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성장 에세이
대학시절 동아리 회식 때였다. 여느 대학생 술자리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허름한 대학가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수고했어! 짠~ 원샷~ 크...” 쓰지만 달콤한 소주잔을 목에 털어놓은 뒤, 친구들은 돼지껍데기며 닭똥집이며 순대볶음을 양껏 먹었다. 그리고선 한층 들뜬 기분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떤 모습을 보고 놀란 건 오직 나뿐이었다. 그녀가 안주 대신 맨밥을 한 숟가락 퍼먹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 친구 찐(眞)이구나…’
그녀는 완전한 채식주의자이며, 녹색당원이고, 환경보호와 동물권수호에 앞장서는 사회운동가이다. 그녀는 대학시절 늘 직접 만든 비건 도시락을 들고 다녔으며, 환경 관련 서적을 전공책처럼 품에 들고 다녔고, 환경 및 동물권 보호를 문제로 종종 언론에 나곤 했다. 나는 그녀에게 스님이냐고 놀렸지만, 술자리에서는 종종 채식안주를 챙겨주곤 했었다. 몇몇은 그녀가 유별나게 군다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난 그녀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삶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이다. 채식을 지향하고 환경에 관심이 많은 이성과 썸을 탄 적이 있다. 썸녀와 같이 갈 식당을 물색하던 중, 나는 그녀에게 비건 식당을 추천해달라며 연락을 했었다. 그러다 자연스레 그녀의 인스타그램에 종종 들어가 환경에 대한 컨텐츠를 접했다. 대학 구내식당에 비건식단 만들기, 탄소배출 절감을 위해 헌 옷 입기, 동물성 잉크가 들어가지 않는 비건 타투하기 등, 그녀는 여전히 지구를 지키는 캠페인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참, 지나친 육식은 환경을 망가뜨린다. 무분별한 가축사육은 토지를 파괴하고, 그 가축을 먹이기 위한 곡물재배 또한 토지를 파괴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열정이 멋있었다. 왜 저렇게까지 뜨겁게 운동을 하는 건지, 나는 이유가 궁금해 관련된 글을 읽고 컨텐츠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지금의 상황을 조금씩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점점 깨닫게 되었다. 인류의 무분별한 소비와 개발로 지구가 정말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세대에 이 별이 멸망해 버릴 지도 모른다는 것을.
사실 지구지키기는 시대정신이다. 온갖 미디어에서 기후위기, 플라스틱 줄이기, 동물권 보호, 기업의 ESG경영 등 지구생태계 회복과 관련된 컨텐츠를 쏟아낸다. 뱃속에 비닐봉지가 든 채 죽은 거북이, 녹아 내리는 빙하, 쓰레기로 만들어진 거대한 바다섬, 무차별한 기계식 가축도살... 이러한 사실들을 접하며 눈살을 찌푸리기는 했다. 하지만 왠지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았다. 언론에서 다루는 피상적인 내용과 ‘해야만 한다’라는 꼰대식 당위성에 젖은 말에 거부감을 가졌었는지도 모른다.
점차 나도 공감하기 시작했다. 나도 이 땅을 함께 밟고 있는 존재로서 그 운동에 동참하고 싶었다. 우선 채식은 불가능했다. 예전에 제러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고 채식을 마음먹은 적이 있는데, 그날 저녁 바로 수제 햄버거를 먹어버렸다. 통통한 패티를 맛있게 꼭꼭 씹으며, 나에게 채식은 불가능함을 절실히 느꼈다. 주위를 둘러보던 중, 일회용품 줄이기 운동을 너도나도 하는 걸 보았다.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 조금씩 실천하는 중이다. 커피를 사랑하는 나는 카페에 자주 간다. 그때마다 매장 안에서 커피를 마실 땐, 일회용컵이 아니라 매장컵을 이용한다. 아이스 음료를 테이크아웃 할 때에는 플라스틱 빨대를 챙기지 않는다. 물론 곽우유나 유산균음료를 마실 때에도 빨대를 사용하지 않는다. 편의점이나 슈퍼에 갈 때, 늘 장바구니나 재활용봉지를 챙긴다.
둘러보면, 지구지키기에 동참할 수 있는 소소한 일들이 꽤 많다. 예를 들어, 마스크를 버릴 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동물보호에 동참할 수 있다. 최근 팬데믹으로 어마어마한 마스크가 소비되고 있다. 포르투갈 아베이루대학교의 조사에 따르면, 78억 인구가 한 달에 사용하는 마스크 개수는 1,290억개라 한다. 동물들이 이 버려진 마스크에 고통받고 있다. 야생 조류들이 마스크를 먹이인 줄 알고 낚아채다가, 발이나 주둥이가 끈에 묶여 이동을 못하고 굶어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마스크를 버릴 때, 꼭 끈을 떼고 폐기하고 있다. 누군가는 ‘고작 이 정도가 환경보호라고?’라고 여길 수 있지만, 아무 생각없이 소비해왔던 나에게는 의미 있는 일들이다. 내가 적어도 1밀리미터는 움직인 것이다. 그녀 덕택에.
그레타 툰베리는 학교 수업을 빼먹고 조용히 1인 시위를 했다. 기후 위기는 재앙이라고, 기후변화에 맞서 어른들이 나서야 한다고 말이다. 이는 전세계 수백만명 학생들이 동참한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로 이어졌고, 각 나라들은 기후변화와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세상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구지키기에 무감각했던 나도 조금씩 실천해 나가고 있다.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고, 마스크를 폐기할 때 주의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멋진 소가죽 가방을 사려다 한참 망설였다. 고민 끝에 동물이 희생되지 않은 비건가죽 가방을 구매했다. 나의 세상은 1밀리미터 움직였다. 그녀가 나의 세상에 영향을 준 것처럼, 나도 다른 사람들의 세상에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세상도 움직일 것이다. 내가, 그녀가, 당신이 바로 툰베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