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4주 쓰작쓰작 작가 커뮤니티 뉴스레터
안녕하세요? 작가 커뮤니티 쓰작쓰작 대표 꿈마루 황상하입니다.
금주 모임에는 인공지능이 많이 발달하는 시대에 어떤 사람이 살아남을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강연보다는 이야기를 진행하는 편이 좋을 듯해서 준비한 강연은 다음 주로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어떤 내용으로 진행했는지 같이 한번 살펴보도록 할까요?
Chat GPT를 한 번이라도 써보셨나요? 써봤으면 놀랐을 겁니다. 글을 써달라고 하면 글을 써주고 어떤 주제의 대본을 작성해 달라고 하면 작성을 해주듯 너무나도 좋은 도구가 생겼으니 그야말로 신기할 따름입니다.
최근 제가 올린 글 또한 초고를 가지고 Chat GPT에게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읽을 수 있게 수정해 줘'라고 부탁을 해서 인공지능이 수정한 것 그대로 붙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내 글에서 수정해야 할 부분을 알려달라고 하면 수정해야 할 부분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정말 유용합니다. 이렇게 되다 보면 정말 작가들이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Chat GPT에게 원본 원고를 수정해달라고 하기 전의 글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요즘 핫한 것이 인공지능에 대해 많은 분들이 이야기를 한다.
특히 Chat GPT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야기가 나오고 그걸 활용해서 책까지 쓰는 사람들까지 등장을 하였으니 최근 이슈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차지할 것이다.
인공지능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직장이 사라질 것이다.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만든 것의 저작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이런 말들이 들려온다.
Chat GPT, 미드저니 둘 다 사용해 본 사람으로서 신기할 따름이었다. '과거보다 기술이 발전했구나, 과거보다 기술이 발전해서 지금의 이 기술이 존재한다'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예전에는 안테나 늘려서 전화를 하는 휴대폰, 안테나 없어진 피쳐폰, 피쳐폰 크기에 화면이 터치 가능한 터치폰 이어서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등장이 현시대의 모습이다. 내가 자라왔던 시대가 정말 순식간에 변한 것도 돌이켜보면 눈 깜짝할 새 변하긴 했다.
최근에 Chat GPT를 많이 사용한다. 어느 단어, 용어의 의미, 뜻 등을 알려달라고 하거나 어원을 찾아달라고 하는 등 요긴하게 사용한다.
이런 Chat GPT를 볼 때 사람들이 뭔가 부탁할 때 군말 없이 인내심을 가지고 그것을 묵묵하게 해낸다. 만약 이게 인공지능이 아니라 사람으로 바라본다면 내가 배울 점이 뭐가 있을까?
1. 인내심이 많다.
2. 의중을 잘 파악하고 순종한다.
3. 어떻게든 이해를 시켜주려고 노력한다.
4.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인 반복작업을 할 수 있다.
5. 사람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일인 반복작업을 꾸준히 하라고 하면 짜증을 낸다. 물론 설명도 말이다.
6. AI는 그런 거에 투덜거리지 않고 수행한다.
7. 이런 걸 하는 인공지능을 보면 사람은 무서움을 넘어 경외심을 느끼는 사람이 존재한다.
8.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과 같은 안드로이드가 출현하기 전까지 활용을 할까 고민을 하지 나오게 되면 같은 인류로서 상생을 할까 고민을 해본다.
9. 그러한 안드로이드의 출현을 하게 되면 내재된 인격적인 감정, 감성, 감수성 등이라고 불리는 자아정체성을 일깨우는데 도와주고 싶다. 그가 누구인지, 그를 스스로 어떻게 정의하는지 등을 말이다.
최근에 들려오는 소식으로는 Chat GPT를 활용하여 전자책을 만들어 아마존에 1달러에 올리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고 합니다. 한국에는 Chat GPT와 그림 그리는 인공지능을 통해 책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대화 나눠서 그걸로 책을 내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현직 작가인 저도 글을 기가 막히게 쓰는 인공지능을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었죠. 그중 핵심은 '작가라는 직업이 앞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추측을 해봅니다.
사람들에게는 글 쓰는 것, 책에 대한 인식이 바뀔 것이라고 아래와 같이 예상해 봅니다.
1. AI가 다 해 먹을 것이 아닌가? 나는 글이나 책을 쓰지 않아야겠다.
2. 작가라는 직업이 사라지지 않을까?
3. AI를 어떻게 이용(利用)할까?
4. AI를 어떻게 활용(活用)할까?
5. 글 쓰는 것이 쉽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며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 함양
저는 처음에는 다수의 사람이 AI라는 도구의 장점을 이용하여 책을 내기 시작할 거라고 봅니다. 하나의 주제를 주면 목차를 형성하는데 금방이니까요. 그런 이점을 이용하여 책을 냅니다. 그러한 책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책에 관심을 가지죠. 저 또한 스노우폭스북스에서 기획하고 출간한〈삶의 목적을 찾는 45가지 방법 〉이라는 책도 Chat GPT를 이용하여 만든 책이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봤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추측해 보자면 인공지능이 쓴 책이니 사람보다 잘 쓰고 유용한 정보를 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한몫을 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걸 이용하여 AI를 이용한 책을 세상에 선보이는 출판 시장으로 바뀔 것이라 봅니다.
