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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맘 Jul 06. 2017

영국에서 엄마로 살아보기 #2

내 인생의 전환점

누구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부모가 된 것이었다.


운이 좋은 것인지, 어려서부터 몇몇 다른 나라에서 살아 볼 기회도 있었고 여행도 많이 다니며 백두산 천지를 비롯해 네팔의 안나푸르나부터 몽골의 초원, 핀란드의 산타마을부터 뉴질랜드 최남단까지, 그리고 태평양을 가로질러 지중해, 대서양 바닷가 등 수 많은 곳을 거침없이 다녔던 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고 욕심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해 보아야 했다. 그래서 여러 종류의 자원봉사도 해 보고 외국과 한국에서 서너 번의 직장생활을 거쳐 마침내는 비교적 안정된 직장에도 몸을 담고 있었다. 나의 이십대 시절을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수많은 경험을 했던 덕에 웬만한 것에는 크게 요동치 않는 “내공”이 있다고 스스로 자부했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도 원래 이렇게 자유로운 삶을 살던 나에게 평생 함께 할 가장 좋은 친구가 생겼다는 것 외에는 인생에 있어서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며 미래를 꿈꾸며 살았다. 항상 그랬듯이.


자유로웠던 시절, 인도네시아의 어느 섬에서


그런데 이런 나에게 인생의 가장 큰 변수가 생겼다. 바로 ‘부모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27개월 차이나는 두 아들들을 키우며 고군분투하고 있던 와중에, 남편이 뜻이 있어 유학을 결심하였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둘째 아이, 그래서 그냥 안고 가기는 너무 무겁고 그렇다고 걷게만 할 수도 없는, 장거리 여행을 하기엔 정말 힘든 체구가 되어 버린 아이를 데리고, 아이들과 짐에 파뭍혀 영국으로 가는 여정은 길기만 했다. 기나긴 여정 속에, 한국에서는 아이들을 키우는데 양가 부모님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이제 영국으로 가면 나 혼자서 감당해야 할텐데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도 되었다. 또 한국에서는 직장에 다니느라 아이를 돌이 지나자마자부터 어린이집에 맡기고 나는 내 할 일을 하며 살았었는데, 만 3살이 지나서야 공보육 시설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영국에서 둘째는 보육 시설에 맡길 조건조차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내가 하루 종일 돌보아주어야 한다.


한국에서 나는.. 워킹맘이었고, 아이를 낳긴 낳았지만, 어떻게 아이를 제대로 돌보아야하는지, 잘 몰랐던 것 같은데. 이제 모두 내가 감당해야 해야 할 일이 되고 만 것이다. 영국이라는 새로운 터전에서 아이들을 키우는데 도움을 받을 길이 전혀 없이 ‘독박육아’를 해야 한다는 것에 앞이 캄캄했지만,


‘그래, 어떻게든 해 보자. 다들 하는데 나라고 못 할 건 또 뭐 있겠어.’

라며 부딪혀보기로 했다.


‘영하 20도의 날씨에 백두산도 등반 해 봤는데, 뭔들 뭘 못하겠어?’


라는 어줍잖은 깡이, 내게는 어느 정도 있었다.


그래.. 살면서 여행을 많이 하는 것은 좋은 것 같다.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그 때 그 일만큼 힘들겠어? 라고 비추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경험이 생긴다.

그리고 담대해 진다.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이렇게 걱정 반, 담대함 반으로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켜있었다.

그러나 영국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나에게 육아의 또 다른 돌파구를 마련 해 줄지 누가 알았을까?


by dreaming m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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