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明暗

창작 소설

by 별하늘


상한가요정에 이어서 인생의 明暗으로 소설을 씁니다.






"여기 연예인 있나요?"

미희가 모자를 눌러쓰고 ㄱㅈ학원론 시간 출석 중간에 들어왔다. ㄱㅈ학원론 교수님이 출석을 부르다 말고 우리에게 묻는다. 아마도 모자에 가려진 미희의 작은 얼굴 윤곽이 연예인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미희는 항상 강의실에 늦게 나타났고 강의가 끝나자마자 잽싸게 빠져나갔다. 학교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 보였고, 그런 미희의 태도를 음해하는 가짜 뉴스도 생겨났다.

결국 미희는 주변의 과도한 관심으로 학교를 휴학했다. 팅커벨이 사라진 날 우리는 몇 날 며칠 술독에 빠져 지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잊히게 마련이고, 우리는 졸업반이 되면서 취업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나는 졸업과 동시에 원하던 ㅎㄱㅈㅅ공사에 취업할 수 있었다. 이제 하숙집을 벗어나서 나만의 보금자리를 가질 생각이다. 퇴근 후에 부지런히 집을 알아보러 다니고 있다. S 시티의 랜드마크인 삼삼 빌딩이 보이는 강뷰를 우선순위로 두었다.

한 달여 지나고 마짱부동산에서 내가 원하는 곳이 전세로 나왔다며 연락이 왔다. 직장에서 지하철 두 정거장 거리로 안성맞춤이다. 즐거운 발걸음으로 마짱부동산에 들어섰고, 중개인 아주머니와 여자 손님의 말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 나를 일제히 돌아보는 두 사람,


"어.... 팅커벨"

"선배님,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너야말로..."


중개인 아주머니는 웃으시며 "아는 사이였어요?"

내가 보기로 한 집주인이 미희였다. 새로 산 신발이 나를 미희와 만나게 하려고 그 집으로 이끈 것인지 우리는 그날 저녁을 같이 먹었다.






미희네 부모님은 양가 부모님 중 할머니만 살아계신 상황에서 온 가족이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 '미미네 한식"이라는 식당을 열고 하와이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관광객들도 찾아서 오는 핫플 맛집이었다.

부동산에서 몇 해 전부터 매매 전화가 자주 와서 알아보니 아파트값이 심상찮았다고 한다. 자고 일어나면 1억이 오르고, 또 1억이 오르던 시기여서 세입자의 전세자금도 가파르게 올라갔다고 한다.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을 끌어올리는 시기였다. 미희는 마침 대학 진학을 앞둔 시기여서 한국의 대학으로 지원을 해서 오게 되었다.

미희네는 이민 가기 전에 살던 집이 똘똘한 한 채의 입지에 있었고 상승의 기세는 연일 신고가를 경신했다. 미희는 오른 전세자금의 50%로 부동산 투자를 했다. 내가 1억 5천만 원짜리 전세 아파트텔을 알아볼 때 미희는 이런 아파트텔을 대학가 역 주변으로 3채 보유하고 있었다. 팬데믹 시기에 학생들이 학교에 오지 않아서 공실이 생길 만도 했는데 역세권이라서 직장인들도 거주했다.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이 옵션으로 되어 있어서 이사가 잦은 사회 초년생이 머무르기에 좋은 여건이었다.





몇 년이 지났지만 미희는 여전히 팅커벨의 모습이었고, 남자친구가 없었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은 얻는다고 나는 미희에게 적극적으로 연락을 했다. 주말에 만나서 영화도 보고, S 시티를 돌아다녔다. 그녀의 로망이 캠핑카를 타고 전국일주를 하는 것이어서 나는 그 말을 들은 날 바로 캠핑카 적금을 들었다. 미희와의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가던 나날들, 우리가 자주 가던 빛나카페에서 나는 준비한 커플링을 꺼내며 진지하게 만나고 싶다고 고백을 했다. 미희는 단칼에 거절했다. 결혼 생각이 없다고 했다. 나는 비혼주의냐고 물었고, 그녀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미희는 결혼 문화에 적응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남편의 부모님에게 며느리가 해야 할 역할, 시댁 제사에만 참석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희네 부모님도 명절을 지내기는 하지만, 식당일이 바쁘다 보니 간단하게 형식만 갖춘다고 했다. 차례상 장보고, 하루종일 부침개 하고 여자들만의 노동을 미희는 이해할 수도 없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했다.




