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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형원 Apr 16. 2022

나이키 운동화

2030 성장 에세이


  초등학교 때까지 아동 운동화를 신었었다. 건담, 그랑죠 같은 만화 로봇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신발이었다. 시장에서 많이 팔았었는데, 당시 초딩들에게는 핫한 아이템이었다. 신발이 해지면 다른 캐릭터의 신발을 다시 사곤 했다. 그런데 중학교에 진학하니, 멋지다 하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친구들의 나이키 운동화가 너무나도 멋져 보였다. 특히 그 당시 중고등학교를 휩쓸었던 나이키 에어맥스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느 등굣길에 집 근처 신발가게를 지나가는데, 쇼윈도 안에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운동화를 영접했다. 백설기처럼 새하얀 바탕 위에, 하늘색 나이키 로고가 자길 잡아보라는 듯이 섹시하게 그려져 있었다. 가격은 13만 원. 가게를 지나갈 때마다 그 녀석을 바라보았다. 쇼윈도 앞에 한참을 서 있던 적도 있다. 엄마에게는 그 운동화가 갖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 당시 내가 신던 운동화가 3~4만 원이었는데, 4배나 비싼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늘 절약을 입에 달고 사는 엄마를 설득하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 대신, 아버지를 공략했다. 어느 일요일, 목욕탕에서 아버지의 등을 자진해서 밀어드렸다. 원래는 팔이 아파 대충 밀어드렸었는데, 그날만큼은 아버지 등이 벌게지도록 밀어드렸다. 그러고는 새 운동화를 사고 싶다고 넌지시 말씀드렸다. 목욕을 마치고 아버지와 함께 신발가게에 갔다. 중학생이 무슨 10만원이 넘는 신발을 신냐며 아버지도 놀라셨지만, 결국 내 품에는 그 운동화가 안겨 있었다.


  꿈만 같았다. 그날 저녁, 집에서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거울을 수도 없이 쳐다보았다. 품에 꼭 안아 보기도 했고, 냄새를 맡아 보기도 했다. 몸이 작아질 수만 있다면, 그 푹신푹신한 운동화 에어 위에 드러눕고 싶었다. 혹시나 짝퉁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인터넷으로 조사를 하느라 밤잠도 설쳤다. 다음 날부터 학교에 자랑스럽게 신고 갔고, 2년 동안 주구장창 신었다. 그저 그 운동화만 신으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축구화가 있었는데도, 공을 찰 때마저 그 운동화를 신고 뛰었다. 가죽이 다 뜯어지고 에어가 터져버릴 때까지 신었다. 그리고 더는 신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마음을 다해 의류수거함으로 고이 보내주었다. 나이키 운동화는 순수한 애착의 대상이었다.




  무엇인가에 애착을 가진다는 것. 서른을 넘으며 애착을 가져봤던 사물이 있을까? 그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물건 말이다. 첫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지 20여 년이 흘렀고,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스니커즈 몇 켤레쯤은 가볍게 살 수 있다. 옷장을 열면 고가의 청바지가 몇 벌 있고, 신발장 안에는 고급 신발이 몇 켤레 있다. 최신형 스마트폰과 블루투스 이어폰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그 시절 나이키 운동화처럼 애착이 가는 물건은 없다. 어쩌면 그것들을 너무 쉽게 살 수 있게 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시절에는 운동화 하나를 사기까지 많은 과정과 노력이 있었다. 쇼윈도 안에 있는 그 운동화가 없어졌을까 마음 졸였고, 가게 앞을 수십번 왔다 갔다 했다. 부모님을 언제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나름의 계획도 세웠었다. 아버지 구두를 자진해서 닦았고, 목욕탕에서 아버지 등이 벌게지도록 온 힘을 다해 밀어드렸다. 많은 노력 끝에 얻은 신발이었으니, 그만큼 더 애착이 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웬만한 운동화쯤은 여유롭게 구매할 수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 터치 몇 번이면 금세 내 방에 실물로 도착한다. 그러다 보니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들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최근 나의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누군가를 만날 때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게 되었다. 바쁜 와중에 사람에게까지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다툼이 생겼을 때 일어나는 감정 소모도 지겨웠다. ‘굳이 이 친구가 아니더라도, 나는 만날 사람이 많아. 뭐 때문에 내가 상처받아야 하지?’ 구매한 신발이 마음에 안 들면 당근마켓에 올리고, 새운동화를 로켓배송으로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보니 비싼 스니커즈는 늘어가는데, 내 발에 꼭 맞는 나이키 운동화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저 옆에만 있어도 행복함을 느꼈던 친구들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인연이 아니라는 핑계로, 인간관계를 너무 쉽게 생각해왔는지 모른다. 다시금 나의 첫 나이키 운동화를 떠올려본다. 그 푹신푹신한 에어 위에 발을 얹기까지의 노력을, 그리고 그만큼 많이 행복했던 기억을.


https://www.youtube.com/watch?v=i-XwbvBhoDw&list=PP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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