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성장 에세이
<The man in the high castle>. 얼마 전, 시즌1을 정주행한 미드이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역사 픽션물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패망했다면?’을 키워드로 극이 진행된다. 배경은 1962년. 나치독일이 미국의 동부를 지배하고, 일제가 서부를 지배하고 있다.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미국의 레지스탕스들, 그리고 그들을 잡으려는 나치친위대와 일제경찰 간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덕분에 식음을 전폐하고 하루 만에 시즌 1을 정주행하고 말았다.
사실 이 작품을 더욱 재밌게 본 이유는, ‘가정(假定)’이라는 것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만약에, 만일, 혹시 이랬다면…?’하고 가정해 보는 것은 늘 나의 관심을 끈다. 일제가 패망하지 않고 조선을 계속 식민 지배했다면? 6.25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이 실패했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당하지 않았다면? 억압의 근대사를 겪어온 민족이라 그런지, 가정할 수 있는 시점들이 많다.
이런 가정 추구형의 성향은, 거대한 인류사뿐 아니라 내 개인사에도 고스란히 담겨 왔다. 내가 계속 예술 공부를 했더라면? 떠나가는 전 여자친구를 한 번 더 붙잡았다면? 전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그리곤 행복회로를 돌린다. ‘연극무대에서 조금 고생하다가, 영화판에 발을 들여 나이 마흔 전에는 청룡영화제에서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을지 몰라’. 혹은 ‘그녀와 화해하고 열렬히 연애했겠지. 지금쯤 운명적인 그녀의 손을 잡고 카펫 위를 걷고 있을지 몰라’. 또는 ‘나름 고연봉의 직장이었으니, 지금까지 계속 다녔다면 통장에 억은 찍혀 있겠지. 지금쯤 벤츠를 타고 있을지 몰라.’
이 가정의 세계는 날 들뜨게 만든다. 눈앞에 보이는 단편적인 양상들만이 삶의 전부가 된다면, 세상은 단조롭고 팍팍할 테니까. 이렇게 즐거운 상상으로 한번 행복회로를 돌리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 인가 바꿀 수 없었던 과거를 향해 가정을 하고, 자꾸만 오지도 않은 미래를 갈구하고 있었다.
전 직장은 고연봉 업계에 속했다. 하지만 그만큼 업무강도가 높았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11시에 퇴근하곤 했었다. 그 당시 나는 종종 가정을 하곤 했다. 비슷한 연봉 수준에 워라밸까지 괜찮은 회사가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그렇게 가정을 해버리니 주위 사람들도 그런 직장에 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첫 직장을 퇴사했다. 그리고 내가 과거에 가정했던 그런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어떠한 회사에도 들어가기가 힘들었다. 엄청난 취업난을 다시 겪었다.
이직을 했다. 월급이 현저히 낮아졌다. 업무는 주먹구구식의 쌩 영업이었고, 중소기업 특성상 체계적인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구직 앱을 켜고 채용공고를 뒤적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또다시 나에게 딱 맞는 회사가 있을 것이란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몽상가가 되어 있었다. 현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평만 늘어놓는 루저 말이다.
그렇게 힘겨워하던 중에, 문득 내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국세청에서 33년 근무하시고 명예퇴직했다. 그는 지금도 이야기한다. 세무서 옆을 지나갈 때면 엎드려서 절을 하고 싶다고 말이다. 30년 동안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려준 고마운 곳이라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라고 가정의 행복회로를 돌려본 적이 없을까? 원래는 함장이 되고 싶었지만, 키가 작아 해군사관학교에 가지 못한 아버지다. 분명히 그도 바꿀 수 없었던 과거를 가정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딱 한 가지가 달랐다. 그의 상상은 상상에서 끝났다. 그리곤 현실에 최선을 다했다.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해 30여 년을 근무했고, 처자식을 먹여 살렸다. 순간순간 현재에 충실했던 그였기에,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비로소 직장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일 테다.
이직한 직장을 3년째 다니고 있다. 아쉬움 없는 조직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전 직장보다 업무가 적성에 잘 맞고, 성취감도 훨씬 크다. 늦게까지 야근하는 날이 많이 없어, 평일 저녁에 운동을 하고 친구들과 저녁 약속도 잡을 수 있다. 얼마나 더 오래 다닐지는 모르겠다. 아버지 세대 때와는 달리,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진 시대이니까. 하지만 가정이 현실을 지배하게 두진 않을 것이다. 그만큼 미련한 짓도 없으니까.
미드 <The man in the high castle>은 역사의 가정으로부터 시작한다. 극 속 주인공도 미국이 패망하기 전을 회상하며, 전승의 가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상상은 상상에서 그친다. 결국 나치와 일제가 미대륙을 지배하는 현재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그것을 받아들인다. 조국을 지키려는 자, 권력을 탐하려는 자, 평화를 유지하려는 자,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은 자. 어떤 방식으로든 현재에 온몸을 던지는 각각의 인간군상들이 있다. 그게 이 드라마의 핵심일지 모른다.
가정은 가정에서 그쳐야 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한 대리만족으로 끝나야 한다. 그 상상이 현재를 지배하게 된다면, 헛된 이상주의자나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사회 부적응자가 될지 모른다.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할 때, 내 삶의 드라마가 빛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간은 ‘현재’라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현재가 전부이다. 열심히 일하고, 놀고, 먹고, 사랑하자. 지금 이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