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초 9박 10일의 여행을 다녀왔다. 근속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여행이었는데 10일의 여행은 사실 신혼여행 이후로 가장 긴 여행이었다.
결혼 전에는 1년에 한 번씩은 꼭 여행을 갔었는데 기간이 짧아 늘 아쉬웠다. 그 당시에는 워킹데이 5일 휴가만 쓰는 분위기라 앞뒤 토 일을 붙이면 겨우 8박 9일을 만들 수 있었다. 그것마저 시간이 빠듯할 때는 금요일 밤 12시 출발이거나 월요일 새벽 5시 도착으로 사무실에서 공항으로 바로 오가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쪼갰어도 유럽이나 미국을 가기엔 턱없이 부족해서 퇴사 이후에나 여유로운 여행이 가능할까...?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회사도 휴가를 권장하는 분위기가 되었고, 특히나 근속 휴가의 경우 개인 휴가를 붙여 길게 쉬는 게 가능해졌다. 그래서 주변 동료를 보면 3주씩 쉬는 경우도 종종 보였고, 내가 회사 다니면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유럽/미국 여행도 가능해졌다.
그런 분위기에 힘입어 나도 모처럼 여행으로 힐링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는데, 그래서 이번 여행도 각종 휴가를 끌어쓰면 3주까지 만들 수 있는데, 아이와 남편을 생각해서 10일로 끊었다.
프랑스에도 회사 후배가 있고 미국에도 친구가 있지만 비행시간 긴 미국/유럽 제외하고 동남아로 타협을 봤다. 그리고 관광은 최소화하고 호텔에서 물놀이와 쉬는 것으로 일정 대부분을 채웠다.
맛난 조식과 먹고 놀고 쉬고 과연 이런 삶이 가능한 것인지 싶을 만큼의 비현실적인 시간을 보냈다.
그. 럼.에. 도. 불. 구. 하. 고. 일주일이 넘어가자 여행이 너무 길다, 호텔 조식 먹고 수영하는 것도 힘들다,
집에 가고 싶다, 살만 찌고 평소 생활 리듬이 다 깨졌다, 차라리 학원을 가겠다 (응?) 등등
남편과 아이 모두 불만의 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불만도 한두 번이지 계속 반복하자 좀 짜증이 ㅎㅎ (이거드리 누구 덕에 여행 왔는데!)
얼마 전 <나 혼자 산다>에서 김대호 아나운서가 이집트 피라미드를 보러 여행을 떠난 회차를 보았다. 그걸 보고 남편한테 나도 이집트 가보고 싶었는데...라며 이야기를 꺼냈더니 단칼에 난 싫어 그런다. 참 여행 취향 안 맞구나...>.<
같은 부서에 근속 30주년을 맞이하여 3주 동안 유럽 여행 다녀오신 선배님이 계신데 그분도 가족과 함께 가 아닌 혼자 다녀오셨다. (정확히는 입사 동기와 함께) 10년 뒤 휴가 기간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