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인문학 산책
“엄마 나 공부방 하나 차려주면 안 돼?”
“우리 아들 공부 잘하니까 하나 구해줘야지”
“속보입니다. 18세 고등학생 A군이 공부방에서 마약 판매하여 약 2억 가량의 소득을 취득한 것으로 밝혀졌…”
최근에 이와 비슷한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다1). 기사를 보면서 생각해 본 것은 부모들이 아무리 고3이라 하더라도 공부하라고 따로 방을 구해주지는 않는다. 학교에서 공부하라거나 스터디 카페, 학원 등을 보내서 공부시킨다. 부모는 자녀가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여 공부에 집중하도록 최대한 지원한다. 정작 중요한 것을 잊은 채 말이다.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전 세계의 자원은 희소해진다. 그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법도 어겨가며 얻으려고 한다. 과거를 생각하면 자원이 오늘날보다 많았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발견되지 않은 것이 많았을 뿐이지 오늘날과 비슷하게 한정된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차지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인륜에 어긋나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어긋나는 행위를 하게 되면 사회적으로 매장되어서 내가 살던 곳에서 떠나 정말 먼 곳에 정착하거나 나그네 생활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거와 다르게 오늘날은 어떠한가? 오늘날은 결과만 잘 나오면 다른 것을 무시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도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여 법과 제도에 의해 그 일에 대한 잘잘못을 결정한 후 사람들에게 알리면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누어진다. “어떻게 그 정도의 돈을”, “나도 그렇게 해볼까?” 하면서 그 사람의 결과를 칭송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네?” “개XX” 등으로 인간으로서 윤리를 저버린 행위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
인간으로서 도리, 규범, 사회적으로 지켜야 할 약속 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결과만 바라보고 그것만 갈망하게 되어 버리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심심찮게 보게 된다. 그런 걸 볼 때마다 심리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사람의 마음이 힘들어서 그래’, ‘요즘은 자원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적어서 그래’ 등으로 겉에 보이는 것만 바라봤다. 어딘가 병이 나면 병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듯 사람의 마음이 힘들면 어떻게든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회복이 되었다는 것이 나와야 한다. 경험상 영 곧 마음이 회복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돕고 배려하며 존중하는 등의 모습이 나타난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이 세상에는 자기 자신만이 이해해달라고 목 놓아 외치는 사람들이 보내어지고 있다. 이해가 아닌 갈등, 배려가 아닌 무관용, 존중이 아닌 차별, 감사 보단 비난 등으로 변질이 되어 가고 있다.
“네 글을 가만 보아하니 글 속에는 과거를 향유하는 듯하구나”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과거를 향유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는 잘못된 길을 갈 때 누군가 잡아줄 사람이 없다. 잡아주면 오히려 뭐라고 한다.
“네가 뭔데!”
천륜으로 맺어진 자에게도 욕을 한다.
코로나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첫째는 대면 서비스가 당연했던 것이 비대면 서비스로 전환이 되었다. 이에 따라 서비스 업계의 모든 것이 10년 앞당겨졌다는 말이 있다. 두 번째는 Chat GPT와 같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현재 40, 50대, 그 이상의 세대는 그 사람의 인성이 어떻든 간에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가서 이름이 알려진 직장에 들어 가면 된다고 한다. 회사에 들어가면 성과를 잘 내서 회사에 이익을 가져오면 빼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과거는 그러했다. 결과 중심적인 시대에서는 말이다. 과거와 다르게 오늘날은 10대 창업가가 등장해서 자신의 상품을 만들어서 파는 사람도 나타났다. 좋은 대학 갔다고 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특히나 인공지능이 발달하게 되면 약 2만 개 정도 되는 직업군의 60%가 대체된다고 한다.
만일 여러분들 중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인공지능을 통해 수익을 내는 상황에서 일정 때문에 사람 만나는 일을 위임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것을 위해 사람을 채용한다면 누구를 고용하고 싶은가? 실력이야 당연히 좋은 사람을 데려가고 싶을 것이다. 마음 한켠에는 인성 좋은 사람을 뽑고 싶을 것이다. 실력은 실수하면서 차근차근 배워 나간다. 다 큰 성인이 회사에서 인성을 배우려면 긴 시간이 걸린다.
인성 곧 인간성, 타인을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며 존중하는 마음 및 성품을 일컫는다. 이것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제1사회 구성원인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어느 정도 자라면 제2 사회구성원인 친구와 어른들 곧 선생, 동네에 있는 어른들로부터 배운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가면 알려줄 사람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타인을 배려해 주지 못하는 것이 비단 심리학에서 우울, 불안 등으로 인하여 공감해 주고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잘 해결하는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성찰하고 삶을 통찰한다. 반대로 만성적으로 자기만 위해달라고 하며, 자신의 우울, 불안 등을 외부요인으로 탓하는 피해자행세가 굳혀진 사람은 그걸 깨부수고 나와야 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린다. 최근 하버드 대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용서할 시 우울과 불안 요소가 감소했다고 한다2).
누군가 용서하는 것은 인성의 미덕이요. 모든 종교에서는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만 내가 성장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전한다. 인성적인 것은 강조하지 않게 된 흐름이 종교의 문화가 아닌 종교의 경서와 가르침을 경외시하면서 생겨난 흐름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서두에 부모에게 공부방을 부탁하여 마약 유통으로 약 2억 원을 번 학생 이야기로 시작하여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인성이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어떤 학생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니 “저는 사람들에게 양질의 마약을 공급하는 정직한 딜러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진지하게 이야기한다3).
앞으로 인공지능과 공생하는 사회에서 단기적인 이익과 결과만 보고 좇게 하는 것이 아닌 인성이 올바르게 함양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