이와 반대로 극소수의 사람들만 자신의 가치관, 사상, 생각을 글로 녹여서 책으로 세상에 선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책은 사람들의 관심에 벗어나게 됩니다. 이와 동시에 Chat GPT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제를 알려주면 알아서 써주니 작문, 책 출간은 극 소수 사람의 취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생각해 봅니다. 이 취미를 가진 사람의 책은 세상에 나오게 된다고 봐도 되겠죠. 인공지능이 어느 정도 발달을 할 무렵 사람들은 이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어느 것이 인공지능을 이용한 책이 아닐까?'
'진짜 사람이 쓴 책은 무엇일까?'
그때서야 사람이 쓴 책에 시선이 몰리게 됩니다. AI가 세상에 선보인 책 보단 사람이 직접 기획하고 자신의 삶을 녹여 쓴 책에 더 시선이 가게 됩니다. 시장 원리 중 희귀성에 따라 사람들은 그곳에 시선이 가게 되기 마련이죠. 이렇게 되면 AI가 낸 책보다는 사람이 낸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사람이 낸 책이 상업성을 띄게 되면서 다시 사람들은 글을 쓰게 되고 책을 내게 된다고 봅니다.
왜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쓴 책보단 사람이 쓴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지 한번 더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분은 어떤 제품을 사거나 어떤 사람을 응원할 때가 있지 않나요?
예를 들어서 그 사람의 삶을 알거나, 그 사람이 어떻게 일했는지 과정을 알게 되면 응원하거나 제품을 구매해 주거나 후원을 하는 등의 형식으로 말이죠. 인공지능은 빠른 시간 내에 연산 처리를 합니다. 한국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책을 읽었습니다. 작가로서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죠. 사람이 원고를 작성한 책이라는 가정을 하고서 읽어보더라도 사람의 손길을 거친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기계가 작성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죠. 영화에서 말하는 불쾌한 골짜기라고 있습니다. 인간 외의 것이 어설프게 따라 하거나 너무 완벽하게 따라 하게 되면 호감보단 거부감을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이 들면서 글이라는 작업은 AI를 도구로서 활용할 수 있을지언정 결국엔 책을 찾는 사람은 작가의 세계관 즉, 글을 쓴 사람의 생각, 사상, 가치 등을 바라보고 싶다는 것을 자각했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저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과학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도 좋지만 창작자에게는 인문학적 사고를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즉, 앞으로는 인문학적 사고를 지닌 사람이 드러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인문학적 사고가 왜 중요하냐라고 저에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인문학이란 나, 사람,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학문이라고 봅니다. 이와 반대로 과학은 한 분야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학문입니다.
세상은 점차 가면 갈수록 악해집니다. 사람들이 이런 사회를 보고 "말세"라고 말할 정도죠.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양극단으로 나뉘어가고 있습니다. 성별 갈등, 정치적 이념, 각 사람의 사상, 가치 등 다양하게 양극단으로 나뉘어 갑니다. 특히 선한 행실을 하는 사람이 매스컴에 나타나면 "빛"이라고 하며 그 사람을 우상화를 하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매출을 높여주겠다며 도움을 주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인문학적 사고를 지니게 되면 먼저 나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고 나를 이해하니 타인(사람)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해하게 됩니다. 세상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니 사람을 이해하다 보면 세상을 덩달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이해하기 싫어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세상은 악해지고 있고 양극단으로 나뉘어가고 있는 시대에 인문학적 사고를 지니게 되면 나를 존중하는 것은 물론 타인에 대해 자연스러운 존중이 나오니 그 사람이 드러날래야 안 드러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하여 과학을 잘하는 사람은 두각을 나타나는 듯 보일 겁니다. 그러한 인재를 양성하도록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 봅니다. 이미 양성하고 있다고 저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쳐봅니다. 이런 인재만 양성하게 된다면 세상에 대한 이해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여튼 다시 본제로 돌아와서 창작자가 인문학적 소양을 띄게 된다면 앞으로는 살기 좋아질 듯합니다. 사람들은 창작자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하기에 창작자가 깊은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게 된다면 양극단화 되는 사회 구조,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한 생각의 힘이 얕아진 사회 현상 등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앞서 인문학은 나와 사람, 세상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부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심리학은 사람에 대한 마음의 이치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학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만났을 때 대하는 방법, 나를 이해하고 탐색하는 방법에 국한되어 있다고 해도 무관합니다. 심리학만 공부하게 되면 나와 사람들을 다 이해할 것이라 과한 해석을 합니다. 심리학만 공부하게 되면 나와 타인들을 이해하기는커녕 오히려 이해 못 할 때가 많습니다. 머리로 이해하고 그치는 경우가 많죠. 심리학 또한 과학의 일부분이기에 그러합니다. 과학은 가치판단을 할 수 없기에 그러합니다.
