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 대신 가방을 메고

낯선 설렘, 다시 배우는 사람이 되다

by 드림맥스


MBA 등록금을 결제하던 순간, 손이 잠시 멈췄다. 금액 때문만은 아니었다. 버튼 하나로 이 선택을 되돌릴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나는 천천히 결제를 눌렀다. 그 순간, 나는 나 자신과 작은 계약을 맺고 있었다. MBA에서 무엇을 배우겠다는 의지보다는 현실에서 혼란해진 나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이미 여기까지 와 있었다.


‘2년 동안, 도망치지 않겠다.’


운영 과목 안내를 다시 살펴보자, 배움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경영관리, 전략, 회계, 리더십, 생산운영관리, 창업, 코칭. 낯선 단어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평생 이공계의 언어로 살아왔던 내가 적응할 수 있을까. 예전처럼 빠르게 이해할 수 있을지, 젊은 동기들과 같은 속도로 따라갈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감보다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그런데 그 과목 목록 사이에서, 유독 시선이 오래 머무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코칭.’


처음에는 정확히 어떤 과목인지 잘 알지 못했다. 상담과 비슷한 것일까, 혹은 리더십의 또 다른 이름일까. 설명 문구를 읽어보며 자연스럽게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조직의 리더로 일하던 시절, 나는 늘 후배들의 성장을 돕고 싶어 했다. 더 잘 일하게 만들고 싶었고, 스스로 성장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는 잘 몰랐다. 그래서 늘 내가 알고 있는 방식대로 했다.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을 전해줬고, 방향을 제시했고, 때로는 답을 먼저 말해주었다. 그 방식이 도움이 될 때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내 생각을 전하는 데 더 익숙했지, 상대의 생각을 충분히 기다려주지는 못했던 것 같았다. ‘도와주고 싶다’라는 마음은 분명했지만, 그 마음을 다루는 방법은 체계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코칭이라는 과목은, 바로 그 지점에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 안에 이미 있는 힘을 끌어내는 방식. 누군가를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성장을 지원하는 태도에 대한 배움. 나는 문득 이 기회에야말로, 그동안 막연하게 품고만 있던 ‘사람을 돕는 방식’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을 잃은 사람이 사람의 성장을 돕는 일에 관심이 간다니 아이러니한 상황처럼 느껴졌다.


코칭 과목에 수강 신청을 했다. 자격이나 성과를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오래 묵혀두었던 질문을 마주해 보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웠다. 조직 안에서 리더로서 해왔던 역할을, 이제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고 싶었다. 어쩌면 아직은 조직에서 실패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면의 목소리였는지도 모른다.


그 불안은 이전의 막막함과는 달랐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멈춰 있었을 때의 불안이 아니라,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의 불안처럼 느껴졌다. 방향이 정해진 상태에서 감당해야 할 부담이라는 점에서, 그 불안은 오히려 현실적인 변화를 자극했다.


입학 안내 문자를 다시 읽으며, 나는 캘린더를 열었다. 이제 나는 직장인이자 학생이 되었다. ‘학생’이라는 단어가 다시 나에게 붙어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지만, 이상하게 숨이 트이는 느낌을 주었다.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해도 되는 사람. 아직 모른다고 말해도 괜찮은 사람. 지금의 나에게는 바로 그런 위치가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불안이 남아 있었다.


‘너무 늦은 나이에 괜히 무리하는 건 아닐까.’


그 질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나를 멈추게 하지는 않았다. 그 질문들은 나를 겁주기보다,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조심스러움은 도망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오히려 선택을 더 단단하게 붙잡게 하는 감정에 가까웠다. 그날 밤, 나는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아직 첫 수업도 시작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배운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이미 한 줄을 적고 있었다.


‘나는 다시 배우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 문장은 다짐이기도 했고, 선언이기도 했다. 나는 나이를 핑계로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 지금 시작하는 것이 가장 빠른 시작일 수 있다는 생각을, 그날 처음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날의 마지막 생각은 이 문장이었다.


‘늦었다는 생각보다, 늦게라도 시작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2024년 2월 17일 토요일. 어렵게 결정한 MBA 입학식이 있었다. 조금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졸업식과 입학식이 같이 열리는 날이다. 교정에는 많은 졸업생과 가족들이 서로 축하해 주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언젠가는 내게도 저런 날이 오겠지.’


시작도 하기 전에 졸업을 떠올리는 어색한 나를 뒤로하고, 대강당으로 들어섰다. 회사 대강당이 아닌, 낯선 공간. 한창 준비 중인 마이크 잡음 소리, 푹신한 대강당 의자에 앉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입학식이 진행되었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뒤이어 진행되었다. 넓은 강당의 한 좌석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이 낯설고 어색하기도 했다. 나는 왜 지금 이 자리에 와서 앉아 있는가. 하지만, 이내 내가 여기 온 이유가 선명히 떠올랐다.


첫 수업이 있던 일주일 뒤 토요일 아침, 나는 새벽 5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시각이었고, 새벽 공기는 차분하고 시원했다. 파주에서 수원까지 대중교통 통학을 결정한 뒤, 첫 등교의 아침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강의실 문을 열었고, 그곳의 공기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낯설었다. 수십 년 만에 느껴보는 팽팽한 긴장감과 어색함이 강의실을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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