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eamju Jun 19. 2023

타이페이 로컬이 사랑한 '맛있는 호텔'

귀신 나오기로 가장 유명한 호텔일지라도...

사진 @grandhyatttpe


대만은 식도락에 진심인 나라다. 특별히 푸디(foodie)가 아니라도 맛있는 음식을 위해서라면 한 시간 정도 줄 서는 것쯤은 기꺼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타이페이 로컬들이다. (대만 거주 8년 차지만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줄 서기 미식 문화랄까) 그렇다면 이 식도락의 도시에서 ‘미식의 꽃’이라 불리는 호텔 다이닝은 어떠할까?


몇 년 전 대만인 남편과 함께 ‘그랜드 하얏트 서울(Grand Hyatt Seoul)'을 찾았을 때다. 내가 시킨 생맥주 한 잔에 한화 3만 원을 웃도는 가격을 보고 그가 정말 기함할 듯이 놀랐다. 대만에서 가장 좋은 호텔인 '만다린 오리엔탈(Mandarin Oriental)’에서도 맥주는 한화 1만 원 초반대를 넘지 않기 때문이다.


Yun Jin, Grand Hyatt Taipei


이렇듯 대만 호텔의 식음료 가격은 꽤나 합리적인 편이다. 서울보다 타이페이의 물가가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살아본 바에 의하면 체감 장바구니 물가는 그리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 반면, 럭셔리한 호텔의 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대만에 사는 것이 즐거워진다. 인당 10만 원으로는 절대 배불리(!) 먹지 못하는 한국과 달리 여기서는 대개 그보다 가벼운 지갑으로도 무궁무진한 특급 호텔의 다이닝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들에게 비교적 문턱이 낮은 대만 호텔의 식음료장은 그래서인지 항상 손님들로 붐빈다. 각 특급호텔 간의 경쟁도 그만큼 치열한데, 그 각축장에서도 긴 세월동안 변함없이 최고로 꼽히는 호텔이 하나 있다. 로컬이 사랑한 ‘맛있는 호텔’, 오늘 소개할 ‘그랜드 하얏트 타이페이(Grand Hyatt Taipei)’다.    


타이페이의 중심, 101 빌딩과 연결되어 있다


화려한 별천지 신이취(信義區), 그 중심을 우뚝 지키는 타이페이 101 빌딩 바로 앞에 위치한 ‘그랜드 하얏트 타이페이’는 1990년 문을 연 이 도시 최초의 ‘인터내셔널 럭셔리 호텔’로, 타이페이 호텔업계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연식이 있는 호텔인 만큼 클래식한 하얏트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는데, 2015년 대대적인 레노베이션을 거쳐 한층 업그레이드된 내부로 현재까지 로컬 및 관광객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호텔 중 하나이다.


호텔 로비를 환하게 밝혀주는 분수대
생화 장식이 항상 화사하다


놀랍게도 이런 그랜드 하얏트 타이페이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수식어가 하나 있는데… 바로 ‘귀신이 출몰하는 호텔’이다. 1층 로비에 걸려있는 ‘부적같이’ 생긴 두 그림을 중심으로 퍼저나간 이 괴담은 그 내용이 꽤나 디테일하다.


로비 한편에 걸려있는 ‘부적같이’ 생긴 두 그림 (출처: The Shutterwhale)


이야기인즉슨, 그랜드 하얏트 타이페이가 지어진 부지가 본래 일제강점기에 죄수들을 가두어 놓는 감옥이었으며, 후에 심지어 사형장, 그리고 묘지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억울한 영혼들이 이슬로 사라진) 불운한 땅 위에 세워진 그랜드 하얏트 타이페이에서는 오픈 직후부터 계속해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는데, 다수의 게스트들이 객실, 복도 등에서 군복을 입은 귀신을 목격하거나, 잠결에 괴기한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이런 불가사의한 현상은 어느새 호텔 비즈니스에 타격을 주기 시작했고, 결국 경영진은 용하기로 유명한 ‘풍수 전문가’를 찾아갔다. 그가 자리에서 쓱쓱 그려준 두 개의 부적을 로비에 걸어 놓자 거짓말처럼, 그 후로는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Grand Hyatt Taipei


대만이라는 이국의 분위기와 맞물려 왜인지 정말 사실일 것 같은 이야기이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로비의 두 그림은 풍수 전문가가 호텔을 오픈한 1990년에 ‘순수하게 앞으로의 행운을 비며’ 선물한 것이다. 호텔 부지도 일제 정부가 1939년에 군수품 창고 용도로 지어 사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결국 일제시대라는 시대적 상황만 같을 뿐, 완전히 허구의 이야기인 것이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텅 빈 로비


아쉽게도(!) 2015년 레노베이션을 끝으로 두 ‘부적 같은’ 그림은 로비에서 영영 자취를 감추었지만, 괴담은 발 빠르게 퍼져나갔다. 덕분에 저 멀리 홍콩, 싱가포르에서는 아직까지도 그랜드 하얏트 타이페이에서 묵는 것은 ‘돈 주고 귀신 체험하기’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귀신얘기와는 별개로, 30년 넘게 타이페이 중심을 지키며 고급 서비스를 제공해 온 이 상징적인 호텔에 로컬들은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보인다. 호텔 부지가 사형장이었음을 굳게 믿고 있던 나의 대만 남편도 타이페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호텔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그랜드 하얏트 타이페이’를 말한다.


