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던 나를 마주하던 날
몇 번의 수업이 지나자, 강의실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두가 비슷한 얼굴처럼 느껴졌다.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도 전에 수업이 흘러갔고, 나는 그저 내 자리에 앉아 따라가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리듬과 표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주 질문하는 사람, 조용히 메모에 집중하는 사람, 쉬는 시간마다 누군가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사람. 교실은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여러 삶이 잠시 겹친 공간처럼 보였다.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도 조금씩 늘어났다. 수업이 끝난 뒤 복도에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커피를 사러 가는 짧은 동선 안에서 인사들이 오갔다. 처음에는 형식적인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각자의 이야기가 조금씩 섞이기 시작했다.
“원래는 전혀 다른 일을 했어요.”
“회사 그만두고 방향을 바꿔보려고요.”
“이 나이에 다시 공부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해요.”
그들의 말은 놀랍도록 익숙했다.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비슷했다. 불안, 기대, 그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 나는 그제야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이유를 안고 이 자리에 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누구도 편안한 생각으로 온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의 현재 상황에서 위축되는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미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나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분명한 목표를 또렷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나를 재단하고 있었다. ‘나는 늦었다’, ‘나는 준비가 덜 됐다’, ‘나는 아직도 정리가 안 됐다’라는 생각들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이들보다 훨씬 더 오래, 훨씬 더 치열하게 살아왔을 텐데 말이다.
코칭 수업이라 대화 실습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짝을 지어서 대화가 오고 갔다. 첫 실습은 서로의 장점을 찾아 칭찬하는 연습이었다. 행동이나 말, 외모 그 어떤 것도 괜찮았다. 상대방의 장점과 좋은 점을 서로에게 칭찬하는 것이었다. 어색했다. 회사에서 논리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대화에만 익숙했던 탓인지 상대방의 칭찬거리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찾았다고 해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쑥스러웠다. 평소 이런 말을 해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목소리가 참 좋으시네요.”
“온화한 표정이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네요.”
어색한 칭찬을 하면서도 서로 웃으며 대화하고 있는 상황이 웃기기도 했다. 그런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빗장을 걸어 잠그고 지냈던 내 마음이 열리고 있었다. 나이로 어색했던 느낌도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사람들과 이런 마음의 대화를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수업의 대화 실습은 더욱 신선하게 느껴졌다. 상대방이 내게 건넨 칭찬의 말들이 어색하면서도 들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그 대화 속에서는 나이도 직업도 직책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사람만 있을 뿐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사람들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젊다는 이유로 부러워하거나,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위축되기보다는, 지금의 나와 상대에만 관심을 가졌다. 어떤 선택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무엇을 고민하다 이 자리에 앉게 되었는지를 자연스럽게 묻게 되었다. 그 관심은 비교가 아니라 존중으로 이어졌다. 수업이 끝난 어느 날,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 사람들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배우고 있구나.’
이곳은 나를 평가하는 공간이 아니라, 나를 비춰보는 거울 같은 곳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인지, 어떤 기준으로 살아왔는지를 조금씩 다시 알아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메모를 남겼다.
‘비교는 나를 작게 만들지만, 존중은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그 문장은 이후로도 여러 번 나를 붙잡아 주었다. 누군가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일 때마다, 나는 그 문장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내 속도로 숨을 고르곤 했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조금씩 몸에 스며들었다. 교실은 여전히 낯설었다. 하지만 더 이상 불편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곳에서 혼자가 아니었다. 각자의 시간에서 도착한 사람들이, 잠시 같은 교실에 머물고 있을 뿐이었다는 사실이 점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 깨달음은 나를 한결 가볍게 만들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개강 파티가 있던 날이었다. 토요일 새벽부터 집을 나와 강의를 듣고, 오후 늦게 학교 앞 술집에 모였다. MBA 전체 기수가 개강을 축하하며 단합을 도모하는 자리였다. 참석을 수없이 망설이다 어렵게 시작한 학교생활의 다양한 모임에 참석해 보자고 마음을 정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서 입구에 들어서자, 한 층을 통째로 대여한 술집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회사 단체 회식 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한자리에 모인 경험은 거의 없었다.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술잔을 부딪치며 각자의 인맥을 찾고 있었다. 마치 보물 찾기를 하는 듯한 풍경이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그런 사람들과 마주하며 조금은 마음의 위안을 받았다.
