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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형원 May 15. 2022

딸기 맛 빈츠

2030 성장 에세이


  최근 식품계에 끔찍한 혼종들이 나타나고 있다. 파 맛 첵스, 매운맛 스니커즈 초코바, 빠삐코 맛 처음처럼. 결코 인정할 수 없는 것들이다. 첵스는 당연히 초코 맛이어야 하고, 스니커즈는 꾸덕꾸덕 달달해야 한다. 게다가 소주에서 빠삐코 맛이 난다고? 술 마시고 난 후에 아이스크림이 당기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다. 주위에서 도전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은근히 이런 것들이 맛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인정할 수 없다. 뭐니 뭐니 해도 음식은 오리지널이 제일이다. 특히 과자는 오리지널 맛에 충성한다. 포카칩 파란색, 도도한 나쵸 치즈 맛, 몽쉘 카카오 맛. 어릴 적부터 먹어왔던 것들이라 입에 착 감긴다.




  업무를 보다가 출출할 때, 회사 탕비실에서 과자를 꺼내어 먹는다. 내가 먹는 과자들은 정해져 있다. 참크래커, 몽쉘, 오예스 등. 당연히 오리지널 맛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가 탕비실에 이상한 맛의 과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딸기 맛 빈츠, 메론 맛 몽쉘, 쿠앤크 맛 오예스 등등. 난생처음 보는 과자들. 탕비실을 담당하는 동료가 자꾸만 새로운 것들을 사 오는 것이다. 사무실 사람들은 맛있다며 새로운 맛의 과자들을 먹고 있었다. 나는 감히 도전하고 싶지 않았고, 내 입에 길들여 있는 맛들만 고수했다. 구석에 처박혀 있는 익숙한 과자들만 하나둘 빼 왔다.


  어느 날, 야근을 하다가 배가 고파 탕비실에 들어갔다. 과자 보관함 문을 열었는데, 내가 즐겨 먹던 것들이 하나도 없는 게 아닌가! 그 대신에, 분홍색 초록색 노란색 온갖 새로운 맛의 과자들만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회사 밖으로 나가 내게 익숙한 과자를 사 오기도 귀찮았고, 시장기만 조금 없애고 얼른 업무를 마쳐 퇴근하고 싶었다. 조심스레 새로운 것들을 훑어보았고, 그나마 딸기 맛 빈츠가 가장 나을 것 같아 하나를 집었다. 자리로 돌아와 과자봉지를 뜯었다. 분명히 빈츠는 짙은 갈색의 먹음직스러운 초콜릿으로 둘러싸여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분홍색의 화학물질이 대신하고 있었다. 눈을 찍- 감고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음. 확실히 딸기 맛이 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과자 베이스의 식감도 나쁘진 않아… 음? 뭐야 맛있잖아!’ 충격적이었다. 분홍색의 빈츠가 맛있다니. 그날 저녁, 탕비실의 딸기 맛 빈츠가 몇 개 사라졌다.




  얼마 전, 홍대 인디 롹밴드 공연을 보러 갔었다. 공연 전에 인스타그램을 통해 ‘내가 살아있다고 느낄 때’의 사연을 적어 응모하는 행사를 했었다. 나는 정확히 내가 언제 살아있다고 느끼는지 몰라 따로 응모는 못 했다. 공연 중간에 몇 개의 사연을 밴드 보컬이 낭독해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퇴근 후에 잔잔한 석촌호수에서 산책할 때’ 등 사람들이 살아있음을 느낄 때는 다양했다. 그리고 밴드 보컬은 그때처럼 공연을 할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말하며, 촉촉해진 눈으로 환하게 웃었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에게도 몇 가지가 떠올랐다. 시공간을 잊은 채 어떤 일에 몰입할 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술 한잔 기울일 때. 하지만 뭔가 ‘살아있음’의 영역에 딱 들어 맞진 않았다. 그렇게 계속 머릿속에서 ‘살아있음’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지내던 중, 탕비실의 분홍색 빈츠를 다시 마주쳤다. 그리곤 자각했다. 나는 도전할 때 살아있음을 느껴왔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도전이라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왔다. 집 회사 집 회사의 기계같은 일상 속에서,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게 상책이라 생각했다. 한 달간의 노동과 그로부터 오는 입금에 기대어, 안정이 최고라는 자기최면 속에서 현실에 안주해 왔다. 새로운 취미나 자기계발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고, 주말에는 알코올로 정신을 잠재우고 침대 속에서 몸을 썩히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새 나는 새로운 과자마저도 선뜻 뜯어보지 못하는 겁쟁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도전해야 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래야 살아있음을 느낌을.


  최근에 몇 가지 도전을 하고 있다. 브런치에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으며, 직장인밴드에서 보컬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것들이다. 아직 도전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통기타 배우기, 스페인 순례자의 길 걷기, 스쿠터 타고 시베리아 횡단하기. 현실에 안주해 그저 되는 대로 살아가기에는 내 서른셋의 젊음이 너무도 아깝다. 아직 딸린 식구도 없는데 말이다. 딸기 맛 빈츠에 이어, 빠삐코 맛 처음처럼도 조만간에 도전해 보려 한다. 그런데 안주는 뭘 먹어야 할까?


밴드 아디오스오디오 - 리더 마호님 (보컬&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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