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주부가 뭐 어때서

by 별하늘

[나눌 이야기 : 나는 왜 주부의 삶을 선택했는가?]




우리 사 남매는 서울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다. 부모님은 대학 공부와 수험생활을 지원해 주셨다. 하지만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나는 공부 외에는 어떤 것을 할 수 있을지 몰랐다. 당시 벤처 붐(지금의 스타트업)이 한창이었지만, 나와는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수험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는 일상을 보냈다.



졸업은 다가오고 공부가 지겨워질 무렵, 자연스럽게 취업을 고민하게 되었다. 공무원으로 일하던 언니의 영향도 컸다. 언니는 첫 아이를 낳고 1년 육아휴직을 마친 후,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다시 직장에 나갔다. 하지만 아이를 주말에만 잠깐 만나는 모습은 몹시 힘겨워 보였다. 결국 둘째 아이 출산 후 일을 그만두었다. 주변에서는 계속 일을 하길 바랐지만, 언니는 주부의 삶을 선택했다.



시간이 지나 공무원 사회에 3년 육아휴직 제도가 생겼다. 언니는 집에서 그 변화를 지켜봤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저축과 절약으로 내 집 마련에 성공했고, 지금은 고가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근로소득이 자본소득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현실을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나도 최대한 종잣돈을 모아 결혼 후에는 주부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남자친구 역시 그 생각에 동의했다. 결혼 후 나는 첫 아이 육아휴직이 끝나고 주부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주부의 삶을 선택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주부의 삶이라 해도,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주부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고된 삶이었다. 맞벌이 가정의 워킹맘과 종종 비교당하고, 누구에게도 아이를 맡기지 않고 스스로 육아와 집안일을 도맡아도 “하는 일이 없다”는 말을 듣는 삶이었다. 같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일하는 여성이 더 낫다'는 시선은 나를 더욱 작아지게 만들었다. 결국 많은 주부들이 조용히 아프거나 사라져 갔다.



남편의 승진을 신경 쓰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해 병에 걸린 주부.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한밤중에 쓰러진 채 발견되는 주부. 명절증후군으로 몸이 먼저 반응하고 결국 다치고 마는 주부들. 그들처럼 나도 속으로 삭이며 병들어 갔다. 언니의 주부로서의 삶은 점점 안정되어 갔지만, 나는 마치 종갓집 맏며느리가 된 듯 시부모님의 가부장적 문화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었다.



같은 주부라도 누군가는 친정의 지원 아래 골프를 치며 여유를 누리고, 누군가는 마치 로또라도 맞은 듯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또 누군가는 남편의 고소득 덕에 자녀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삶을 살았다. 그런 삶들과 나의 삶을 비교할 필요는 없다. 나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나에게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우리 가정을 꾸려 나가는 의미였다. 그러나 시부모님이 오라면 가야 하고, 그들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친정 부모님과 사는 것이 낫지 않았겠는가. 우리 부모님 또한 지방 출신의 가부장적인 분들이었지만, 자식으로 겪는 가부장제와 며느리로서 겪는 그것은 차원이 달랐다.



밥값을 하려면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분위기라면 어떻겠는가? 부모님 세대의 ‘아들 타령’은 이해한다 해도, 지금은 딸이 더 좋은 시대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아직도 아들을 낳을 때까지 시달리는 며느리들을 보았다. 그들 앞에서는 내 자녀를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상처가 되곤 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주부라서’ 불행했던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굴레에 갇혔던 것이다. 그렇다고 '주부라서' 행복했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주부가 뭐 어때서? 주부(며느리) 없이 한번 살아보시라.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돈이 필요한지, 직접 겪어보길 바란다.

주부들이여, 더 이상 움츠러들지 말고 당당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