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 흘린 눈물
버스는 이른 아침부터 강원도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점점 도시의 색을 잃고 있었고, 그 변화가 묘하게 마음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빌딩과 신호등이 사라지고, 나무와 언덕이 늘어날수록 생각의 속도도 함께 느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MBA 신입생 워크숍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잠시 일상에서 떨어진 공간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날 밤은 길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술자리였다. 서로의 얼굴이 조금씩 익숙해졌고, 웃음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수업에서 나누지 못했던 말들이 테이블 위로 흘러나왔다. 이야기는 학교생활에서 시작해 각자의 삶으로 이어졌다. 누군가는 회사를 떠난 이유를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불안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각자의 말에는 시간이 담겨 있었다.
대강당에 모여 신입생 환영 행사가 진행되었다. 사회자가 분위기를 띄웠고, 다양한 게임과 흥겨운 노래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낯선 동기들과 떠들썩한 분위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테이블 단위로 진행 게임 때문에 몇 번 무대에 올라가기도 했다. 잠시 나를 잊고 어색하지만 즐거운 분위기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었다. 하지만 시끄러움 속에서도 왠지 흥이 오르지 않았다. 그저 어색한 나만 존재하고 있었다.
술잔이 몇 번 오간 뒤, 나는 점점 말을 아끼게 되었다. 말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듣는 쪽이 더 편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 이야기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괜찮은 척, 이미 지나온 일처럼,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 자신에게조차 말을 아끼고 있었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와 불을 끄고 누웠을 때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제법 마신 술, 낯선 공간과 옆자리의 코 고는 소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루 종일 쌓인 말들이 머릿속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눈을 감으면 오히려 생각이 또렷해졌다. 나는 그저 숨을 고르며 뒤척이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1박 2일의 워크숍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수원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대부분은 피곤한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거나, 조용히 눈을 붙이고 있었다. 버스 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창밖 버스의 주행 소음이 전부였다. 정적이 흘렀다. 그 조용함이 나를 방심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어제 들었던 이야기들이 하나씩 떠올랐고, 그 위에 나 자신의 시간이 겹쳐졌다. 회사에서 조직개편 통보를 받던 날의 공기, 출근길의 무력감, 통학길의 전철 안에서 적어 내려가던 문장들. 장면들이 서로 엉키며 마음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나는 그동안 너무 오래, 나 자신을 붙잡고 있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텨야 한다는 생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이유로, 나는 계속 나를 뒤로 미뤄두고 있었다. 감정을 느낄 여유를 주지 않았고, 슬퍼할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 순간, 뺨에 흐르는 뜨거운 무언가를 직감했다. 눈물이 흘렀다. 참으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조용히 흘러내리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들킬까 봐 고개를 숙였지만, 그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이 감정을 다시 눌러버리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이 눈물은 갑작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오래 미뤄두었던 슬픔의 정산이었다. 나는 조직을 잃은 순간에도, 절망의 시간 속에서도 울지 않았다. 그저 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둔 채로 시간이 흘렀다. 다음 선택을 고민하며, 나를 계속 앞으로 밀어붙였다. 도피하듯 진학한 MBA에서도 괜찮다며 내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 그 대가는, 이렇게 조용한 순간에 찾아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 누구도 나를 보지 않는 자리에서, 감정은 더 이상 밀려나지 못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버스는 계속 달렸고, 나는 그 안에서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솔직해졌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괜찮은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많이 지쳐 있었다. 직책을 잃은 일도, 다시 학생이 된 일도, 멀리 통학하는 일도 모두 감당하고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은 계속 뒤로 밀려나 있었다. 그날의 눈물은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런 문장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나는 내 슬픔을 무심하게 방치해 왔다.’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나를 계속 뒤로 미뤄두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숨이 조금 편해졌다. 슬픔을 느낀다고 해서 약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나를 지키는 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버스가 수원에 가까워질 즈음, 나는 맑아진 마음으로 창밖을 다시 보았다. 풍경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었고, 일상은 곧 다시 시작될 것이었다. 해야 할 일도, 다녀야 할 수업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워크숍 이후의 나는 이전과 같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를 대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힘들다는 감정을 함부로 밀어내지 않았고, 괜찮지 않을 때는 괜찮지 않다고 인정하려 했다. 감정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먼저 머물게 두려고 했다. 그 작은 변화가 이후의 배움과 만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리가 되어 주었다. 나는 그제야 사람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울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버스 안에서 흘린 눈물은,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한 가장 조용한 시작이었다.
‘3월, 산수유가 만개한 봄은 왔지만, 내 마음의 봄은 언제쯤 올 것인가.’
이 글을 돌아보며 깨달은 것은 하나였습니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제 마음이 사실은 오래 지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시간은 조용히 쌓여 어느 순간 우리를 짓누르기도 합니다. 혹시 자신의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분들께 아래 글들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