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 - 아이와의 약속
약간은 덥게도 느껴지는 늦은 봄이었다.
여느 날처럼 아침에 큰 아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있었다.
큰 아이가 돌 갓 지나고 나서부터 내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하게 되어 아이는 비교적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첫 아이라 어린이집 맡길 때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어 보육 시설을 여간 깐깐히 고른 것이 아니었다. 직장 내 어린이집도 대기 신청 했다가 순번이 되었지만, 자가용으로 다녀도 통근 거리가 한 시간 정도 걸려서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보내기로 했고, 다행히 우리 아파트 바로 옆 동에 그 때 막 새로 생긴 가정형 어린이집이 있어서 찾아가 보았다. 선생님들 두 분이 아이들 둘을 보고 계시는데 어찌나 친절하고 잘 해 주시던지. 그 뒤로 다른 곳을 가 보아도 그만큼 마음에 들어오는 곳이 없었다.
시설을 떠나, 선생님들의 마음이 나를 사로잡았다. 27개월 차이가 나는 둘 째 아이가 태어난 이후까지도 1년 반 정도를 그 곳에 다니며 엄마를 대신한 선생님들 손에서 아이가 몸도, 마음도 자랐다.
큰 아이는 지금도 두 돌 때 일을 정말 기억 하고, 알고 하는 이야기인지,
‘그 때 엄마가 늦게 와서 엄마 올 때 까지 경태랑 예빈이랑 기다렸어’
라는 이야기를 가끔 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워킹맘으로 있으면서 하루 중 아이와 함께 했던 시간은 퇴근 후 고작 2시간 정도가 다였다는 생각에, 코끝이 찡해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엄마인 나를 대신하여 나의 아이를 키워준 그 곳은 매우 고마운 곳이었다.
만 2세가 지나자 정든 영유아 전담 어린이집을 떠나야 했고, 다행히 운 좋게도 이곳 구립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또 1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에 낯선 곳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고, 아직 말도 서툴러서 친구와 다투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집에 와서 밤에 재울 때 “엄마, 친구가 나 밀었어.” 라고 울먹울먹하며 말하기도 했지만, 가정형 어린이집 보다 널찍널찍한 공간에서 안전하게 잘 자라고 있었고, 5살이 된 이제는 말도 청산유수로 하며, 단짝 친구도 제법 사귀고 마치 제 집인 듯 텃세도 부리며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매일매일 반복되던 똑같은 일상이 이제 오늘이 끝이라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이제는 더 이상 이렇게 아들 손을 잡고 이 골목길을 내려가 저 끝의 어린이집에 가는 날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하기도 하다.
따뜻한 봄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이 더욱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아이에게는 마음의 준비를 시키기 위해 며칠 전부터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지만, 아직 만 네 돌도 안 된 아이가 지금 이 상황을 얼마나 이해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자, 들어가 봐. 오늘이 어린이집 가는 마지막 날이야. 현우가 오늘 마지막 날이라고 케이크도 있고 선생님이랑 친구들이 파티도 해 줄거야. 좋지?”
그렇게 말 해 주니 더더욱 신나서 어린이집 정문으로 뛰어들어가며 초인종을 누르고 이내 아이의 모습은 사라지고 만다.
나는 한 동안 그 곳에 서 있었다.
작년 3월, 이 곳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 초인종이 닿지 않았었는데, 이제 어느덧 저렇게 커서 완연한 어린이 모습으로 자랐구나, 하는 생각과, 어쩌면 이제는 보지 못 할 이 모습을 마음 한 켠에 놓인 나만의 액자에 고이고이 간직하고 싶었다.
“현우야, 엄마는 15살 때 처음으로 해외 생활을 시작했는데도 쉽지 않았는데, 너는 엄마보다 10년이나 일찍, 5살에 벌써 해외 생활을 하는구나. 서툴러도 다그치지 않을께. 약속해.”
이미 현우는 어린이집에 뛰어 들어가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었지만, 현우가 없는 그 자리를 그렇게 바라보며 혼자서 현우에게 말했다.
by dreaming m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