로비 한편에 위치한 베이커리. 타이페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빵집이다




그랜드 하얏트 타이페이를 이끄는 대표 레스토랑은 단연 중식당 ‘Yun Jin(雲錦)’과 광둥식 레스토랑 ‘Pearl Liang(漂亮)’이다. 


Yun Jin (雲錦)


Yun Jin (雲錦)


탕웨이가 우아하게 앉아 있을 듯한 분위기의 Yun Jin은 베이징, 상하이, 스촨, 항저우 등 중국 여러 지방 및 대만 요리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친한 친구들이 대만을 찾을 때면 꼭 방문하는 중식당이다. 세트메뉴보다는 단품으로 골라 시키는 것을 추천하는데 특히 에피타이져는 꼭 여러 개 시켜 먹어보자. 대만 사람들이 즐겨 먹는 쫄깃한 돼지귀 요리(Spicy marinated pork ear), 김치 대신 느끼함을 잡아줄 상큼한 오이 샐러드(Marinated cucumber salad), 매콤한 참깨 소스를 올린 상하이식 야채 두부롤(Shanghainese vegetable bean curd roll, spicy sesame sauce)은 특히 추천하고 싶은 메뉴이다.


(左) 쫄깃한 돼지귀 요리는 별미!
한국인에게 생소한 메뉴들이 다수 포진해있다


Pearl Liang (漂亮)


Pearl Liang (漂亮)


「食在廣州」’먹는 것은 광저우에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 전역을 통틀어 광둥지방 요리는 가장 화려하고 수준높은 미식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에 따라 대만의 특급 호텔들은 대부분 광둥식 레스토랑을 가지고 있는데, 그랜드 하얏트 타이페이의 ‘Pearl Liang’은 그중 단연 돋보이는 곳이다.


시그니쳐 딤섬인 트러플 하가우
한국에서 잘하는 집이 정말 드문, 순무 케이크


대나무 찜기에 투박하게 나오는 딤섬은 딱 대만 스럽다. 음식은 문화를 반영한다는데, 이를 보면 털털하고 꾸밈없는 대만사람들이 떠오른다. 정교하고 세련된 플레이팅의 홍콩 호텔 딤섬과는 확연히 다른 모양새인데, 맵시가 조금 떨어진다고 해서 맛이 덜한 건 아니다. 홍콩의 여느 레스토랑과 비교해 봐도 대만 딤섬의 퀄리티는 뒤지지 않는데, 가격은 또 30% 정도 저렴하니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끝이 없는 딤섬의 세계
호호 불어 먹는 커스터드번


이곳에서 꼭 시켜야할 메뉴 하나를 고르자면 통통한 새우살이 얇은 피에 탱글하게 싸여있는 ‘전통 하가우’에 ‘트러플 페이스트’를 첨가한 ‘‘Steamed prawn dumpling, black truffle paste’를 추천한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찾을 수 없는 맛이다.


라이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1층 ‘CHEERS’도 자주 가는 곳이다




한자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객실 내부
동서양의 미가 혼재된 인테리어
객실로 올라가는 입구


객실은 따뜻한 분위기로 게스트를 반긴다. 연식이 된 호텔이지만 2015년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마쳤기에 꽤나 쾌적한 편이다. 타이페이에서 가장 번화한 신이구(信義區)에 위치한 만큼 지척에 다른 특급호텔들이 자리하나, 여전히 이만큼 연중 내내 호황인 호텔은 찾아보기 힘들다. 덕분에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그랜드 하얏트 특유의 클래식한 로비는 항상 들고 나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1층 ‘Café’에서 즐길 수 있는 조식 뷔페
따끈한 두유에 찍어먹는 요우티아오


그랜드 하얏트 타이페이에 묵는다면 이곳의 조식도 꼭 경험해 보자. ‘Made-to-order’로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대만식 면요리도 한국인의 아침에 제격이지만, 무엇보다 대만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먹는 아침 식사인 '따끈한 두유에 찍어먹는 기름빵(요우티아오)’도 놓치면 섭섭하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야외 수영장
선베드에서 마시는 맥주만큼 맛있는게 있을까
클럽 라운지를 사용할 수 있는 룸이라면, 해피아워는 꼭 챙기자!

 



유독 그랜드 하얏트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중장년층의 호텔리어가 능숙한 모습으로 손님들을 접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랜 시간 쌓아온 연륜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이 도시와 30년 이상 동고동락한 ’그랜드 하얏트 타이페이(Grand Hyatt Taipei)’와 닮았다. 당장 신이취(信義區)에 어떤 신상 호텔이 들어온다해도 이 호텔을 쉬이 이길 수 없는 이유이지 않을까.



글, 사진 ©dreamju

인스타그램 @dreamju  

유튜브 @타이페이띵 by dreamju 



현재 하얏트 그룹 산하의 Park Hyatt와 Andaz가 한창 공사 중이다


<관련글 보기> 화려한 코스모폴리탄 라이프가 있는 곳, 타이페이 ‘신이(信義)’, 그리고 호텔



이전 01화 리젠트(Regent)가 대만 브랜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