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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메신저가 되는 순간

by 김진수 밀알샘

추석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추모관에 다녀왔습니다.

아버지는 2018년에 돌아가셔서 그곳에 모셨습니다.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늘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듭니다. 인내의 달인이셨고, 그럼에도 넉넉한 마음으로 감사할 줄 아셨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제 성품도 아버지를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어려움을 견디며 이겨내고, 불평보다는 감사함을 먼저 떠올리는 모습을 보면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즈음 저는 두 번째 책인 《교사가 성장하면 수업도 성장한다》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책의 에필로그 마지막 부분에 아버지께서 제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추가로 꼭 인사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 부족한 살림에도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늘 힘쓰셨던 분. 이 책을 열심히 집필하고 있을 때 71살의 나이로 세상과 작별을 고하신 故 김종준 아버지, 소식을 듣고 먼 길을 한 걸음에 달려와 준 조문객들 한 분 한 분 모두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를 표하고 싶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의 큰 절을 드린다.”



지금 생각해보면 몇 문장밖에 적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책이라는 그릇에 제 삶의 의미를 담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큰 위로이자 감사로 남아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름의 이유로 아버지와 따로 지내게 되면서 빈자리를 어머니께서 많이 채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책 《평범한 일상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의 에필로그에는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어머니께서 일하시는 식당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맛있는 갈비탕 한 그릇을 먹으니 그 어떤 맛보다 진한 맛이 느껴진다. 식당이 워낙 바빠서 마주 앉아 차한잔 할 수는 없었지만 그보다 제일 중요한 어머님의 등을 볼 수 있었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

자녀가 태어나고 나서야 육아서를 읽게 되었다. 수많은 육아서를 읽으면서 나에게 강력하게 다가온 한 문장을 표현하면 바로 위와 같은 한 줄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다 보니 혼자 있을 시간이 많았다. 그래도 그때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변에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기에 함께 즐기며 놀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정말 열심히 놀았다. 가정이 어렵다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신나게 놀았다.

그 내면에는 힘겨움을 이겨내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해주신 어머님의 노고가 있었다는 것을 좀 더 크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누구보다 정말 열심히 사신 분이셨고, 힘겨운 고초를 거의 혼자서 이겨내시기까지 했으니…. 그런 어머님의 등을 보고 자라니 사춘기가 올 틈이 없었다.

‘어머니께서 저렇게 노력하며 사시는데 나도 열심히 해보자.’

그런 마음으로 불안한 마음으로 다잡고 한살 한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오랜만에 어머니께서 일하시는 곳에 와서 ‘등’을 보니 ‘다 덕분입니다’라는 고백이 나온다.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께서 보여주신 삶을 대하는 태도 덕분에 저도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에게 주신 귀한 선물!
저도 제 자녀에게 멋진 등을 보여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글을 쓰기 전의 저는 과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곤 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하며 원인을 자꾸 바깥으로 돌렸지요.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상처의 크기만큼 사명의 크기도 함께 자라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 자신의 치유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큰 희망의 메시지다.”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를 읽다 이 문장을 만나고, 책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그 문장을 되뇌었습니다. 그러자 제 입에서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한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조금씩 치유가 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글쓰기가 치유의 힘을 가진다는 사실이 제겐 실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상처가 있는 사람일수록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합니다. 실제로 그런 가운데 치유되고 메신저가 된 분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상처를 그냥 두면 오래 남지만, 글로 표현하며 털어내면 그것이 메시지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이제 제 아픔도 더 이상 짐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 글에 감사함이 가득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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