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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eamLabs May 19. 2024

위기땐 본능적 감각을 믿어야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 제노비스 신드롬

38명의 목격자 중
경찰에 신고한 사람이.. 단 한 명?


1964년 미국의 한 주택가에서 일을 마친 뒤 새벽에 귀가하던 키티 제노비스(Kitty Genovese)는 갑자기 나타난 괴한에 의해 흉기에 찔린다. 제노비스는 거칠게 저항하며 비명을 질렀고.. 애처로운 그녀의 구조요청 소리로 인해 근처에 있던 아파트 불이 하나 둘 켜져, 38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사건을 목격한다. 하지만 목격자들 중 경찰에 신고를 한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 뒤늦게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된 뒤였다. 35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목격자가 있었음에도 그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적어도 반수 정도는 경찰에 신고를 했어야 정상적인 것이 아닐까?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누군가가 도와줄 거야"

사회심리학자 존 달리와 빕 라타네는 이 사건을 목격한 38명의 심리를 알아보기 위해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내용은 대화 도중 상대방이 갑자기 쓰러졌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이들은 사람들을 각각 다른 방에 분리하여 격리하고 헤드폰과 마이크를 이용해 원격으로 토론을 하게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한다. 1대 1로 토론을 한 집단은 85%가 방에서 뛰쳐나와 상대방이 쓰러졌음을 알렸지만, 1대 4 토론을 진행할 때는 62%로 낮아졌다. 그리고 1대 7로 토론을 진행할 때는 단 31%만이 사람이 쓰러졌음을 알렸다. 이후 상황을 알리지 않았던 이들에게 이유를 묻자 그들은 대부분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상황을 알릴 것이라고 기대했다”라고 대답했다.


여럿이 있을 땐
책임감이 덜하다


위에서 처럼 사람의 이러한 심리를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 또는 제노비스 신드롬(Genovese syndrome)이라고 부른다. 방관자 효과는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그만큼 개인이 부담하는 책임이 분산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내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도와줄 거야’라는 생각이 자신의 도덕적인 책임을 분산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연기실험...

실험참가자들이 대기하고 있는 공간에 갑자기 문틈이나 창문으로 연기가 스며들게 만들었다. 실험 공간에 혼자 있던 사람들은 이 공간을 대부분 벗어났다. 다른 방에는 연기자를 배치하여 차분하게 앉아 있는 모습으로 연출했다. 그 결과 실험 참가자들도 침착하게 그 공간에 머물렀다. "뭐 별일 아니겠지.." "저 사람이 침착하고 여유롭게 있는 것을 보니 별이 아닐 거야.." 이런 효과를 다중의 무지(pluralistic ignorance)라고 한다. 만약 어느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나타나 전문지식을 뽐낸다면 그 전문성 때문에 그 사람을 신뢰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체는 전문가 자신이 그 영역에서 남들보다 더 자신감 있게 행동하기 때문에 또는 다른 사람들이 신뢰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사람의 전문성을 더 높이 인지하게 된다. 수백만 유튜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를 신뢰하게 되는 이유도 비슷하다.


"동요하지 말고 사무실에 남아 구조를 기다려 주세요?"

2001년 9월 11일 끔찍한 테러사건은 어땠을까? 테러범이 납치한 첫 번째 항공기가 세계무역센터를 들이받기 직전에 빌딩에서는 신속히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고 한다.  "동요하지 말고 모두 사무실에 남아 구출을 기다리라"는 안내방송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당시 이 빌딩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응하는 매뉴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임자나 전문가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 매뉴얼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능에 따라 낮은 층으로 사람들도 전문가의 지시에 따라 다시 사무실로 올라가야만 했다. 그 결과 당시 전문가의 말대로 사무실에서 구조를 기다렸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살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본능과 감각을 믿고 행동한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었다.





제노비스 신드롬, 연기실험, 911 테러 사태, 나아가 세월호 참사 비극까지도... 여기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사건의 시사점이 보인다.


