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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형원 Feb 21. 2022

비우기

2030 성장 에세이

  

  나는 요기(YOGI)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수련하지 않았던 기간이 더 길지만, 그래도 요기로서의 삶을 이어오려고 노력하고 있다. 군 제대 후 요가를 처음 접했었다. 당시 공연예술을 공부하고 있었다.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은 저마다 운동을 하나씩 한다. 균형 잡힌 몸과 신체적 리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은 아크로바틱, 권투, 무에타이, 필라테스, 발레, 무용 등을 주로 했다. 이에 반해 나는 꾸준히 하는 운동이 없었고, 나에게 맞는 것을 하나 찾을 수 있었으면 싶었다.


  당시 수업을 20분 정도 요가수련으로 시작하는 교수님이 계셨다. 내가 남자치고는 유연성이 조금 있는 편이라, 그의 동작들을 곧잘 따라했다. 정중동(靜中動)의 호흡과 함께 나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나에게 맞는 운동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후 요가원에 등록했고, 그렇게 요기의 삶을 시작했다.



  요가는 호흡이다. 아무리 좋은 유연성과 힘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호흡을 잘 사용하지 못하면 제대로 수련을 할 수 없다. 호흡을 들이쉬며 동작을 준비한다. 호흡을 내쉬며 동작을 해 나간다. 들숨과 날숨을 반복한다. 동작을 이어간다. 단순한 것 같지만, 이러한 리드미컬한 숨쉬기가 있어야 1시간 수련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들이쉼 보다는 내쉼이 핵심이다. 들숨은 수련을 할 수 있게 육체를 준비시켜주는 것뿐이다. 실제 동작은 호흡을 빼면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엎드려뻗쳐 자세인 ‘다운 독’ 동작을 할 때는, 호흡을 깊게 내쉬면서 척추근육을 쭉 늘릴 수 있다. 물구나무서기 자세인 ‘머리로 서기’ 동작을 할 때도, 호흡을 고요히 빼면서 거꾸로 서있는 몸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이렇듯 수련자는 날숨이 있어야만 몸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 내쉬는 숨은 무엇인가를 비워낸다는 것이기도 하다. 내쉼이 있어야만 다음 동작을 연결할 수 있으며, 비워냄이 있어야만 자연스레 숨을 다시 채우고 동작을 순환시킬 수 있다. 숨을 계속 채우려고만 하다 보면, 근육이 수축되어 수련을 이어 나갈 수 없다. ‘다운 독’ 동작을 할 때, 숨을 제대로 내쉬지 못하면 어깨와 가슴에 통증이 온다. ‘머리로 서기’ 동작을 할 때도, 날숨을 조절 못하면 몸의 균형이 흐트러져 넘어지고 만다.



  젊은 혈기 탓인지, 난 내 인생을 늘 채우려고만 해왔다. 물질적인 욕망은 아직 많지 않아, 돈으로 채우려고 한 적은 없다. 더 그럴듯한 것으로 날 메우려고 해왔다. ‘인간관계, 지식, 인정, 꿈, 사랑...’ 화폐처럼 손에 만져지지는 않지만, 심장으로는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것들이 채워질 때마다 가슴이 벅차올랐고, 그 오르가슴을 추구하며 계속 내 안에 구겨 넣었다. 사람을 만날 때, 나 자신을 부각시키면서 내 존재 가치를 확인받으려 했다. 공부나 일을 할 때도, 계속해서 조직에서도 인정받으려 했다. 그리고 사랑을 할 때는, 그 사랑을 끊임없이 상대방에게 확신시켜주려 했고, 그로부터 돌아오는 사랑을 계속 확인받으려 했다. 모래시계의 쏟아지는 모래처럼 날 채우려고 했다. 모래가 모두 채워진 찰나. 나는 무한한 행복감을 맛보았다. 삶의 동력이 되었다.


  모래알이 가득 차면, 시계를 뒤집어 비워야 한다. 그게 다음 채움을 향한 필수과정이다. 하지만 나는 시계를 뒤집을 줄 몰랐다. 계속해서 숨을 집어넣었고, 근육은 수축되어 이내 기진맥진했다. 삶을 이어갈 수 없었다. 인간관계는 피상적이 되었다. 단편적인 지식을 늘어놓는 소인배가 되었다. 업무 번아웃에 시달리는 월급쟁이가 되었다. 허황된 꿈을 좇는 이상주의자가 되었다. 그리고, 사랑은 끝나버렸다.


  어찌 보면 무엇인가를 비워낸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무제한적 채움이 열정이라 여겼고, 주위에서 이를 칭찬해줬다. 나도 모르게 집착의 모래성을 쌓았다. 숨 내쉬는 법을 알지 못했다. 긴장을 푼 날숨과 함께 내 꿈이, 사랑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제는 조금씩 숨을 내쉬라며 날 다독일 줄 알게 되었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찌꺼기를 비워내라고 말이다.



  나는 요기(YOGI)다. 들이쉼으로 동작을 준비하고, 내쉼으로 수련을 이어간다. 삶에서도 요기가 되고 싶다. 채움으로 내 앞의 생을 차분히 준비하고, 그리고는 비움으로... 다음 사랑, 다음 삶의 행로를 맞이하고 싶다. 나는 오늘도 요가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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