몇몇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신경을 곤두세우며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시간이 지나 술기운이 오르자, 실내는 점점 더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있었다.
어색한 시간 속 토요일 저녁, 파주에서 한참 떨어진 수원의 술집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불현듯 고립된 내가 보였다. 늘 하던 회사 회식이었다면 리더로서 사람들과 뒤섞여 나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상황은 변화했지만,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받은 아픔을 꼬깃꼬깃 접은 채로, 누군가에게 대접받고 지시하는 것에 익숙했던 세월이, 아무도 나를 알아봐 주지 않는 왁자지껄한 술자리에서 날카로운 소외감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사람들 앞에서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느끼는 나의 어색함이 단지 나이 때문만은 아니라, 닫혀 있던 내 마음 그 자체였다.
시계를 보니 저녁 여덟 시 반쯤이었다. 수원에서 다시 파주로 돌아가려면,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술자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개인 짐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굳이 인사를 건넬 대상도 떠오르지 않았다. 약간의 술기운을 안은 채, 그렇게 술집을 나섰다.
어둠이 내려앉은 수원 학교 앞 거리, 겨울의 끝자락인 3월 초의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거리에는 스산한 바람과 함께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을 향해 낯선 거리를 걸었다. 집에서 한참 떨어진 수원의 토요일 밤, 우산도 없이 진눈깨비를 맞으며 찬 바람을 막으려 옷깃을 세웠지만, 스며드는 추위는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혼자 거리를 뚜벅뚜벅 걷다 보니 자책감이 밀려왔다.
‘왜 나는 이 먼 곳에서, 이 시간에, 이런 낯선 거리를 걷고 있는 걸까. 회사에서 그 일만 없었더라면, 나는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텐데.’
그 순간, 회사에서의 직책 변화라는 뼈아픈 현실이 다시 뇌리를 할퀴고 지나갔다. 자책에 가까운 생각들이 밀려들며 기분은 급속히 가라앉았다. 잠시 방심한 틈을 비집고 현타가 나를 집어삼켜 버렸다. 이방인이란 말이 딱 지금 내 모습 같았다. 이런 상황에 놓인 나 자신이 싫어졌다. 그냥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포기해 버릴까 하는 후회가 물밀듯 밀려오자, 한순간 모든 감정이 뒤엉켜 버렸다. 버스와 전철. 세 번의 환승. 자정이 넘은 파주. 긴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나는 학교 입학한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다음 날, 파주의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흐렸던 어제와 달리 날이 맑게 개었다. 수원에서 있었던 개강 파티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느꼈던 깊은 상실감이 다시 떠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침이 되자 어제의 감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마치 깊은 악몽을 꾼 것처럼, 아련한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맑은 기분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또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이 변화가 나 자신도 낯설게 느껴졌다. 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는데, 오늘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진눈깨비 속 자책보다, 강의실에서 나눴던 그 서툰 칭찬의 온기가 내 안에 더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날씨가 맑게 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과 동시에 학교를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이 하룻밤 사이에 누그러졌으니 말이다.
이 또한 적응의 과정일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어제의 흔들림은 지독히도 아팠지만, 그 덕분에 나는 명함 뒤에 숨어 있던 나의 진짜 얼굴을 처음으로 똑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 흔들려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이 글에서 다 담지 못했던 마음과 감정의 이야기를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혹시 과거의 기억에 마음이 자주 붙잡히는 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