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극도의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어렵게 내민 손을 뿌리친다.
생각해 보라.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은 무엇일까?'
설사 누군가에게 속았을지라도
'속았다'는 생각보다는,
'그래도 당연히 도와야지'라고 생각하는 게
나다운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런 고민에 빠진다.
'내가 바보처럼 속은 게 아닐까?'
'내가 범죄를 부추기는 게 아닐까?'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마라.
'그가 내민 손이 거짓이냐 진실이냐' 보다는
'내 내면의 목소리가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세상에 인간의 감정보다 솔직한 건 없다.
- 김종원 <생각 공부의 힘> 중에서
저는 언제나 'Yes 맨' 이었습니다. 남이 하는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늘 들어왔던 말은 '진수는 착하다!'라는 말이였습니다. 누군가의 부탁도 잘 들어주니 당연히 착하다는 표현으로 합리화가 되면서 내면의 자아와 늘 갈등속에 있었음을 한참 뒤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교실에서 일어난 상황입니다.
당시 아이들의 이상한 문화가 있었습니다. 가방 지퍼를 뜯어서 열쇠고리처럼 주렁 주렁 달고 다니는 이상한 문화가 형성된 것이죠. 청소하고 교실에 돌아왔는데 2명의 친구가 제 가방 주위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이 었습니다. 바로 가방 지퍼를 뜯고 있었지요. 제가 말하기도 전에 친구들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진수야 여기 지퍼 많으니 이중에서 2개만 가져갈께. 괜찮지?"
"그래"
이미 다 뜯어놓고 위와 같은 말을 하다니......
무엇보다 부탁아닌 부탁에 동조하는 제 자신이 싫었던 순간이었습니다만 저에게 들려오는 추가적인 한마디는 "역시 진수는 착해" 였습니다.
이런 성향은 사회에 나와서 까지 줄곧 이어져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면서 까지 부탁을 들어주곤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행위는 정말 좋아했지만 때로는 '이런 것 까지 내가 도와줘야 하는것이 맞는 것인가?'를 생각이 들때도 많았습니다. 저는 부탁이란 것은 가능하면 도와주는 것이 맞다고 여겼기 때문에 거절을 하기 보다는 조금 스트레스가 되어도 감수하면서 부탁에 거의 응하는 삶을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것이 진리가 아님을 깨닫게 되는 한 문장을 발견합니다.
전광 작가님의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을 읽던 중 링컨의 명언을 발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바로 그들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는 것이다.
- 링 컨
저는 순간 멍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알고 지켰던 사상을 도끼로 내리치는 이 한마디! 그런데 생각해보니 무조건 모든 것을 해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해보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수학문제를 물어봤을 때 풀이 정답을 바로 알려 주기 보다는 함께 풀어가면서 질문도 하고 생각을 교류하면서 스스로 자립하고,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 그것이 진짜 도움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문제를 당장 풀어주면 바로 도움이 되지만 똑같은 문제를 접했을 때 또 상대방은 물어볼 것이기에. 유대인이 말하는 물고기를 그냥 주기 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친다는 중요한 원리를 링컨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가슴으로 느껴지지 않으니 무조건 Yes맨을 통해 '착한 아이 / 착한 어른' 컴플렉스 타이틀을 유지만 하고 있던 꼴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교실속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느끼고 실천하기를 원했습니다.
한 친구의 도움으로 글자를 크게 써서 코팅한 후 잘보이는 곳에 부착했습니다.
교육을 할 때 이 문구는 자주 쓰였습니다. 친구를 도와줄 때 바로 도와서 해결해주기 보다는 함께 성장하고, 가치있는 방향으로 도움을 주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학부모 상담을 할 때도 이 문장은 당골 문장이 되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를 위한다고 무조건 해주는 것에 대해 이 한 문장의 사색으로 모든 것이 집약되어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한 부모님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급에서 부적응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학교생활이 궁금하다는 이유였습니다. 아이의 생활은 아주 훌륭했지만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생각의 부재!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을 물으면 쉽게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A4 용지에 자신이 앞으로 원하는 미래의 모습을 그리거나 설명하라고 해도 쉽게 나아가질 못했습니다. 그 친구는 항상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그냥 어떻게 하라 지시해주면 안돼요? 제가 생각하고 제가 선택하며 결정하니 너무 어려워요. 아무 생각도 않나요!"
저는 그때마다 친구와 함께 다른 친구들의 작품을 보여주며 어떤 생각이 들었니를 질문해보고 그 생각을 친구의 언어나 그림으로 표현해보도록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매일 매일 학생들의 삶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고 공유를 했기에 다른 학생들 작품들은 잘 보이는데 정작 본인 자녀것은 잘 보이지 않자 궁금해서 결국 상담 요청를 하신 것입니다.
저는 부모님과의 상담을 통해 더욱 아이가 왜 그러한 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그동안 아이가 해달라는 것을 다 해주면 좋은 줄 알고 모든 것들을 직접 제가 챙겨주고, 숙제도 제가 해주며, 그렇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을 사줄 때도 거의 무조건 수용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해줄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인 줄 알았는데 돌이켜 보니 그것이 아니었던 것 같네요."
"어머니! 그것은 잘못이 아니고 단지 사랑의 표현 방법이 서툴렀던 것일 뿐이었던 것 입니다. 저는 위와 같은 링컨의 말을 신뢰해요. 언제까지 아이를 품에 안고 살수는 없잖아요. 지금 부터라도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게끔 부모님과 함께 대화하면서 함께 성장하면 더욱 생각이 깊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동안 생각할 여유도 없었고, 선택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에요. 그러기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활동에서는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겠지요. 지금 부터 생각 공부의 시작이라 여기시고 하나하나 해나가면 됩니다. 요즘 점점 잘하고 있어요."
하시모토 다케시의 <슬로리딩>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시 한편을 쓴다고 가정할 때 무조건 가득 채워야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기 어려워하는 위 친구에게는 단 한줄의 문장이 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하시모토 다케시 <슬로리딩> 중에서
그 친구가 낑낑되서 해온 작품에 저는 진심을 담아 한마디 질문을 던집니다.
"최선을 다했니?"
"네 선생님"
"그래! 훌륭하다"
그날 뒤로 그 친구는 조금씩 성장하여 아주 훌륭한 생각 생활을 했습니다.
무조건 부탁을 들어주는 행위는 어찌보면 좋아 보이긴 하지만 제가 판단하는 기준은 그 부탁으로 인해 우리에게 이것 하나가 있는지 여부를 따져 봅니다.
성 장
만약 이것이 부재하다면 저는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고 거절을 할 때도 있습니다. 성장이 빠진 부탁은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가 될 수도 있기에 '미안하지만 저는 못하겠습니다'로 정중히 거절의사를 표현합니다.
이것이 진리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 내면의 목소리가 무엇이냐'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많이 많이 됩니다. 그래서 요즘은 후회없는 '거절, 선택하기'에 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이유입니다.
오늘도 내면의 목소리에 더욱 집중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