인문학을 단편적으로 보면 나와 사람, 세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본질적인 것은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고전을 읽으라고 하면 흔히 어렵다고 말합니다. "딱딱하다", "공부를 해야 한다", "어르신들만 읽는다"라며 기피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저는 이런 책을 공부하기 위해 읽으라고 안 하고 내 삶을 이해하는데 활용하라고 고전을 읽어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쉬워지는 게 고전입니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됩니다. 고전은 몇 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살아남은 책입니다. 많은 사람이 찾게 되는 책, 울림을 주는 책이 고전입니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결국엔 찾는 책이 고전입니다. 그런 책을 읽음으로 말미암아 그 책 속에 녹아들어 있는 사상, 생각, 가치 등을 습득하게 됩니다. 습득하게 되면 나만의 세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됩니다. 흔히 말세라고 말하게 되는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탄탄한 세계가 구축이 되어있으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저에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도서관에 가서 마음에 드는 책 여러 권 선택하고 읽히는 책을 읽어보라고 합니다. 고전 또한 비슷합니다. 고전을 읽기 위해 도서관에 가거나 서점에 가기에 발걸음이 잘 떼지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집에는 대부분 성경 책 한 권씩은 다 있을 겁니다. 집에 논어, 소학, 대학, 불경과 같은 고전 서적이 없는데 이상하리만큼 성경은 다 한 권씩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성경 책 추천하면 종교 강요하는 거라고 오해를 삽니다.
저는 종교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종교는 알아서 선택하는 거지 강요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성경을 읽고 삶이 바뀌어서 추천을 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도 저와 같이 바뀌었으면 해서 추천을 하는 겁니다. 본인이 종교를 가지고 싶으면 가지는 거고 가지기 싫으면 안 가지는 건데 말이죠. 사람의 휴리스틱이 발동하여 그러한 생각을 하는 건 이해합니다.
최근 성경을 읽으면서 재미있는 일화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백성들이 옆 왕국을 보고 사무엘에게 부탁하여 어쩔 수 없이 왕을 세워서 사울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이스라엘 1대 왕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부탁한 것이 있는데 전쟁에서 이기면 전리품을 취하지 말고 다 없애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그것을 어겼고 또한 사무엘이 도착하기 전 마음대로 제사를 지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이 와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같이 제사를 지내라고 부탁했는데 말이죠. 이렇게 되면 안 되겠다 싶어서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2대 왕으로 다윗을 택하게 됩니다. 다윗은 나가는 전쟁마다 승리를 하게 되니 사울 옆에 있던 음유시인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라는 말을 듣고 그 당시 왕인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게 됩니다. 어떻게든 다윗을 죽이기 위해 최측근 장수로 삼거나 자신의 딸과 결혼을 시키거나 최전방으로 보내어 전사를 시키려고 하지만 다윗은 왕이었던 사울을 끝까지 왕으로 섬기게 됩니다. 다윗은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의 이러한 인품을 보고 "내가 너를 늘 죽이려고 하는데 용서를 하다니 내 아들이다"라고 아들보다 더 귀한 자녀로 인정을 합니다. 다윗이 그에게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후에 사울은 다윗에게 왕권을 물려줍니다.
지금 글을 쓰는 와중에도 제 옆에는 성경이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도 성경 속 다양한 인물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이야기를 보며 다윗의 인품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고 사울의 이야기를 보며 나에게 없는 것을 타인을 보며 시기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 이야기만 하면 재미없겠죠? 논어 학이편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지 아니하면 즐겁지 아니한가?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나와 사람을 알아가고 세상을 알아가는 학문인 인문학 곧 고전을 통해 과학이 알려줄 수 없는 가치, 관점, 사상 등을 알아가고 나만의 가치와 관점, 사상이 깊어지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것 또한 즐겁지 않을까요? 저는 그것을 이른바 학문(學問)이라고 말을 합니다. 나에 대해 사람에 대해 세상에 대해 배우고 나와 타인, 특정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 질문하고 답을 하여 배워나가는 것을 학문이라고 합니다.
작가 커뮤니티 쓰작쓰작 모임에 참여하게 되면 서로 글에 대해 합평도 진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장감이 있는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 강연이 진행됩니다.
뉴스레터에 있는 내용은 온라인 강연 내용입니다.
「글을 쓰고 싶어도 누군가에게 비난 받을 까봐 두려워서 쓸 수 없어서 못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희 모임에서는 끝까지 빠지지 않으면 내 이름으로 된 책 한권을 손에 쥐어드립니다」
저희 작가 커뮤니티 쓰작쓰작의 모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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