한국 사회의 결혼은 여자의 변화만 원한다. 남자는 다니던 직장을 계속 다니며 경력을 쌓고 일에 열중하면 되지만, 여자는 출산과 양육이 기다리고 있고, 지금껏 자신을 키워준 친정 부모님보다는 남편을 키워준 시부모님께 효도를 해야 한다. 시집 식구들도 얼마나 잘하는지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고 있다. 이런 희한한 세계를 미희는 받아들일 수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가까워질 생각을 하기보다는 사람들과의 어울림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할 뿐이다. 미희는 그마저도 취미 부자라서 하루하루가 바쁘다. 부동산 시세, 주식 시세 그것만 확인해도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나는 캠핑카 적금도 내밀며 미희에게 모든 것은 하기 나름이라며 한 번만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 후 미희가 꺼낸 카드는 혼전계약서 작성이었다. 나는 미희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결혼을 하면 아무래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도 없잖아 있었다. 나는 S 시티로 대학 진학을 하고 취업을 하면서 고향의 부모님을 명절 때나 찾아뵙는 정도였다. 결혼해도 바쁜 직장 생활로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은 그 정도라고 생각했고, 꼭 명절날이라고 가지 않겠다는 혼전계약서 조항을 가볍게 생각했다. 한마디로 여자의 명절 노동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미희는 재차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께 똑같이 해드리겠다고 하면서 결혼을 했다.







"이 녀석아, 여자 하나 휘어잡지를 못하고, 네가 중심을 잡고 여자를 이끌어야지 여자 하자는 대로 하면 어떡하니?"

"자꾸 이러시면 저도 안 가고 아예 안 가겠습니다."


상민은 부모님의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요즘 맞벌이를 하면 양가 부모님이 전적으로 도와주셔야 아이도 낳고 가정이 유지될 수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상민의 부모님은 농가라는 이유로 도움을 받기만을 기다리고 계셨다. 며느리가 생겼다는 이유로 주변의 보는 눈도 있고 해서 매번 오라는 전화를 받아야 했다. 목요일부터 전화가 와서 이번 주말에는 올 수 있는지를 물으셨다.







출장을 핑계로 상민은 혼자 고향에 내려가서 부모님을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모님은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는 비교가 더욱 심해지셨다. 누구 며느리는 와서 무엇을 했고, 뭘 사줬고, 용돈을 얼마 주더라는 이야기부터 부모님의 일방적인 이야기만 들어야 했다.


"좀 우리들 하는 대로 놔두시면 안 되나요? 그렇게 꼭 며느리 봤다고 더 오기를 바라고 기다리시고 뭘 그렇게 바라시는 게 많으세요?"

"오늘이 마지막 걸음이 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 시간 미희는 S 시티에서 상민이 좋아하는 메기국을 끓이고 LA갈비를 재워놓고, 잡채를 하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케이크와 산모수첩이 놓여있다.



상민은 고향의 바닷가 명소인 명암 바위로 갔다. 그 바위에 한참을 앉아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미희에게 전화라도 했더라면 다른 결정을 했을지도 모른다. 상민은 부모님도 미웠고 미희도 미웠다. 어느 쪽도 양보라는 것이 없었고 자신들 주장만 했다. 그것을 들어줄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다. 상민의 신발만 명암 바위 위에 남겨졌다. 끝.





※ 본 소설에 등장하는 설정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 대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별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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