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판 형제의 난’, 비운의 ‘그랜드 메이풀 호텔’ 일가
‘TAIPEI 101’이 우뚝 솟은 타이페이의 중심가, 반짝반짝한 신이취(信義區)에서 차로 15분 정도 달리면 여행자들에겐 다소 생소한 주거지역, ‘따즈(大直)’가 나온다. 내가 살고 있는 네이후(內湖)의 친근한 옆동네이자 세련된 아파트 및 상업시설이 즐비한 이 곳에는 두 개의 5성급 호텔, ‘Marriott Taipei’와 ‘Grand Mayfull Hotel’이 자리하고 있다.
한눈에 보아도 따즈의 분위기는 색다르다. 타이페이의 상징인 빼곡하게 오래된 아파트 대신 (서울에선 보기 힘든) 멋들어진 석조 건물들이 눈에 차일만큼 많다. 그리고 그중 단연 가장 아름다운 석조 건물이 바로 오늘 소개할 ‘Grand Mayfull Hotel’이다.
‘메이풀호텔’은 인터내셔널 브랜드가 아닌, 온전하게 대만 패밀리에 의해 만들어진 호텔이다. 이 호텔을 소유한 ‘메이풀 그룹’은 대만에서 손꼽히게 유명한 ‘황씨 집안’으로, 소고기 수입업을 기반으로 시작하여 현재 각종 리테일, 가공업, 운송업, 쇼핑몰, 호텔, 레스토랑, 골프장 등 다방면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일명 재벌家이다. 본업 이외에도 선대부터 대만 전역에 걸쳐 토지를 다량 보유해 돈을 많이 번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이 메이풀 호텔이 위치한 따즈 지역에 땅이 많다고 한다.(사실상 호텔로 버는 돈보다 호텔을 지음으로써 오른 주변 땅값이 훨씬 더 쏠쏠할 테다...)
이렇게 삐까뻔쩍한 ‘황씨 집안’은 사실 한국의 재벌家와 다를 바 없이 원체 바람 잘 날 없는 집안이다. 일찍이두명의 부인에 얽힌 치정관계로 유명했는데, 회장 Huang Jung-tu의 첫번째 부인은 남편의 바람 이후 시름시름 앓다 내연녀가 임신까지 하게되자 비극적이게도 자살했다고 한다. 물론 그 내연녀가 두 번째 부인 자리를 차지하고 나서 황 회장에게는 자연스레 세 번째 부인이 생겼고… 각각의 부인에게서 낳은 자식들 간에는 불 보듯 뻔하게 재산싸움이 치열했다.
그러던 중 최근에 이‘황씨 집안 비극’에 정점을 찍은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5년 전 일어난 ‘대만판 형제의 난’. 재벌가 도련님답지 않게 빨간색 전과까지 소지한 이 집안의 트러블메이커, 넷째 아들이 말다툼 중 총기로 형 두 명을 쏴 죽이고 본인은 자살해버린 기막힌 사건이다. (덕분에 회사 승계에는 관심없이 하와이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던 이 집안의 장남은 울며 겨자먹기로 강제 귀국당해 현재 열심히 일하는 중이라는 소문이…)
한날한시에 재벌집 아들 셋을 저세상으로 보낸 이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우리집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메이풀 그룹 본사. 1층에 위치한 메이풀 슈퍼마켓은 우리 가족이 일주일에 한 번은 장 보러 꼭 방문하는 곳이라 이 사건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전신에 소름이 쫙 끼쳤더랬다!
이런 불운한 가족사를 겪은 메이풀 일가이나, 사업은 계속되어야 하는 법. 비극이 일어난 지 불과 몇 달 후인 2016년 1월, ‘Grand Mayfull Hotel’이 예정대로 그 문을 열었다.
남의 나라 흥미로운 뒷이야기는 이 정도로 접어두고, 독자들에게 이 호텔을 꼭 소개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다. 여행객들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사실 이 곳이 타이페이에서 ‘호캉스’를 즐기기에 최적의 호텔이기 때문이다. 물론 만다린 오리엔탈, W호텔 등 더 상위권의 호텔이 있긴 하지만 1박에 20만원대의 가격으로 보자면 메이풀 호텔이 단연 TOP 쵸이스이다.
그럼 이제 호텔 안을 들여다볼 시간! 멋진 석조 건물로 발을 들여놓으면 온전한 중화풍의 메인 홀이 펼쳐진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온통 빨갛게 장식된 초거대 트리가 자리하기도 하는 이 공간은 모던한 맛은 없지만 마치 동양의 라스베가스에 놀러온 느낌이다. 다행히도(?) 왼쪽으로 살짝 꺾어지면 톤 다운된 컬러로 한층 세련되진 체크인 데스크가 게스트를 반갑게 맞이한다.
