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 속에 담긴 마음
MBA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새 1학기를 지나 2학기가 시작되었다. 그 시기의 나는 여전히 혼자 견디는 방식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새로운 과목들이 시간표에 올라왔고, 그중 하나가 비즈니스 코칭 수업이었다. 이름만 보면 낯설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갔다.
비즈니스 코칭 오프라인 수업을 신청했다. 이번 학기는 토요일이 아닌, 목요일 저녁이었다. 회사를 끝마치고 곧장 파주에서 수원으로 이동해야 했다. 비즈니스 코칭 수업은 팀 단위 활동으로 이어졌고, 네 사람이 한 조가 되었다. 팀명을 고민하다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
‘김나정황’
네 명의 성을 따서 팀 이름을 지었다. 장난처럼 붙인 이름이었지만,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삶이 하나로 묶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 외국계 기업 본부장, 경찰, 군인, 그리고 대기업 직장인인 나. 나이도 직업도 살아온 환경도, 각자의 세계는 분명 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서로 잘 끌렸다. 코칭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이었을까.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데 힘이 들지 않았고,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연결이 있었다. 찰떡궁합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팀 과제를 준비하며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게 되었고, 회의라는 명목으로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한 잔이었다. 과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이미 술잔은 비워졌다. 거나하게 취할 정도로 몇 번 장소를 옮겨 다니며 술자리는 깊어졌다. 그날 밤을 기점으로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시간이 흐른 어느 토요일 오후 늦게, 나는 다시 파주에서 수원으로 향했다. 세 시간 가까운 대중교통 이동은 여전히 길었다. 버스는 여전히 덜컹거렸고, 좌석은 여전히 애매하게 불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의 발걸음은 예전보다 덜 무거웠다. 몸은 흔들리고 있었지만 마음은 조금 가벼웠다.
내 수업은 없는 날이었다. 대신 저녁 술자리가 예정되어 있었다. 어쩌면 이 긴 이동의 진짜 목적은 공부가 아니라 ‘한잔’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이미 단톡방이 시끌시끌해졌다.
“오늘 뭐 먹을까요?”
누군가가 올린 짤막한 질문에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답을 남겼다.
“파주에서 수원까지 가니까… 드림이 먹고 싶네요.”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꿈을 먹고 사세요?”
“드림 말고 현실 좀 드세요. 하하”
순식간에 단톡방에 온기가 돌았다. 나는 버스 안에서 휴대폰을 보며 피식 웃었다. 혼자서 갑자기 웃는 조금 이상해 보이는 승객이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조금 낯간지러운 대화였지만 무슨 용기가 났는지 나도 모르게 ‘드림’이라고 답한 것이다. 조금 어색할 수 있었지만, 익살스럽게 받아 주는 사람들이 고마웠다.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농담들이 반가웠다.
아마도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 선을 넘은 사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도, 직장도, 배경도 잠시 내려놓고 서로를 편하게 놀릴 수 있는 정도의 거리.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진지한 대화보다는 이런 쓸데없는 농담에서 사람 사이의 거리가 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 앞에서 만나 곧장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과제 이야기는 잠시였고, 자연스럽게 술자리가 이어졌다. 옛날 통닭과 닭발, 또 술잔이 비워지기 시작했다. 토요일 저녁, 학교 앞 술집은 시끌벅적했다. 테이블마다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뒤섞여 있었지만, 우리 테이블만은 묘하게 차분했다. 처음에는 수업 이야기로 시작했다. 수업 내용, 과제의 난이도, 다음 주 일정.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고, 익숙하고 평범한 대화였다. 하지만 잔을 몇 번 비우자, 대화의 결이 조금씩 바뀌었다.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사실, 여기 오기까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 한마디가 문을 열었다. 그 뒤로는 각자의 이야기가 천천히 이어졌다. MBA에 온 이유,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쉽게 꺼내지 못했던 진심이 담겨 있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지내온 시간들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MBA에 왜 오게 되었는지, 지금은 어떤 상황인지 술잔을 넘어 조금씩 같은 공간으로 흘러나왔다.
누구도 상대를 재촉하지 않았고, 이야기를 정리하려 들지도 않았다. 서로의 이야기 속에 함께 빠져 들었다. 지난 시간의 내 얘기도 꺼냈다. 인생의 전환기에서 맞이하며 꼭꼭 숨겨두었던 극도로 혼란했던 감정의 발자취였다. 어렵게 선택했던 MBA는 나에게 배움 그 이상의 의미였다. 때로는 후회하기도 했고, 그 속에서 조용히 혼자 생각 정리를 하던 시간들. 어느새 나만 알던 감정의 파동을 사람들에게 이야기로 전하고 있었다.
그 자리는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나를 증명해야 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잘 살고 있다는 말도, 앞으로 잘될 거라는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구나.’
나이도, 경력도, 앞으로의 계획도 달랐다. 하지만 공통점은 분명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이유로든 마음속의 부족한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이곳에 와 있었다. 불안을 말하지 않아도, 상실을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가 알아보는 지점이 있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마치 서로에게 코칭을 하듯 대화는 이어졌다.
그날 우리는, 서로에게 서툰 코치였다. 그러나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따뜻한 코치 ‘김나정황’의 탄생이었다. 술자리가 깊어질수록 웃음도 함께 늘어났다. 무거운 이야기 뒤에 나오는 웃음은 가볍지 않았다. 그것은 현실을 모르는 웃음이 아니라, 현실을 알고도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의 웃음이었다. 나는 그 웃음 속에서 오랜만에 경직되었던 힘을 조금 내려놓았다.
시간이 꽤 흘렀고, 우리는 술자리를 정리했다. 밖으로 나오니 차가운 밤공기가 상기된 얼굴을 감쌌다.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질 시간이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라는 말이 그날은 유난히 진심처럼 들렸다.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서로의 삶에 따뜻한 응원의 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파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러 걸었다. 버스 정거장에 서서 전광판을 올려다보니 술기운으로 피로가 몰려왔다. 몸은 지쳐 있었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다. 장거리 이동과 술자리로 하루는 길었지만, 허무하지는 않았다. 무언가가 분명히 채워진 느낌이 있었다. 혼자 버티는 것이 강함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더 큰 힘이라는 것을 그날 나는 몸으로 알았다.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서 파주로 가는 마지막 전철로 갈아탔다. 전철 안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불빛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덜 외롭다고 달리는 전철 창 너머 풍경들이 내게 말해 주고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무게가 달라져 있었다. 그날 밤은, 술과 함께 인생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 시간이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을 지나 일요일 새벽이었다. 조용히 불을 켜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책상 앞에 잠시 앉아 하루를 돌아보다가, 문득 지난 3월의 워크숍 버스 안에서 흘렸던 눈물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혼자였고,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제법 커졌다.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그날 새벽, 나는 노트에 얼마 전 비즈니스 코칭 수업 시간에 울려 퍼졌던 노랫말을 적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익숙하게 알던 멜로디에 실린 그 노랫말은 거창한 깨달음은 아니었다. 그저 그날의 밤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이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고개 끄덕임, 함께 마신 술 한잔이 나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수원의 밤은 내 마음의 빗장을 열었고, 나는 이 여정에서 배움만큼 소중한 사람들을 얻었다. ‘김나정황’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진, 네 사람의 마음이었다.
사람은 대화를 통해서도 회복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상의 말이 아니라, 마음에서 올라오는 진솔한 대화는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어루만지고 있었습니다. 코칭 대화가 궁금하다면, 아래 글을 참조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