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성장 에세이
셰익스피어는 이야기했다.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사람은 배우이다.” 고로 “인생은 연극이다”라고. 연극에는 장과 막이 있다. 모든 극은 장과 막을 거치며 점점 고조되다가 클라이맥스를 맞이한다. 그리고 마지막 대단원에서 갈등과 사건이 해결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시작된 공연은 멈추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는 우리의 삶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든다. 연극은 그저 허구일 뿐인데, 과연 셰익스피어가 옳았다 말할 수 있을까?
20살, 연극영화과에서 학생연극을 할 때였다. 운이 좋게도, 4학년 선배들의 졸업공연을 같이 할 기회가 주어졌다. 코미디극의 1인 4역 멀티맨 역할이었는데, 선배들이 오디션 때 나의 발랄함을 좋게 봐주어 캐스팅되었다. 처음으로 대학로 소극장에서 완전한 무대에 서 본 경험이었다. 설레는 마음에, 밤낮 가리지 않고 선배들과 함께 열심히 연습했다. 제일 먼저 연습실 문을 열었고, 연습이 끝나면 늘 내가 불을 껐다. 의상이며 소품도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공수해 왔다. 특히 1인 4역인 만큼 극 중간마다 들어가는 장면이 많아, 동료 배우와 대사의 합을 맞추는 데 공을 들였다.
드디어 첫 공연 날이 되었다. 선배 중에 독실한 크리스천이 있었는데, 덕분에 교회 사람들이 아주 많이 와서 객석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렇게 연습을 많이 해 왔음에도, 첫 공연에 객석도 만석이라 계속 긴장이 되었다. 극 중간쯤, 동료 배우가 내 긴장감을 풀어주고자 애드립 대사를 쳤다. 애드립을 아주 찰지게 잘 쳐서, 관객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나도 한결 긴장감이 풀어졌다. 그런데 다음 대사를 하려는 순간, “……”
머리가 백지장이 되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으니, 대사가 입 밖으로 나올 리 없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식은 땀이 흐르고 몸에서 소름이 끼쳤다. 1분 정도의 정적이 정말 1시간처럼 느껴졌다. 상대 배우는 내 상태를 알아채고, 계속 혼자 애드립을 치며 극을 힘겹게 이끌어 나갔다. 코미디극이 정말 코미디처럼 되려는 그 순간, 나는 겨우겨우 대사를 내뱉었고 공연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 대사는 더 나중에 나와야 했다. 나는 대본 한 페이지 반 정도의 분량을 뛰어넘어 버렸다.
무대 조명이 탕- 켜지며 시작된 연극은, 절대 도중에 멈출 수 없다. 독백 도중에 조명이 나가버려도, 울고 있는데 갑자기 신나는 음향이 켜져도, 혹은 나처럼 배우가 대사를 까먹어 버린다 해도, 공연은 멈추지 않는다. 시작된 연극은 장과 막을 거쳐, 마지막 대단원까지 어떻게든 이어진다. 셰익스피어가 옳았다면, 삶의 한복판에서 대사를 까먹어도 우리는 계속 나아가는 것일까? 아니, 나아가지는 것일까?
25살, 첫사랑과 이별했다. 그전에도 만났던 사람이 있었지만, 처음으로 내 마음을 온전히 다 주었던 사람이었기에 첫사랑이라 부른다. 그리고 처음으로 부모 아닌 누군가가 날 사랑한다는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이었다. 그랬던 사람에게 큰 배신을 당했었다. ‘다른 남자가 있었다’와 비슷한 맥락을 겪었다. 그리고 내가 정성스레 쓴 편지가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읽히고 있었다. 그녀와 이별하고 2주일을 내리 울었다. 방에 틀어박혀 울고, 버스 타고 가다가 울고, 친구랑 전화하다가 울고, 술 마시다 울고, 술 깨고 울고, 하도 울다가 과호흡으로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응급실에 실려 갔었다. 그러고 응급실 침대에 누워 또 울었다.
거지같이 울다가 문득 내 첫 공연이 생각 났다. 대사를 잊어버려 모든게 정지해버렸던 순간. 공연은 이어져야 하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찰나이자 영원했던 그 순간. 그러더니 셰익스피어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인생은 연극이다. 연극처럼 삶도 이어질 것이다. 시작된 연극은 도중에 결코 멈추지 않는다. 끝까지 간다. 나는 그때처럼 절망의 무대를 뛰쳐나오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다가온 삶의 막을 온 힘을 다해 버텨내기로 했다. 아침이면 미친듯이 런닝을 하고, 술을 마시지 않으려 노력했고, 혼자 있으면 자꾸 우울해져서 어떻게든 사람들을 만나려고 했다. 괜히 토익 시험을 접수해서 뭔가에 집중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이 또한 지나갔다. 모든 일이 그런 것처럼, 시간이 지나며 무뎌져갔다.
그녀의 휴대폰 번호가 머릿 속에서 흐릿해져 갈 즈음, 뭔가가 내 가슴을 탕- 쳤다. 그 전에는 몰랐던 것이다. 사랑 때문에 사람이 이렇게 아플 수도 있다는 것을. 더듬어보면, 나는 그동안 진지한 것들을 회피해 왔었다. 늘 좋은 게 좋은 거라 여겨 왔고, 상황이 심각해지면 웃음으로 넘기려고만 했었다. 친구들이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눈물을 흘리거나,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마음을 열지 못할 때, 공감해주지 못했다. 어찌 보면, 내가 그동안 살면서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준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스물 다섯의 한 장면을 나는 편집할 수 없었지만, 그 막을 지나며 가슴 속에 무언가를 담을 수 있었다. 진심으로 아파했기에, 다른 사람도 사랑 때문에 아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 때문에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든 장막을 지나갈 때, 진심으로 위로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옳았다. 인생은 연극이다. 이 장은 어떻게든 지나가고, 다음 막이 펼쳐진다. 거센 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려도,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무기력해져도, 주위의 모든 게 정지해 버린다 해도, 인생은 계속된다. 그리고 대사를 까먹은 삶의 막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성숙한다. 어찌 보면 그 식은 땀이 흐르고 온 몸에 소름이 끼치는 1분이, 바로 인생의 진정한 클라이맥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