첫 번째, 정말로 긴급한 위기상황에서는 본능적 감각을 믿어야 한다. "여기 아무도 없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가?"와 같은 구체적인 자문도 좋다. 상황이 위험성을 판단할 때에는 본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너무나도 가슴 아픈 세월호 참사 사건 당시에도 배가 기울어 선실을 빠져나올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선장은 계속해서 선실에 대기하라는 안내방송만 되풀이하였다. 그리고는 선장 자신은 살기 위해 자신의 책임을 쳐버리고 자신의 본능대로 살려고 배를 버리고 탈출한다. 만약.. 당시의 학생들이 자신 스스로 위기상황을 판단할 수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이 최대 위기상황에서 선장의 전문성과 권위를 믿은 것이 911 테러 때와 비슷한 모습이다. 개인의 입장에서 사건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겠지만, 위기 속에서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구할 수 있었을 것이 자명하다.


둘째, 만약 내가 피해자의 입장에 처하게 된다면 '다중의 무지'를 상기해야 한다. 위험에 처해 그냥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거기 검은색 양복 입으신 분.. 안경 쓴 분.. 경찰에 신고 좀 해주세요~"처럼 정확하게 특정인을 지목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사건의 목격자라면 방관자 효과를 꼭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곤경에 처한 사람을 확실하게 도와줄 수 있다. 심지어 방관자 효과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타인을 더 도우려 한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회사나 조직생활을 하면서도 여러 가지 위기상황을 직면할 것이다. 그것이 심리적 안전이든 물리적 안전이든 안전에 관련된 일들은 늘 도처에 있다. 집단으로부터 방치되어 따돌림을 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고, 또 의도적으로 자신이 방관자가 되어 정치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도움을 제공하려는 마음과 행동 간의 일치여부다. 조직의 리더라면 방관자 효과를 더욱 잘 살펴야 한다. 초 개인화, 개인주의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위기에 처한 개인, 직원들이 계속 양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방관자 효과는 조직문화를 서서히 갉아먹는 기생충과 같다. 개인의 입장에서도 "다중의 무지" 개념을 상기해야 한다. 자신이 현재 어려움에 처했다면 다른 사람들이 나의 입장을 이해해 주길 마냥 기다리면 안 된다. 막연한 생각에서 더욱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제노비스의 신드롬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 같다.


만약 회사가 늘 경영위기로 어려운 상황이라면 어떨까? 이럴 경우 여러 소문만 무성하게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 소문은 늘 모호하고 불안한 심리상태에서 가까운 관계 내에서 양산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도 주변에 휩싸여 현재의 위기 상황을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데에만 에너지를 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능과 감각에 의존해 탈출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주변에서 이러한 상황을 접할 때면 늘 안타깝다.





Don't think, just do !!


얼마 전 중학교 3학년 아들이 2박 3일간 단체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출발 전날 밤에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옛 추억을 아름아름 소환하면서 참 다양한 얘기들을 나눴다.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니... 부모가 업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단체활동이다 보니 여느 부모들처럼 가장 중요한 안전수칙에 대해서 강조를 많이 해줬다. 특히 단체활동에서 주의해야 할 수칙도 있지만, 단체가 위기상황과 맞닥뜨렸을 때에는 자신의 "본능과 감각" 믿고 따라야 함을 주지시켜 줬다. 긴박한 위기 상황에서는 선생님도, 전문가도 그러한 상황을 경험해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고, 내가 처한 상황을 나보다 더 잘 알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중고등 학생이라면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경우에는 안전에 대해서 강박이 좀 있다. 그것은 특수부대에서 군 복무를 할 때 주변의 위기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스스로 그려보는 훈련이 지금도 몸과 마음에 남아 있다. 건물을 수색하는데 적군(훈련) 갑자기 튀어나오면 진압을 해야 했고,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은 경우를 대비해 미리 상개검사 훈련을 해야 했다. 지금도 지하철을 타면 출입문 강제 개폐방법을 확인한다. 만약 지하철에 화재가 난다면 어떻게 대응할지 미리 시나리오를 생각해 놓는 것이다. 자동차를 운전해서 고가다리를 건널 때도 마찬가지다. 만약 갑자기 다리가 붕괴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미리 그려본다. 지하 터널을 지날 때도 마찬가지다. 만약 물이 차오르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 탑건에서 교관 매버릭(탐 크루즈)은 적군 전투기와 교전상황에서 생각을 하지 말고 하던 대로 그냥 하라("Don't think, Just do")로 말하다. 너무 긴박하기 때문에 본능을 믿으라는 의미다. 위기상황에서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어쩌면 자신의 본능과 감각일 수 있다. 수십만 년 동안 인류는 생명을 지키고 유지하는 방법을 유전자 안에 보관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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