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이니까 항상 좋은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잘못입니다.
좋아해서 시작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재미가 없어지고 힘든 시간이 있을 수 있어요.
어떤 일이든 고된 시간을 이겨내야 결실을 맺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요.
교수는 학생을 가르치고 본인 연구만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교수가 되고 보니 비용처리 영수증 정리, 각종 추천서 써주기, 연구비 지원서와 보고서 작성, 학교 홍보용 차출 강연 등 하기 싫은 일들도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모든 직업이 다 그런 것 같아요. 본인이 싫은 것도 해야 좋은 것도 할 수가 있습니다.
- 혜민스님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중에서
직업 군인을 해보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군인은 그저 훈련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보니 행정업무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때 강하게 느낀 것이 있다면 '해보지 않은 것은 쉽게 판단하지 말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사관 후보생 시절 4개월!
1주일 동안 나갈 친구들은 이때 거의 결정이 됩니다. 첫날부터 긴장감의 연속이었고 무엇보다 과거의 좋지 않은 시간을 활용하는 습관을 갖고 있던 저는 동화되기 위해 착실하게 하나하나 미션을 이행했습니다. 쓰라면 쓰고, 읽으라면 읽고, 정리하라면 정리하는 듯 주어진 미션을 묵묵히 수행하는 후보생 중 하나였습니다.
기억나는 하루가 있습니다. 이때 시절을 기억하면 그때가 제일 먼저 생각나니 몸이 아는 것 같습니다.
각개전투 훈련 하루차! 각개전투는 총 이틀 훈련을 하는데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쑤시고 아팠습니다. 눈치껏 하는 성향이 아니라 기라면 기고 뛰라면 뛰는 고지식한 면이 있기에 그저 열심히 돌밭에서 긴 결과 온몸 멍이라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둘째날은 종합 각개전투의 날이었는데 새벽 6시 기상 전 5시 30분에 눈이 떠졌습니다. 떠지자 마자 온몸에 멍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몸이 떨렸습니다. 처음 느낀 현상입니다. 몸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긴장이 되어 정신이 확 들었습니다. 물론 문제 없이 그날도 아주 열심히 훈련받았습니다. 마치고 나니 힘든 훈련 잘 이겨낸 제 모습이 보여 무척 뿌듯했습니다.
"요령 피우지 않고 아주 잘했어." 혼자 토닥 토닥 해줬습니다.
각개전투를 먼저 끝나고 좀 쉬는 데 한 동기생이 자신의 수통에 물이 없어서 다른 친구들 것을 흔들어 막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목이 아주 말랐나 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었으니까요.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저런 모습으로 살지 않을꺼야.'라며 다짐을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장교 훈련 4개월!
임관식을 마치고 광주 상무대로 가서 다이아몬드 하나씩 단 친구들 끼리 내무반을 함께 했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1박 2일 외출이 허락이 되었습니다. 그중 일부 동기생들은 술이 많이 취해서 들어왔습니다. 그 기간중 하나의 사건이 기억이 납니다.
착해 보이는 동기였습니다. 늘 어떤 일에 앞장을 서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술이 떡이되어 들어왔습니다. 점호를 마치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겠지요.
그런데 새벽에 모두 기상이 되었습니다. 그 동기생이 다른 자는 동기생에게 가서 온몸을 두둘켜 팼기 때문입니다. 상대방 동기생 얼굴이 온통 붓고 멍이 들었습니다.
훈육 장교님께서는 폭력을 휘두른 동기생을 포승줄로 묶어논 상태였습니다. 인사불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폭력을 휘두른 동기생은 전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잘 나눠보진 못했지만 누군가를 통해 들은 사실은 평소에 상대방이 많이 무시하는 발언을 많이 해서 쌓인 것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느낀 것은 누군가를 향한 비난은 결국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무의식적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화살은 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소대장 8개월, 인사장교 2년!
소대장 시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이때 모시던 중대장님께서는 다혈질에 업무 중심 성향이 강하셨기에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저와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 그런면에서 처리가 미숙한 나이였기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곤 했습니다.
주위를 살펴봤습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참모역할을 하는 선배 장교님들이 부러웠는지요. 누군가에 구속받지 않고 훈련도 잘 하는 것 같지 않아서 그냥 부러워만 했습니다.
어느 날 인사장교님께서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게 되면서 후임 인사장교를 뽑고 계셨습니다. 제 선임이 한명 있었는데 단번에 거절. 저에게 까지 의향을 물어보셨습니다.
새로운 분야를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그냥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책임을 지도록 하는 초록색 견장을 뗄 수도 있었기에 참모역할을 선택했습니다.
2개월 간은 어찌 어찌 잘 보냈습니다. 새로운 대대장님이 오셨는데 그날 부터 저는 작은 지옥을 경험합니다.
사사건건 원칙과 규정을 가져와라! 오탈자가 이게 뭐냐! 정신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나는 너가 싫어 등 다양한 비속어를 2년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인사가 만사라고 쉴틈이 없었습니다. 자존감은 자존감 대로 바닥이 나고 휴가를 나가 친구들을 만나면 생기도 없고 멍하게 있다 돌아오기가 일쑤였습니다.
왠만하면 포기를 하지 않는 성향인데 이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두번이나 들어가서 못하겠다고 상담을 하면 그때마다 노트에는 이렇게 적곤 하셨습니다.
'인사장교 교체'
하지만 그렇게 2년간 쭉 세월이 흘러 어느덧 전역 날이 다가왔습니다.
지겹도록 업무를 했던 것 같습니다. 전역 전날까지 야근을 했으니!
전역날 저에게 주신 한마디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사회에 나가면 어떤 일이든 잘 할수 있을 것이다. 내 밑에서 배웠으니 그것 하나 만큼은 잘 할 거야.
인사장교 죽지 않아 줘서 고맙다."
'죽지 않아줘서 고맙다.'
전역신고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버스에서 그 마지막 말이 계속 머릿속을 멤돌았습니다.
대대장님께서 보시기에 제 모습에서 위험 징후가 보이기 했나봅니다.
그때 제가 느낀 것이 한가지 있다면 리더가 되어 저런 모습은 보이지 않으리라!
업무 중심이 아닌 인간 친화 중심! 비속어가 아닌 칭찬과 격려! 실수도 인정해주는 리더!
가끔 친구들을 만나 군대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너도 나도 자신이 제일 힘들었다고 하면서 장교로 나온 저에게는 한목소리로 "장교 뭐 할일 있냐? 병사가 힘들지" 라며 핀잔을 줄 때도 있지만 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겪어 보지 않은 일은 말을 하지 말라!'
그 직위에 있지 않다면 그 직위에서 담당해야 할 일을 꾀하지 말아야 한다.
<논어>를 읽으면서 더욱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 이라고 외치면서 겉으로만 보이는 것으로 모든 것을 재는 행위를 멈춰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도 이것만큼은 꼭 지키리라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