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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동의하신 거죠?

집단사고의 함정

by 윤덕수


말하지 않았을 뿐


회의 중 누군가 발언할 때,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의 제스처를 보냅니다. 그러나 그 제스처가 동의를 뜻하진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심지어 동의로 보일지라도 그 동의가 진심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힘이나 환경적인 맥락에 의해 강요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팀에서 합의된 결정이 항상 합리적이라고 믿곤 하지만, 실제로는 구성원들이 서로의 시선을 의식하고, 때로는 몰라서.. 혹은 지나치게 확신에 찬 상태에서 내리는 결정이 참 많습니다. 팀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의사결정의 오류들..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좋은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이러한 행동패턴을 반드시 이해해야 합니다.


첫째, 집단사고(Group think)입니다. 이것은 구성원들이 만장일치를 이루려는 과정에서 비판적인 사고를 포기하고, 반대 의견을 배제하려는 심리에서 비롯됩니다. 이 현상은 특히 권위적인 리더십 하에서, 또는 동질성이 높은 그룹에서 강하게 나타납니다. 미국의 코로나19 대응 사례를 보면 집단사고의 부작용이 잘 드러납니다. 초기 대응에서 과학자들의 경고는 정치인들의 정치적 판단에 억압되었고, 전문가 집단 내부의 이견들은 묵살되었으며, 외부 피드백은 수용되지 못했습니다. 반면 한국의 K-방역은 어땠나요? 세계적으로 높이 인정받았죠. 특히, 전문가 집단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와 신속한 정책 반영, 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격리방법 등 다양한 의견이 제도적으로 흡수되는 시스템 덕분에 세계 최고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 두 사례는 위기 상황에서 집단사고를 방지하는 구조적 조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둘째, 과몰입(Escalation of commitment)입니다. 혹시, 이미 투입한 투자금이나 자원이 아깝다는 이유로 잘못된 결정임을 알았음에도 수정하지 않고 계속 고수한 경험이 있지 않나요? 실패가 거의 확실시되는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노력이 헛수고가 되면 안 된다는 신념을 만들어 더 깊이 빠져들곤 합니다. 이 현상은 특히 상위 의사결정자일수록 강하게 작용하며, 체면을 중시하는 조직 문화에서 자주 나타나곤 합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프로젝트 중간 점검을 외부에 위임하거나, 실패를 학습 기회로 인정하는 조직 문화가 중요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근성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과한 집착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셋째, 에빌런 패러독스(Abilene paradox)입니다. 가끔.. 내키진 않지만 다른 구성원들이 대부분 동의할 것이라고 믿고 무심코 찬성하는 상황들을 경험하셨을 겁니다. 그 결과 아무도 원치 않았던 결정이 채택되고, 모두가 그것을 남 탓으로 돌리기까지 하죠. 이 현상은 의견을 말할 자유가 부족하거나, 심리적으로 무기력한 상황에서 자주 발생합니다. 해결책으로는 익명 투표, 발표자의 지위 최소화 등 찬반 토론의 규칙마련 등으로 구조화하는 방법이 좋습니다.


끝으로, 집단 극단화(Group polarization)입니다. 이것은 유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점점 더 극단적인 입장으로 나아가는 현상입니다. 논의 과정에서 자신의 기존 입장을 더욱 강화하게 되며, 그러기 위해 강한 어조와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처음 기대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과격한 선택으로 이어지게 되죠.. 2021년 미국의 ‘백악관’ 난입 사건과 2025년 한국에서 벌어진 ‘서부지방 법원’ 난동 사건은 그 위험성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매체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상호 간의 확신을 강화해 주며, 결국 실질적인 행동으로까지 이어진 결과였습니다. 이러한 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배경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를 촉진하고 의견을 수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토론 시에는 단순한 입장 표명보다는 논거 중심의 대화방식이 효과적입니다.




이 모든 현상은 겉으로는 합의와 참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각을 가로막거나 무비판적 추종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팀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난 조화보다 내부의 다양성과 충돌이 안전하게 표현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군가는 이 현상을 자각하고 조정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지요.


진정한 동의는 모든 이견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성숙한 단계입니다. 모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그 결정이 정말 옳은 것인지 되묻는 습관. '침묵'은 집단 오류의 징조가 될 수 있습니다.



집단사고(Group Think) 진단하기

Park, W. W. (1990).


우리 팀은 대체로 리더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을 꺼려한다
외부 전문가나 다른 부서의 조언을 잘 수용하지 않는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는 시간이 부족하다
대부분의 회의는 의견 일치로 신속히 결론이 난다
구성원들은 다수의견과 다른 입장을 말할 때 조심스러워한다
우리는 결정의 부정적 결과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지 않는다
회의 결과에 이의제기하는 일은 사실상 거의 없다
회의에서 이견이 제시되면 분위기가 불편해진다

Reference


Esser, J. K. (1998). "Alive and well after 25 years: A review of groupthink research."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73(2), 116-141.


Brockner, J. (1992). "The escalation of commitment to a failing course of action: Toward theoretical progress."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17(1), 3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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