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안에서 시작된 나의 기록
또다시 긴 통학을 하며 몇 번의 수업이 지나갔다. 그사이 내 마음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 변화는 교실 안보다, 오히려 교실 밖에서 더 또렷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3월 말, 교정에는 봄꽃이 하나둘 피어났다. 만개한 벚꽃과 산수유꽃이 교정 길을 따라 자리를 잡았다. 토요일 아침 수업을 앞두고 그 길을 걸을 때면, 겨우내 움츠러들어 있던 마음도 꽃을 따라 천천히 풀어지는 듯했다.
이전의 나는 학교를 도착해야 할 장소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 맞춰 서둘러 들어가야 하는 곳, 늦지 않기 위해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봄꽃이 핀 교정을 걷는 순간만큼은,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느려졌다. 멈춰 서서 꽃을 바라보기도 했고, 그 아래를 지나며 괜히 숨을 한 번 더 깊게 들이마시기도 했다.
지난 한 주 동안 회사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 뒤 교정에 몸을 들이자, 신기하게도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음의 무게가 눈에 띄게 가벼워졌다. 해야 할 일, 따라가야 할 속도, 비교의 시선들이 잠시 뒤로 물러나 있었다. 나는 그저 봄꽃이 핀 교정을 걷고 있었고,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교정으로 발길을 옮기는 동안 꼭 듣는 노래가 있다. 인순이의 ‘거위의 꿈’이다. 언제부터 이 노래를 듣기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꽤 오래되었다. 직장에서 조직 리더 생활을 할 때 꿈을 향해 구성원들과 함께 나아가자는 의미로 많이 들었던 곡이다. 이젠 그 노랫말의 의미가 조금 달라졌다. 조직에서 나 자신의 인생 꿈으로 방향이 수정되어야만 했다.
어렵게 선택한 MBA. 내가 이곳에서 배우고 있는 것은 교과서 속 지식만이 아니라 속도를 늦추는 법, 주변을 바라보는 법, 그리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두는 법이었다. 봄의 교정은 나에게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지금의 걸음도 괜찮고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이 길 위에 이미 봄은 와 있다고 말이다.
파주에서 수원까지 통학하는 길은 여전히 멀었다. 토요일 새벽 전철을 타고, 환승하고, 다시 버스를 탔다. 이동 경로는 일정했고, 시간표도 점점 몸에 익어갔다. 창밖 풍경만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뿐이었다. 몸은 이전보다 익숙해졌지만, 피로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늘 이동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부담으로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이 시간이 버겁고 아깝기만 했다. 수업을 마치고 다시 같은 길을 되돌아 올라갈 때면, ‘이걸 왜 시작했을까’라는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들곤 했다. 전철에 몸을 싣고 앉아 있으면, 오늘 하루가 통째로 빠져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업과 이동으로 채워진 날에는, 나를 위해 남겨진 시간이 거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전해 12월, 조직 개편 이후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던 시기에, 나는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가 읽을지, 어디까지 쓸지 아무 계획도 없이 그저 마음에 올라오는 생각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블로그를 열었고, 하루에 한 문단이라도 써보자는 마음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 시간은 이상하게도 나를 조금씩 가라앉혀 주었다.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생각이 흩어지지 않았고, 감정이 제자리를 찾는 느낌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그 글쓰기의 시간이 있었기에 MBA라는 선택까지 이어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MBA에 진학한 뒤, 통학길 전철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의 작은 자판 위에서 투박하게 움직이는 손가락. 메시지를 보내려던 것도, 뉴스를 보려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블로그 글쓰기 화면을 열고, 생각나는 문장을 그대로 적기 시작했다.
‘오늘 수업에서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문장은 여전히 다듬어지지 않았고, 맞춤법도 엉성했다. 앞뒤 맥락도 정리되지 않았고, 결론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라기보다, 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말에 가까웠다. 그런데 몇 줄을 적고 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생각들이 제자리를 찾는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 통학길의 성격이 조금씩 달라졌다. 전철에 타면 자연스럽게 블로그를 열었고, 수업에서 느낀 감정이나 이해되지 않았던 말들을 그대로 옮겼다. 그러다 시간이 남으면 이웃들의 글을 읽고, 공감되는 글에 댓글을 남겼다. 짧은 인사, 짧은 공감의 말들이 오갔다. 특별한 대화는 아니었지만, 그 소통이 나를 다시 사람들 속에 연결해 주고 있다는 감각을 주었다. 진눈깨비 맞으며 자책하던 그날 밤의 감정도 통학 전철 안에서 문장으로 옮기고 나니, 비로소 객관적인 거리감이 생겼다. 그렇게 통학길은 다시 나에게 익숙한 공간이 되었다.
아직은 ‘글쓰기’라고 부르기에는 조심스러웠다. 잘 쓰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완성도를 따질 생각도 없었다. 그저 생각을 흘려보내지 않기 위한 기록이었고, 감정을 방치하지 않기 위한 습관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기록들이 분명히 쌓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루의 생각이 문장으로 남아 있었고, 그 문장들이 나를 하루하루 붙잡아 주고 있었다.
통학길은 점점 ‘이동 시간’이 아니라 ‘글쓰기 시간’이 되었다. 전철의 흔들림, 옆자리 사람의 숨소리, 안내 방송이 뒤섞인 소음 속에서 나는 오히려 집중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나에게 역할을 요구하지 않았고, 성과를 묻지 않았다. 나는 어떤 직책도, 어떤 설명도 없이 그저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나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어떤 말에 유난히 예민해지는지, 어떤 장면에서 마음이 갑자기 가라앉는지. 글은 즉각적인 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질문을 분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도망치지 않고 나를 보게 했다.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파주에서 수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로 가고 있다.’
그 문장은 이후로도 여러 번 나를 붙잡아 주었다. 통학이 버겁고 몸이 지쳐갈 때마다 나는 조용히 이 문장을 되뇌었다. 이 길은 나를 소모시키는 길이 아니라, 나를 회복시키는 여정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붙들기 위해서였다. 파주에서 수원까지의 거리는 물리적으로는 여전히 멀었지만, 그 거리를 통과하는 나의 태도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시간을 억지로 견디지 않았다. 생각하고, 기록하고, 나를 정리하는 시간으로 그 거리를 충분히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휴대폰에 글을 차곡차곡 쌓아가던 어느 날, 이 기록들은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의 문을 열어주었다. 강원도의 낯선 장소에서, 이전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이 글을 쓰며 돌아보니, 그 무렵의 저는 어쩌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깊은 번아웃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통학길의 문장들이 저를 어떻게 일으켜 세웠는지, 그 구체적인 마음의 기록들을 아래 글에 함께 담아두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싶은 분들께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