메이풀호텔 객실의 인테리어 퀄리티는 비슷한 시기에 오픈한 옆 호텔 메리어트보다 한 수 위. 두 호텔의 인테리어를 모두 담당한 회사의 지인이 말하길 이 곳의 자재, 마감 등 평당 단가가 훨씬 많이 들었다고 한다. 비전문가인 내 눈으로 봤을 때도 깔끔하나 무척 휑한 메리어트의 객실보다는 소가구들, 소품들, 그리고 대리석으로 빈틈없이 메워진 메이풀의 객실에서 좀 더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반대로 로비 등 Public Space의 인테리어는 메리어트가 훨씬 낫다.)
한 번은 친구들과 신나게, 또 한 번은 남편과 오붓하게 각각 다른 룸타입에서 스테이를 했었다.
Elite Family Room (Two Large Double Beds)
Elite Double Room (One Extra Large Double Bed)
소담한 웰컴 과일, 차(茶)의 나라답게 마음에 들었던 구비된 다기 세트, 타이완비어 등을 포함한 무료 미니바.별거 아닌 셋의 구성이 모이니 은근하게 호캉스의 기분을 내주는 특별한 아이템이 된다.
Outdoor Swimming Pool
개운하게 씻고 보니 어느덧 예약해둔 저녁 시간. 이번 여행용으로 주문해둔 살구색 원피스로 재빨리 갈아입고는 호캉스 기본 규율 "호텔 밖으론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다"에 충실하게 수영장과 같은 4층에 위치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GMT Italian Restaurant'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Restaurants
“食”을 가장 중요시하는 나라답게 ‘대만표’ 메이풀호텔은 훌륭한 레스토랑 5개를 구비하고 있다. 저녁시간이 되면 모두 가족단위 모임을 하는 대만 사람들로 북적북적해 다시금 인기를 실감할 수 있기도 하다. 필자도 모두 한 번씩 이상은 방문해 봤는데, 그중 두 곳이 특히 추천할만하다. [*GMT Italian Restaurant(이탈리안)/ *Mipon(대만식)/ Haruyama(일식)/ Palette(인터내셔널 뷔페)/ Chiu Yuet Fong(광동식)]
- GMT Italian Restaurant
“여기 타이페이 맞아?”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국적인 이 레스토랑은 일전에는 ‘지중해식’ 레스토랑이었다. 당시 방문했을 때 먹었던 아래 음식 사진을 봐도 이탈리안 퓨전의 성격이 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최근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아예 이름을 바꿔버렸다.
어느날은 레스토랑 전체를 대관해 가족이 주최하는 신년파티를 열기도 했었다. 개인 메인 디쉬와 샐러드바 개념의 뷔페 스타일이 함께 구성된 디너였는데 오히려 원래 레스토랑 메뉴보다 더 맛있어 놀랐던 기억이 있다.
- MIPON
분위기 일인자가 앞서 소개한 GMT라면, 맛으로 제일 추천할 만한 곳으로는 대만음식전문점 ‘Mipon’이 있다.실제로 ‘18년부터 꾸준하게 미슐랭 추천을 받아 로컬들에게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한 이 곳에서는 ‘Three-Cup Chicken(三杯雞)’과 같이 ‘대만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음식’을 고퀄리티로 맛볼 수 있다.
이외에 일식당 ‘Haruyama’의 샤브샤브도추천할만하다. 대만의 호텔들은 식음료 가격을 우리나라처럼 높게 책정하지 않기 때문에 큰 부담없이 식사할 수 있다는 점도 여행객들에겐 매력적이다.(대부분 호텔의 경우 공식 홈페이지 레스토랑 섹션에 메뉴를 올려놓는 것이 일반적이니 예약하기 전 미리 확인할 수 있다.)
밤에는 출출하다는 핑계로 ‘룸서비스’도 한번 경험해보자. 이 곳‘XO 해산물 볶음밥’은 정말 최고다!
프라이빗 멤버스 라운지 'Club 9' 엿보기
메이풀호텔의 연간 회원권을 구입할 시 사용할 수 있는 프라이빗 멤버스라운지 'Club 9'. 주류를 마실 수 있는 Bar를 비롯하여 리딩룸, 미팅룸, 오디오룸, 두 개의 VIP Banquet Room, 그리고 SPA가 이 곳에 위치해 있는데, 회원권 구입에 관심이 있다고 직원에게 살짝 귀띔하면 이 곳 투어를 시켜주니 색다른 액티비티 삼아 구경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메이풀호텔 뒤편에는 이탈리아 고급 가구 브랜드‘Minotti(미노티)’의 쇼룸이 자리하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구 브랜드이기도 한 이 곳은 미니멀한 가구선과 세련된 색감으로 유명한데, 이 쇼룸은 특히 통유리창의 눈부신 채광과 함께 앞면으로는 메이풀호텔의 멋진 석조 건물이 보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눈호강이 절로 되는 공간이다. 이튿날 아침 조식을 먹은 후 슬슬 걸어가 복층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쇼룸을 구경하며 호캉스의 마지막을 조용히 마무리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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