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보다 중요한 삶의 리듬
MBA에 입학한 이후에도 나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회사에서의 자리도, 나라는 사람에 대한 기준도 분명하지 않은 상태였다. 앞으로는 가고 있었지만, 어디로 향하는지는 선명하지 않았다.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악부에 가입했다. 1년에 네 번 정도 산에 오르는 모임이었다.
사실 산은 나에게 전혀 새로운 공간이 아니었다. 2018년부터 직장 동료들과 산을 다니기 시작했고, 그 인연은 끊기지 않아 전국 100대 명산 중 44곳을 오르는 데까지 이어졌다. 크고 작은 산들을 다니며 산은 단순히 운동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만나는 장소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동안 산행이 멈췄다. 직장에서의 변화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잠시 산을 잊고 있었다. 마음이 닫히자, 산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답답한 마음을 열어보려 애쓸수록, 오히려 더 단단히 닫혀갔다. 그렇게 산은 내 일상에서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힘든 오르막에서 만나는 또 다른 나, 숨이 가쁠수록 더 또렷해지는 내 안의 목소리. 일상의 탈출구를 찾던 나였기에 산악부 가입은 망설임 없는 선택이었다.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이 아니라, 몸으로 답을 찾고 싶었다.
MBA 산악부의 첫 산행은 2024년 3월, 선자령이었다. 이후 인왕산, 덕숭산, 고군산군도, 민둥산, 소백산까지 산행은 이어졌다.
산행 참가마다 문제는 이동이었다. 파주에서 수원의 학교로 통학하던 나는, 매번 학교에서 출발하는 산행에 참여하려면 남들보다 훨씬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생각보다 먼 거리였고, 새벽 이동은 늘 쉽지 않았다. 산행이 있는 일요일이면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학교 인근 찜질방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토요일 저녁, 수원 학교 앞 찜질방에 들어서면 따스한 온기와 함께 묘한 허전함이 밀려왔다. ‘편안한 집을 두고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다음 날의 산행을 떠올리며 찜질방 한구석에서 조용히 잠을 청했다. 그것은 산행에 참석하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어렵게 시작한 MBA였기에 산악부 활동에도 진심을 다하고 싶었다. 그 약속은 단순히 학교를 졸업하겠다는 의지보다, 흔들리는 나를 다시 세우겠다는 간절한 다짐에 가까웠다.
산행이 있는 날이면 새벽 알람이 울리기 전부터 눈이 떠졌다. 몸이 먼저 약속을 기억하는 것 같았다. 준비물은 늘 단출했다. 등산화, 물, 간단한 간식. 챙길 것은 많지 않았지만, 마음은 늘 조금 복잡했다. 산에 오르는 일은 생각보다 솔직한 행위였다. 숨이 차면 숨이 찬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감출 수 없이 드러난다. 산은 나에게 늘 그렇게 정직했다.
산악부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격이 없이 웃고 떠드는 자리에서 나는 종종 한 박자 늦게 반응했고,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집이 학교에서 멀어 평일 모임이나 잦은 교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에 오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했기에 산행만큼은 빠지지 않으려 애썼다.
출발 지점에서 사람들은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각자의 배낭, 각자의 신발, 각자의 표정. 모두 비슷해 보이면서도 조금씩 달랐다.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속도를 냈다.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잡으려 애쓰고, 뒤처지지 않으려 호흡을 조절했다. 회사에서 늘 그래왔듯, 나는 무의식적으로 ‘뒤처지지 않는 사람’이 되려 하고 있었다. 남들 정도는 해야 안심이 되는 습관이 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가빠졌다. 다리는 무거워졌고, 호흡은 흐트러졌다. 예전 같았으면 이를 악물고 버텼을 것이다.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 스스로에게 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조금 달랐다. 나는 속도를 줄였고, 잠시 멈춰 섰다.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었을 때, 앞서가던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돌아와 말했다.
“천천히 가도 돼요. 같이 가는 거니까요.”
