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업의 공기

낡은 전문성을 벗고 배움의 자리로

by 드림맥스


강의실 문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문손잡이를 잡고 있으면서도 바로 열지 못했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이었다. 웃음, 가벼운 대화, 빠른 말투. 이미 그 안에는 나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들을 들으며 잠깐 숨을 고르고 있었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학생의 2년이 시작된다는 사실이, 그날따라 무겁게 느껴졌다.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시선들이 잠시 나에게 모였다가 이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짧은 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누가 나를 노려보거나 평가하는 표정을 짓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시선을 ‘나를 보는 시선’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나는 빈자리를 찾으며 조용히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노트를 꺼내고 가방을 정리하는 그 모든 과정이 평소보다 더 신중해졌다. 어색한 공간에 왔다는 느낌 때문인지 불필요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했고, 움직임이 커 보이지 않도록 몸을 조금 움츠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 나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말투도, 옷차림도, 분위기도 달랐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부르고 웃고 있었다. 나는 나만 다른 시간대에서 이곳에 도착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가 가장 먼저 의식하고 있는 것은 수업 내용이 아니라, 내 나이와 존재감이었다. 나는 이미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내가 여기에서 얼마나 자연스러울 수 있는가를 계산하고 있었다.


첫 수업은 코칭 기본 스킬 강의였다. 코칭이란 어떤 것인지 처음 접해보는 시간이었다. 수업이 시작되었고, 잠깐 수업 개요 소개 뒤 자기소개 시간이 왔다. 한 명씩 돌아가며 이름과 배경을 말하는 단순한 순서였다. 그런데 그 시간이 왜 그렇게 부담스럽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앞사람들이 차례로 자신을 소개할수록, 내 차례는 점점 무거워졌다. 직장에서 사람들 앞에서 늘 말을 해 왔던 나였지만, 학생의 신분으로 강의실에서 하는 자기소개는 낯설었다.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저는 파주에서 왔습니다. ○○에서 근무하고 있고요, 나이는…”


그 말을 꺼내는 순간, 교실의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달라지는 것 같았다. 직장에서 위치 변화는 이곳에서도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나를 설명할 언어를 잃어버린 현실의 무게가 새삼 느껴졌다. 실제로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니고, 표정이 달라진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스스로를 더 크게 의식하고 있었다. 한마디 말할 때마다 내 목소리가 교실에 울리는 것 같았고, 그 울림이 괜히 과장되어 들렸다.


‘나는 여기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은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말은 끝까지 했지만, 마음은 반쯤 숨고 있었다. 나를 소개하고 있었지만, 괜히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처럼 동시에 나를 숨기고 있었다. 내 이야기가 길어지지 않도록 말을 빨리 정리했고, 더 묻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수업이 시작되자 교수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MBA 과정의 흐름, 수업 방식, 기대하는 태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했지만, 머릿속은 온전히 거기에 있지 않았다.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보다 여기 있는 어색한 나에 대해 더 마음을 쓰고 채우고 있었다. 내가 질문을 이해하고 있느냐보다, 내가 이 공간에 어울리느냐가 더 큰 문제처럼 느껴졌다.


쉬는 시간이 되자, 몇몇 동기들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의 회사, 전공, 관심사를 빠르게 교환했다. 나는 그 무리에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말을 걸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자리에 남아 물을 마셨다. 그 모습이 스스로 보기에도 조금 초라해 보였다. 혼자 있는 것이 편해서가 아니라,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몰라서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그때, 근처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파주에서 오셨다고 하셨죠? 와, 멀다. 오시기 쉽지 않겠네요.”


아주 사소한 질문이었다. 특별한 의미도, 깊은 의도도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한마디가 나를 조금 풀어주었다. 누군가가 나를 나이가 아니라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그 말에는 놀라움은 있었지만, 판단은 없었다. 그저 사실을 받아들이는 어조였다. 나는 그 순간, 이곳이 경쟁의 장이기 전에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누가 더 잘났는지를 가리는 자리가 아니라, 각자의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잠시 같은 방향으로 걷는 자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나이도 직책도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는 없었다. 그저 새롭게 만난 동기 원우일 뿐이었다.


그 짧은 대화 이후, 교실의 공기는 조금 달라졌다. 여전히 낯설었지만, 완전히 차갑지는 않았다. 어색함은 여전했지만, 그 어색함을 혼자만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나는 처음으로 숨을 조금 깊게 들이마실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을 나서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이렇게 나를 몰아붙이고 있을까.’


나는 ‘늦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먼저 나를 평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재단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떠오르자 마음 한편이 서늘해졌다. 내가 두려워하던 것은 타인의 시선이라기보다, 내 안에 있는 기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전철 안에서 나는 조용히 적었다.


어색함은 내가 틀렸다는 증거가 아니라, 내가 처음이라는 증거다.


그 문장을 적고 나니, 조금 편해졌다. 오늘의 나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도망치지도 않았다. 그 사실이 작지만 분명한 위로가 되었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한 번의 선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어색함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색함은 배제의 신호가 아니라 배움의 입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강의실에는 나처럼 서로 다른 시간에서 도착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누구나 각자의 이유로 이곳에 왔고, 각자의 속도로 적응하고 있었다. 같은 공간의 회사 사람들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의 직장인들이었다.

이전 08화명함 대신 가방을 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