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봤을 때 이런 기사를 내용을 봤다.
매일 담배 15개비 피는 것보다 건강에 해로운 것이 있다.
나는 눈을 비비며 봤다. 담배 피우는 것보다 더 해로운 것이 있다고? 내가 올린 그림을 보고 추측한 사람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 바로 외로움이라고 한다1). 지금도 안 믿기는 사람들이 있겠다. 외로움이 매일 담배 15개비를 피는 것에 보다 더 심한 결과가 여러 연구에서 나왔다고 해서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 합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의 사회가 팽배한 패배감, 우울감이 짙어지고 있어서 이 글을 통해 희망을 전달하고자 글을 작성해 본다.
우리는 코로나19를 경험하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코로나19 이전과는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그때와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다. 다만 차이점이 존재하긴 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사람을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었다. 연락하면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밤새 이야기 꽃을 피우고 즐겁게 지낸 것이 코로나19 이전이었다.
코로나19 이후로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그리고 생긴 용어가 코로나 블루라는 단어다. 지구가 태어난 이래로 새롭게 정립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으로 사람을 만나지 못하거나, 소속감 혹은 연결감이 끊어져 고립되었다고 느껴져서, 우울감이 짙어짐으로 생기게 되는 우울증이 코로나 블루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던 것이 혼자 할 수 있는 놀이,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게 되었다. 특히 한국에서 10대와 20대에게 유행했던 것이 MBTI였고 무료로 검사할 수 있던 것이 NERIS Type Explorer® 검사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사회는 양극화 되어 갔다.
거품낀 시장으로 인하여 어떤 이는 부자가 되고 어떤 이는 빚이 더 생기며 서로 단절되고 고립되어 소통의 창구가 거의 인터넷밖에 없었다. 이곳은 서로 이해해 주기는커녕 서로 물고 뜯게 되는 좌파와 우파가 더 나누어지게 되고, 이성은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데 그들의 단점만 부추기고 있는 것을 팬데믹 현상으로 인하여 고립되고 벽을 쌓게 만들어버렸다.
당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소유물은 열린 마음이다. 당신이 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평화의 도구이다.
- 카를로스 산타나 -
양극단으로 나뉘어 가니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내 마음을 들어 봐달라고 외친다. 나팔같이 외친다.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은 꽹과리 소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말로 서로 치고받고 싸운다. 그 결과 마음은 더 공허해진다. 공허해진 마음을 채우기 위해 다른 것을 하게 된다. 또 내 마음이 들어달라고 한다. 이것을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한다.
누군가는 나선형처럼 앞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나선형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뒤로 가게 된다. 드릴을 들고 앞의 구멍을 뚫어야 하는데 나를 향해 회전하고 있으니 내 마음의 구멍이 채워진 상태로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책이라고 불리는 경서인 성경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사랑이 없으면 신의 말이라고 하더라도 꽹과리 소리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라는 사람이 신이 사람들에게 준 율법의 조항은 많은 것이 아니라 두 가지라고 알려주었다. 첫째는 내 몸과 마음을 다하여 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며 둘째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고 원수에게 다른 쪽 뺨을 주고 옷도 주고 먹을 것도 주는 등 내 것을 베풀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을 지키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하면 '나만을 사랑해 줘'라고 귀결한다. 그리고 조건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것은 조건적인 사랑이다. 그것은 참된 사랑이 아니다. 참된 사랑을 알지 못하면 사람들에게 사랑을 갈구하면서 어릴 적 받지 못한 사랑을 채워달라고 한다. 상대방도 받지 못한 사랑을 부탁한다. 특히 연인 사이에서 더 그렇다.
연인 사이에서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참된 사랑을 받았다면 누군가에게 내리사랑을 당연하게 해주고 상대방에게 참된 사랑을 해줄 수 있게 된다. 만일 참된 사랑을 받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부모가 했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게 된다. 그중 하나를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철수와 영희가 있습니다. 영희는 철수에게 자신을 사랑하는지 계속 물어봅니다. 철수는 영희에게 계속 사랑한다고 하고 영희는 철수에게 증명하라고 합니다. 철수는 영희에게 꽃도 주고 먹을 것도 사주며 영희가 원하는 것도 들어주는 등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도 영희는 마음이 채워지지 않고 그럴 때마다 철수에게 한 소리 합니다.
"너 때문에"
"네가 늦어서"
"네가 이렇게 하지 않아서"
철수는 그걸 듣고 '내가 더 잘해주지 않아서 그래' 하고 넘어갔습니다.
철수는 영희의 화, 짜증, 불안 등 부정적인 감정을 계속 받아주다가 영희에게 폭발하였습니다. 그러자 영희는 왜 그러냐며 울기 시작합니다. 철수는 당황하고 영희에게 사과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 어디서 많이 봤을 것이다. 대부분 연인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여기서 각색하면 인터넷에서 서로 갈등을 부추기는 말이 된다. 특히 남 탓하는 부분과 철수가 폭발하는 부분 말이다. 남을 탓하고 폭발하여 싸우고 서로 갈등을 부추기게 되는 것. 이른바 '내가 피해자야'라고 피해자 행세를 하는 모습을 하는 사람이 변변찮게 등장한다.
어렸을 때 누군가로부터 참된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인터넷, 일상에서 싸우든 나에게 피해자 행세를 하든 뭘 하든 간에 그 사람을 품어줄 수 있게 된다. 그 사람이 왜 나에게 그렇게 했는지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다.
사람들은 진실을 보기를 꺼려한다. 작은 것이라도 진실을 보게 되면 나의 모든 것이 드러나서 사회와 단절된다고 느낀다. 즉, 주관적으로 느낀다. 나의 삶을 바라보는 것, 나를 바라보는 것이 사회와 멀어진다고 느낀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바라본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바라보면 평생 다른 사람에게 나를 사랑해달라고 계속 외치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평생 나를 사랑해 주라고 외치면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타인이 될까? 내가 될까? 의문이 든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돌아보자. 내가 "엄마"라는 말을 할 때까지 약 1만 번의 단어를 스스로 연습했었다. 일어서기 위해 두 발에 힘을 줬던 시간, 걸어 다니기 위해 벽을 잡고 걸어 다녔던 시간, 주변에서 도와줬긴 했지만 내가 혼자 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스스로 해낸 것들이다.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부모와 나는 객체라고 한다. 부모와 나는 전혀 다른 존재라고 한다. 신이라는 절대자가 부모의 영혼, 나의 영혼을 다르게 부여했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렇다고 나는 나, 너는 너와 같은 입장을 고수하여 선을 그으라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 너는 너와 같은 인격체라는 것을 인지하고 서로 협력하여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내가 누구인지 살펴보고, 이해하여 부정적인 에너지를 사회에 발산하기보다는 내가 가진 자원을 이해하고 그것을 사회에 어떻게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칠지 생각을 해보면 고립되지 않고 연결될 미래가 희망차게 그려진다.
참고 자료
1) 미 보건당국 "외로움, 담배 하루 15개비만큼 해롭다" 경고 | 연합뉴스 (yna.co.kr)
2) 믿는 인간에 대하여(2022), 한동일 저. 흐름출판
3) 마태복음, 고린도전서
4) 리얼러브(2022), 그레그 베어 저, 러브잉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