그 말에 억지로 끌어올리던 호흡이 툭하고 놓아졌다. 격려도 아니고, 위로도 아니었다. 그저 사실을 말하는 어조였다. 산에서는 속도가 곧 능력이 아니었다. 누가 먼저 정상에 오르느냐보다, 누가 끝까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했다. 그 단순한 원칙은 내가 살아온 방식과는 조금 달랐다.
그 이후 우리는 각자의 호흡에 맞춰 걸었다. 빠른 사람은 기다렸고, 느린 사람은 미안해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속도를 평가하는 기색도 없었다. 대화는 많지 않았지만, 침묵은 어색하지 않았다.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가 겹치며 하나의 리듬을 만들고 있었다.
중턱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물을 마셨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과 묵직해진 다리는 분명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한결 가벼웠다. 잘하고 있다는 평가도, 더 해야 한다는 압박도 없었다. 그저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는 감각이 조용히 몸에 스며들어 있었다.
산 정상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언제나 넓고 시원했다. 탁 트인 전망 앞에 서면, 그동안 짊어지고 있던 마음의 무게가 자연스럽게 내려앉았다. 누구와 함께 올랐는지도 의미 있었지만, 결국 그 자리에 두 발로 서 있는 ‘나’ 자신이 가장 또렷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의 충만함이 있었기에 매번 다시 산을 오를 수 있었다.
힘겨웠던 오르막의 시간들도 결국 그 감각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워지는 순간조차도, 나를 다시 느끼기 위한 통로처럼 다가왔다. 정상에 서 있는 그 짧은 순간, 몸과 마음이 다시 하나로 이어지며 안쪽 깊이 눌려 있던 것들이 조용히 풀려나가는 듯했다.
정상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다. 사진 몇 장을 남기고 바람을 잠시 느낀 뒤, 다시 내려갈 준비를 했다. 정상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지점에 가까웠다. 산행의 의미는 도착에 있지 않았다. 오르는 동안 내가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 과정 속에 있었다.
하산길에서 그동안 나는 늘 혼자 산을 오르듯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버티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감당하려 애써왔다. 그 방식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나를 지치게 했다는 것도 분명했다.
산악부 산행은 내 삶의 은유처럼 느껴졌다. 속도를 조절하는 법, 도움을 받아들이는 법, 뒤처지는 자신을 탓하지 않는 법. 그 모든 것을 말이 아니라 몸으로 배우고 있었다. 머리로 이해하는 배움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깨달음이었다. 등산화를 벗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지금의 속도도 괜찮다.’
하산을 마친 뒤에는 식사와 술자리가 이어졌다. 산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에게 주는 작은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땀을 흘린 뒤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면, 온몸에 남아 있던 피로가 씻은 듯 사라졌다. 각종 먹거리와 함께 나누는 술은 단순한 뒤풀이가 아니라, 함께 걸어온 시간에 대한 자연스러운 보상이었다. 누군가는 다음 산행을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일정을 확인하며 웃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조금 더 편해졌고, 조금 더 솔직해졌다. 산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오갔고, 그렇게 사람들과의 정이 조용히 쌓여 갔다. 지난번 수원의 어느 술집에서 이방인처럼 도망치듯 빠져나왔던 그날과 달리, 산 아래에서 나누는 막걸리 한 잔은 나를 비로소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 안전하게 안착시켜 주었다.
MBA 과정에서 느끼던 나이의 경계, 직장에서 애매해진 내 위치는 이곳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산행하면서 몸으로 깨달았다. 누군가의 직함도, 나이도, 현재의 상태도 산길 위에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같은 방향으로 걷고, 같은 숨을 쉬며, 같은 길을 오르고 있다는 사실만이 남았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소속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떤 설명도 필요 없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소속감이었다. 그렇게 MBA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닫혀 있던 내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산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산은 마음만으로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던 산행이었지만, 나에게 맞는 장비를 갖추는 일 또한 중요한 과정이 되었습니다. 작은 준비 하나가 걸음의 안정감을 크게 바꾸기도 했습니다. 등산을 하며 직접 활용했던 기본 장비들을 아래 글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처음 산을 준비하는 분들께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