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젠트, 영광의 나날들
호텔의 세계만큼 쥐도 새도 모르게 주인이 바뀌는 곳도 드물지 않을까.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시작해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한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 1990)의 배경인 더 리젠트 베벌리 윌셔(The Regent Beverly Wilshire)로 세계에 ‘리젠트’라는 브랜드를 알린, 호텔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럭셔리 호스피탈리티 브랜드 ‘Regent Hotels & Resorts’가 불과 몇 년 전까지 대만의 유명 호텔 그룹의 소유였다는 사실은 아마 모두의 예상 밖일 것이다.
리젠트 그룹의 창립자는 프라이빗 & 럭셔리 호텔의 새로운 장을 연 아만 리조트(Aman resorts)를 세운 인도네시아의 유명 호텔리어 ‘아드리안 제차(Adrian Zecha)’를 포함한 세 명으로 모두 호텔업계의 전설적인 인물들이다. 드림팀이 만든 호텔인 만큼 리젠트는 80년대, 90년대에 호스피탈리티 업계에서 5성급 호텔의 표준을 이끌며 아이코닉한 브랜드로 성장했다.
1970년 창립 이래 리젠트에는 크고 작은 오너십의 변화가 있었는데, (굵직하게 보자면) 1992년 포시즌스 그룹(Four Seasons Hotels and Resorts)의 품을 거쳐 2010년 대만에서 가장 크고 성공적인 호텔 경영 그룹인 Silks Hotel Group에 매각되었고, 2018년부터는 인터컨티넨탈을 소유한 세계 3대 호텔 체인, IHG Hotels & Resorts가 지분의 51%를 취득하여 또 한 번 오너가 바뀌게 되었다. 현재 리젠트 호텔은 IHG그룹의 최상위 럭셔리 카테고리를 담당하며 전 세계 10여 개의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1990년 타이페이 중산취(中山區) 언덕배기에 문을 연 ‘리젠트 타이페이(Regent Taipei)’는 전 세계 리젠트 호텔 중 가장 비즈니스가 잘 되는 지점이다. 엎치락뒤치락 바뀌는 오너십과 관계없이 오랜 시간 변함없이 타이페이 로컬들의 사랑을 받아온 리젠트 타이페이는 특히 8개 레스토랑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매년 타이페이 호텔 탑을 찍을 정도로 F&B 업장이 탄탄하다. 2018년 영국계 IHG가 실질적 오너로 바뀌었지만 대만 내 경영은 여전히 리젠트 브랜드 지분의 49%를 소유한 Silks Hotel Group의 오너이자 리젠트 타이페이의 체어맨인 Steven Pan이 맡고 있어 로컬이 체감하는 변화는 크지 않다.
가파른 계단 위 자리한 리젠트 타이페이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모던한 로비가 펼쳐진다. ’도심 속 고요한 오아시스’를 표방하는 콘셉트에 따라 호텔 내부는 특히 조도가 낮은데, 은은한 조명의 영향으로 마치 시끌벅적한 외부와는 다른 세계인 듯,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배우 스칼렛요한슨과 최민식이 출연한 영화 루시(LUCY, 2014)가 이곳 로비에서 촬영되어 많은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리젠트 타이페이의 지하에 자리한 ‘리젠트 갤러리아(Regent Galleria)’는 에르메스, 샤넬, 루이뷔통 등 명품이 즐비한 쇼핑센터이다. (타이페이에서 가장 세련된 차림의 중년들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5성급 호텔 안에 쇼핑센터가 있는 곳은 리젠트 타이페이가 유일한데, 20여 년 전 굵직한 명품 브랜드들이 리젠트 갤러리아를 통해 처음 대만으로 들어왔었다는 사실을 보면 Silks Hotel Group이 각종 해외 럭셔리 브랜드와 얼마나 오래 긴밀한 관계를 쌓아왔는지 가늠할 수 있다. 늘 한산한 분위기로 (오픈런 없이) 편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으며, 명품 이외에 대만의 유명 차(茶) 브랜드인 ‘CHA CHA THÉ’도 입점해 있으니 들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동양적이며 세련된 패키징에 맛도 훌륭해 여행 선물로는 제격이다.
도입부에 살짝 언급했듯 리젠트 타이페이는 업계 최고의 매출을 내는 F&B로 유명하다. 라이브 음악이 울려 퍼지는 로비바 azie에서 판매하는 시그니쳐 우육면은 ‘CNN 선정 타이페이 최고의 우육면’으로 유명세를 타 이 우육면 하나를 맛보기 위해 호텔을 방문하는 이도 꽤나 많고, 대만 호텔 뷔페 중 가장 인기가 좋은 Brasserie 앞은 입장 시간이 되면 끝없이 줄을 선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최근 대대적인 레노베이션을 마친 광둥식 레스토랑 Silks House는 주말이면 마실 나온 가족단위 손님들로 각 테이블마다 정겨운 분위기를 풍긴다.
일본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대만에는 5성급 호텔에서도 쉽게 테판야키 전문 레스토랑을 찾아볼 수 있는데, 리젠트 타이페이의 간판 레스토랑인 Robin’s Teppanyaki도 그중 하나이다. 대만의 테판야키 씬(Scene)은 굉장히 다채로워서 직장인들이 짧은 시간 내에 들러 먹고 가는 만 원 안짝의 백화점 푸드코트 테판야키부터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특급 호텔 테판야키 하우스까지 그 종류가 다양한데, Robbin’s Teppanyaki는 타이페이에서 가장 유명한 테판야키 레스토랑 중 하나다. 고급 식자재를 사용한 수준 높은 철판 요리를 프라이빗한 룸에서 즐길 수 있으며, 앞에서 시연하는 전담 셰프와 간간히 주고받는 대화는 식사의 즐거움을 배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리젠트 타이페이의 객실키는 묵직하고 클래식한 진짜 열쇠다. 1990년에 세워진 호텔인 만큼 룸에서 연식이 느껴지긴 하지만 대리석으로 칠갑한 욕실을 보면 요즘 트렌드와 별다를 게 없구나 싶기도 하다. 한 가지 팁으로 이곳에는 다른 5성급 호텔에서는 보기 드문 성인 4인이 널찍하게 누워 잘 수 있는 패밀리 룸이 구비되어 있어, 가족과의 스테이는 물론, 여자 친구들과의 수다스러운 밤을 보내기에 적격이다.
대만의 Silks Hotel Group이 IHG에게 ‘Regent Hotels & Resorts’의 지분 51%를 넘기며 사인한 계약의 핵심은 1980년 세워진 리젠트 그룹의 두 번째 호텔이자 플래그십 호텔인 ‘리젠트 홍콩’(2001년부터 2022년까지 인터컨티넨탈 홍콩으로 불린)을 제자리로 돌려놓자는 것이었다. 홍콩의 아름다운 하버뷰를 내려다보는 최고의 입지에 위치한 이 호텔은 그 결과 2022년 겨울부터 새로운 ‘리젠트 홍콩’으로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리젠트 홍콩을 거점으로 다시 세계 무대를 노리는 아직은 반(半) 대만 브랜드인 리젠트 그룹이 격변하는 호스피탈리티 업계에서 또 다시 어떤 새로운 선택을 할지,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글, 사진 ©dreamj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