀더 짧아지고 핵심만 서로 이야기하며, 서로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공자의 조언, 김종원 작가님의 조언 하루 하루 더욱더 제 가슴속에 빛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